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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행위책임의 연혁적 고찰법률/기타자료 2023. 11. 12. 00:40
불법행위책임의 연혁적 고찰
Ⅰ. 불법행위책임의 의의
민법상으로, 불법행위란 고의 또는 과실로 위법하게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므로 불법행위가 발생하면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민법 제750조). 불법행위는 '사건'에 지나지 않는 부당이득과는 달리 사람의 ‘행위’이지만, 당사자의 의사표시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계약 기타의 법률행위와는 그 성질이 다르다. 또한 불법행위는 위법행위라는 점에서는 채무불이행과 그 성질이 같으나, 불법행위는 법률에 반하는 행위이고 채무불이행은 계약에 반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다르다. 채무불이행은 채권자인 특정인에 대한 책임을 발생시키는 채무자·채권자 사이의 상대적 법률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지만, 불법행위에 있어서는 가해자로 인하여 누구라도 피해자로 될 수 있는 불특정 다수인 사이에 존재하는 일반적 책임이다. 불법행위제도의 목적은 가해자의 불법행위로 말미암은 피해자에 대한 손해전보에 있다. 우리 민법은 가해자의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자에 대한 손해전보로서 일반적 불법행위에 대하여 고의와 과실을 귀책사유로 하는 과실책임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특수한 불법행위에 대하여는 보상책임, 위험책임 등을 귀책사유로 하여 무과실책임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요컨대 불법행위책임에는 종래의 전통적인 과실책임과 더불어 현재는 무과실책임이 함께 병존하고 있는 것이다. 본고는 여기에서 의문을 제기한다. 일반적 불법행위에는 당연히 과실책임주의를 적용시키면서, 어찌하여 특수한 불법행위에는 과실책임주의를 적용시킬 수 없는 것인가, 과연 특수한 불법행위에는 과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무과실책임의 귀책사유로서 보상책임, 위험책임 등을 승인함에 정녕 무리수는 없는 것인가, 그리고 법적 타당성이 정말로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본 장에서는 이러한 의문점을 풀어가기 위하여 그 출발점으로서 먼저 불법행위책임의 연혁적인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Ⅱ. 불법행위책임의 법사상
1.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의 분화
고대와 중세에는, 위법행위에 대한 형사책임과 민사책임이 엄격히 구별되지 않은 채, 소위 사적인 형벌이 행하여였다. 불법행위에 대하여 국가는 중대한 범죄 이외에는 사인의 주도에 의해 형사상의 책임을 묻도록 하였다. 따라서 불법행위에 대한 민사책임의 발전과정은 형사상의 응보형주의와 그 근본사상을 같이하는 동해보복(Talio)이 속죄금으로 전화하는 가운데서 먼저 찾아 볼 수 있다. 즉 타인의 침해에 대하여 고대에는 복수가 행하여지고, 그것은 다시 원상회복을 추구하는 속죄금 내지 화해청구권으로 발전해서, 결국에는 응보의 사상은 형법에 남고 원상회복은 민사상의 손해배상청구권으로 변하였다. 그러나 이 시대의 불법행위책임은 단순한 손해배상책임이 아니라 가해자의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어서 오늘날과 같은 민사책임·형사책임의 분화는 아니었다. 로마법에서는 일찍이 기원전 3세기에 이미 개인의 법익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제도가 시작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기원잔 449년에 제정된 12표법(Twelve Tables)은 불법행위내지 범죄를 크게 공적 범죄와 사적 불법행위로 나누었다. 그러나 양자는 선택적 경합만을 이루며 후자, 즉 사적 불법행위의 경우에도 동해보복과 손해액의 2배 또는 4배에 달하는 속죄금제도만 있었을 뿐, 순수한 의미의 손해배상제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민사책임을 내용으로 하는 불법행위제도의 시원을 기원전 250년경에 공포된 aquilia법의 iniuria(불법행위요건)법문에서 찾는다. 동법은 처음으로 타인의 재산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제도의 발단을 의미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물론 고전시대의 로마법학자들은 채무발생의 원인을 계약과 불법행위로 구분하였다. 그러나 이 불법행위에는 여러 가지의 청구권이 결합하였으며, 그 후 불법행위는 다시 공적 불법행위, 즉 공적 범죄와 사적인 불법행위로 구분되었다. 이러한 구별은 명예법(ius honorarium)에서 시작되었지만, 명예법상의 불법행위로부터는 손해배상청구권을 발생하지 않고, 속죄금청구권이 발생하였다. 또 불법행위로 인한 소권은 벌금소권(actio poenalis)이었다. 로마법에 있어서의 손해배상으로서의 벌금은 실손해액의 2배 또는 4배로 실손해액을 훨씬 초과하는 것이며, 상속이 불가능하였으며 공동불법행위의 경우에는 그것이 누적되었고, 1년의 시효에 걸친 점 등은 형벌적 성격을 나타낸다. 이상에서 볼 때, 로마법에 있어서의 불법행위제도는 lex aquilia를 제외하고는 법적 효과면에서 보아 벌금을 위주로 하는 형벌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로마법상의 불법행위제도는 형벌적 성격을 갖는 것이었으며, 위법행위가 한편으로는 공법적으로 범죄를 구성하여 형사책임이 생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법적으로 불법행위가 되어 손해배상의 민사책임이 발생한다는 현대적 사상은 아직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로마법에서는 불법행위책임은 단순한 손해배상책임이 아니라 가해자의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여서 오늘날과 같은 민사책임·형사책임의 분화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이 완전히 분화된 것은 자연법론자들의 연구의 결과이며 근대에 와서의 일이였다. 17세기의 계몽사상에 입각한 세계관이 자연법사상으로 발전하고 자유주의 세계관과 경합함으로써 민법과 형법이 성문법상으로 엄격하게 구분된 것은, 19세기 초, 프랑스민법(1804년)이 그 시초이다. 이는 개인의 사적자치를 이룩하고 국가권력으로부터 시민의 자유로운 생활을 확보하기 위하여 성취된 결과이다. 물론 이렇게 분화된 민사책임을 규율하는 불법행위법이 각 국가마다 그 발전과정과 배경 및 이념 을 다소 달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우리 민법의 불법행위규정도 외국의 경우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다만, 연원적으로 고대 로마법으로부터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프랑스민법과 독일민법(1900년)의 불법행위규정 및 이를 계수한 일본민법과 유사한 원리로 되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2.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의 상관관계
근대민법에 있어서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은 완전히 분화되어 있다. 이에 양 책임의 성질상·책임상·기능상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형사책임은 행위자에 대한 응보 및 장래에 있어서의 해악의 발생을 방지할 목적으로 행위자의 사회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민사책임은 피해자에게 생긴 손해의 전보를 목적으로 행위자의 피해자 개인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데에 근본적 차이가 있다. 따라서, 형사책임은 행위자의 악성을 추급하여 그 도의적인 책임을 묻는 것이므로, 행위자의 주관적인 사정을 중시하여 고의범만을 처벌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그 예외로서 과실범을 처벌하고, 미수범을 처벌하는 경우도 있게 된다. 반면에, 민사책임은 그 목적이 피해자가 입은 손해의 전보에 있기 때문에, 가해자의 주관적인 사정에 치중하지 않고, 고의이든 과실이든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하는 것이며, 미수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과실책임도 민사책임에서는 인정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둘째, 실제상의 차이로서, 불법행위가 되는 행위 중에는 동시에 형사책임도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각각의 책임요건에서 차이가 있게 된다. 그 결과, 원칙적으로 고의범만을 처벌하는 형사책임은 한정적인 데에 반하여, 민사책임은 피해자의 손해전보라는 견지에서 어느 정도 넓게 된다. 한편 실질적인 소송상의 해결에 있어서도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의 분화와 대응하여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 따라서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양 재판의 결과가 서로 다를 수도 있게 된다. 이런 상이한 판결의 결과만으로는 곧 바로 상소의 이유로 되지는 않으며, 일응 한쪽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는 추측자료에 불과하게 된다. 또한 어느 한쪽의 책임의 긍정이 다른 한쪽의 유책으로 되지는 않으며, 집행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말하자면, 서로 독자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불법행위법에서는 보통 응징적 사고나 또 다른 범죄를 억제시킨다는 사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해행위의 재발방지는 그것이 필요하더라도 민사법인 불법행위법의 임무가 아니고 형사법의 임무이다. 따라서 불법행위법에서 가해자에 대하여 제재적 기능을 강조하는 것은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을 분리하여 온 근대법의 발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는것이 현재의 통설이다. 한편 대륙법계의 이러한 부정적 입장과는 달리, 영미의 불법행위법에서는 일정한 경우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고 있다. 즉 피고의 위법행위가 고의적·계획적이며 범죄와 자주 관련되는 성격을 가지는 경우에는 법원이 불법행위에 관한 소에서 징벌적 손해의 배상을 과하는 것을 허용한다. 이러한 손해배상은 피고를 응징하고, 피고로 하여금 그러한 행위를 다시 하지 못하도록 하며, 타인으로 하여금 피해의 예를 따르지 못하도록 방지할 목적으로, 피해의 완전배상 이외에 이를 초과하여 원고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어떤 판결은 이것의 또 다른 목적으로, 손상된 감정이나 소송비용 등과 같이 법적으로는 배상되지 않는 피해를 배상받도록 하는 데 있다고 한다. 이러한 징벌적 손해의 배상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예컨대 원한이나 결심 혹은 악의적 동기가 있거나, 타인의 법익에 대한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목적을 두었거나, 그의 행동이 의도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의 가중사유나 난폭성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단순히 부주의한 경우에는 그 정도가 심하여 중대한 것이더라도 또한 결과의 의식적 무관심이란 요소를 갖더라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영미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정형적인 불법행위는 폭행·협박·문서비훼·구두비훼·사기·부녀유괴·애정이전·악의소추·불법침해·사적생활침해·동산의 횡령 등과 같은 재산에 대한 의식적 침해행위이다. 미국의 경우에 대부분의 주의 제정법은 특수한 불법행위에 대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규정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인정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행하여지고 있기는 하나 아직까지는 이를 폐지하려는 경향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국의 불법행위체계의 확고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에서는 이것은 마땅히 국가에게 돌아가야 할 형벌적 벌금으로서 이에 의하여 원고가 응당 받아야 할 배상을 넘어 부당한 배상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액이 형사절차에서와 같은 안전장치 없이 오직 배심원에 의하여 멋대로 정하여진다는 점에서, 또한 이중으로 처벌받지 않을 원칙에도 반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이것은 악의적 동기를 억제시키는 데 유익한 방법이며, 변호사비용과 같은 실제의 소송비용의 배상을 인정치 않는 미국의 민사소송법의 단점을 일부 구제하는 기능을 하며, 법원에 의한 해결을 고취시키며, 난폭이나 권한남용과 같은 사소한 사건을 오래 끌지 않도로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이렇게 영미법에서는 불법행위에 관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허용함으로써 가중행위의 발생을 억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우리 민법을 포함한 대륙법계에 있어서는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의 분리가 강조되어 불법행위법의 이념을 피해자구제·손해의 공평한 분담에 두고 있는 까닭에 민사책임의 객관화를 강조하여 불법행위법에 그 제재적 기능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통설의 견해에 대하여 관점을 달리하는 견해가 있다. 즉, 민·형의 분리의 사상의 핵심은 민사법의 본질론으로서 형사법과 어떻게 다를 것인가 하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고 민사책임의 객관화를 강조하는 점에 있었다고 본다. 이는 곧 민사책임이 과실주의 원리에서 무과실주의 원리로 발전하고 있는데서 볼 수 있듯이 민사책임의 성립범위를 확대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불법행위책임의 제재적 기능을 박탈하기 위하여 고의·과실을 경시하였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제재적 기능은 손해배상론에서 논의되어야 할 문제이며, 민·형 분리의 이념은 피해자구제의 문제로서 불법행위성립론의 확대이념에 그쳐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영미의 징벌적 손해배상에서와 같은 손해배상론의 영역에 있어서도 고의·과실의 중요성을 경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의 활동에 의해 대규모적이고 계속·반복되는 가해행위에 대하여 민사법상의 불법행위가 성립됨에도 불구하고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 특히 공해·식품해·약해 등의 급속한 증대에 대한 억제의 문제는 불법행위책임에 있어서도 그 제재적 기능을 인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미의 불법행위법에 있어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에 관한 논란의 쟁점은, 첫째, 피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대리적 책임을 지는 사용인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과할 것이냐와 둘째, 보험업자가 피보험자에게 과해지는 징벌금을 지급하여야 하는가, 그리고 셋째, 20세기에 들어와서 심각하게 대두된 공해·약해·식품해 등과 같은 대량적 손실소송의 경우에 피고는 어느 정도로 응징되어야 하는가, 이중처벌금지원칙에 유사한 제한적 규칙 및 원고간의 우선적 순위는 없는가 등으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다.
3. 근대적 과실책임주의의 성립배경
고대의 로마법은 일반적으로 가해자는 과실의 유무에 관계없이 그 가해행위에 의하여 발생한 결과에 책임을 진다는 결과책임의 원리가 기초를 이루고 있었다. 로마법 최고의 성문법인 12표법도 결과책임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로마법에서의 과실책임주의는 공화정 말기의 Aquilia법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포괄적 불법행위 구성요건인 iniuria에서 유책개념으로서의 culpa를 분리하였으며, 나아가서 고의인 dolus와는 별개의 책임요소인 과실로서의 culpa가 성립한 것이다. 여기서 culpa는 개별적인 객관적이고 정형적인 과실개념이다. 고전후기에 들어서면서 기독교사상의 영향으로 culpa를 판단함에 있어 법률행위에 있어 당사자의 윤리성을,그리고 그 결과로서 유책성을 고려하였다. 이는 법의 최고목표를 윤리적 악의 제거에 두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적사고의 전환으로 종래의 culpa개념에서 객관적 동기는 제거되면서, culpa는 주관적이고 일반적이며 추상적인 의미의 과실이 되었다. 이와같이 culpa개념이 주관적 개념으로 전환된 것은 비잔틴 법학의 영향으로 의사요소(animus)가 과실판단의 기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비잔틴 법학에 의하여 비로소, 예견가능한 것을 예견하지 못하였다는 부주의라는 의미로의 과실개념이 성립한 것이다.19세기에 들어서면서 근대시민사회는 산업혁명과 때를 같이하게 되면서 불법행위책임에 대하여 과실책임주의를 원칙적으로 승인하게 된다. 손해가 발생하여도 가해자에게 고의·과실이 없는 한 배상책임이 생기지 않는다는 과실책임주의는, 법사상적으로는 칸트의 인격존중의 사상 중에서 특히 자유의 개념, 사비니의 행위론에서의 의사주의, 예링의 로마법연구에 힘입어 이론적으로 심화·발전되었다. Kant의 자유의 개념에 의하면, 개인은 근원적으로 이성을 갖고 이에 따라 행동할 자유를 갖고 있다. 그 자유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법은 모든 사람 각자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와 충돌하는 한에서 간섭하게 된다. 반대로 각자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자기의 자유의 전개권을 갖는다. 손해배상은 바로 이러한 자유의 남용에 대한 제재의 위협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칸트의 자유에 대한 책임이론의 법적 표현이 바로 과실책임주의로 나타난 것이다. Savigny는 의사주의에 기초하여 과실책임주의를 수립하였다. 사비니는 채권의 발생원인을 하나는 계약, 다른 하나는 불법행위로 구분하고 그 이외의 채권발생원인을 부인하였다. 그리고 의사의 힘(Willensmacht)에 의하여 각 사람은 자기의 자유영역을 결정하게 된다. 계약은 자유의 활용에 관한 이론이고, 불법행위는 자유의 남용을 그 대상으로 한다. 바로 의사의 힘의 남용이 불법행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의사의 힘의 남용은 자기의 과실에 기초한다는 것으로 과실책임주의를 체계화하였다. Jhering은 1867년 그의 저서인 “로마사법에서의 귀책원인”에서 “손해배상책임은 손해에 의해서가 아니라 과실에 의하여 발생한다”고 하였다. 특히 그는 로마법상의 과실개념인 culpa주의를 근대적 의미의 과실개념으로 정립 시켰다. 그러나 예링은 로마법학자로서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종래의 주관적인 의사의 책임에서만 과실의 개념을 찾으려고 하였다. 즉, 주관적 과실개념이 보통법학의 원칙임을 확인한 것이다. 그렇지만 로마법학이 이룩한 과실개념인 culpa는 종래의 형사책임과 민사책임의 미분화상태의 ‘불법’에서 사법적인 ‘유책’을 분리하고 독립한 책임요소로서 형식을 가지게 되면서 오늘날 불법행위책임의 원리를 과실책임으로 하게 한 사적근원을 이룬다고 하겠다. 이와 같이 근대 자연법론의 이론적 사고의 전환과 이성중시의 근대철학의 사상적 배경 속에, 모든 인간은 자유로은 의사를 가지며 자유로운 의사만이 자기를 법적으로 구속한다는 의사주의를 기초로 하게 되면서,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구사하는 최고의 이념으로 사적자치의 원칙이 자리잡게 된다. 사적자치는 인간이 자기결정 및 자기책임의 원칙에서 유래된 기본원칙으로서, 개인이 자기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서 법률관계를 스스로 형성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개인의 의사가 절대적으로 존중되는 사상아래에서는 개인의 의사에 기하지 않은 행위에 대하여는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손해를 준 경우에도 가해자가 그 결과발생을 인식하고 의욕하였든가, 또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데에 대해서 과실이 있든가 하는 경우에만 책임을 필연적으로 부담한다는 것이 바로 과실책임주의이다. 소위 과실책임주의는 사적자치로부터 근대적인 의미의 새로운 과실개념이 확립되기에 이르면서 도출된 원칙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유시장경제에서 자유롭게 경쟁한다. 이 경쟁에서 실패한 자, 말하자면 손해를 입은 자가 반드시 생겨난다. 이 경우 경쟁에서 이긴 자가 아무런 과실도 없이 이 손해를 배상하게 되면, 개인은 창의의욕을 잃고 경쟁하는 사람이 없게 되며, 따라서 경제활동은 위축되어서 사회는 발전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불법행위제도가 개인의 활동의 자유에 대한 하나의 한계를 긋고 있는 것이라면, 이 한계의 기준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명확성이 요구되며, 자유경쟁속에서 비록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에도 자기가 비난받을 사유가 없는 한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지는 일은 없어야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자기의 행동의 자유에 대한 한계를 넘지 않는 한, 안심하고 경제활동을 행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요망에 부응하여, 형법은 범죄의 성립요건으로 고의를 원칙으로 하며 과실은 예외적으로만 처벌하게 되었고, 민법에서는 불법행위책임에 과실 없으면 책임 없다는 과실책임주의를 채용하게 된 것이다. 요컨대 과실책임주의 아래에서는 과실이 없으면 책임을 지게 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기의 행동의 한계를 넘지 않는 한 얼마든지 자유롭게 안심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사적자치의 원칙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실책임주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적자치의 원칙이 적극적으로 개인의 자유 활동을 신장시키는 것이라면, 과실책임주의는 사람의 자유로운 활동의 한계를 그어줌으로써 사적자치의 원칙을 이면에서 보장해 주는 것이다.
4. 과실책임주의의 이론적 근거
과실책임주의의 이론적 근거로는 정의의 원칙과 억지의 원리를 들 수 있다. 먼저, 정의의 원칙은(The principle of justice) 타인의 귀책사유로 손해를 입은 자는 그 타인에 의하여 손해를 배상받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어떤 면에 있어서는 불변의 원리라기보다는 인간 고유의 심리적 반응과정을 추상화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불법행위를 당한 피해자는 반감을 가지게 되며, 사회는 그 피해자의 처지를 동정하게 되는데 이러한 감정은 형벌로써 무마되며 보상으로 만족을 얻게 되는 과정을 공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elementary justice'라고도 표현되며, 이 원칙에 대하여 개인책임개념은 여전히 타당한 것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정의의 원칙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첫째, 보상에 의해서 정의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이론은 사고 당사자들의 경제적인 지위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매우 가난한 경우에 경제적 파탄을 당하게 되더라도 배상하여야 함을 뜻하며, 반대로 가해자가 경제적으로 매우 풍족하여 피해자가 입은 손해에 대해 아무런 충격조차 느끼지 않는 경우도 있게 된다. 이는 법원칙의 적용상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결코 정의로운 원칙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과실책임주의는 통상 과실개념을 객관적으로 설정하고 있으므로 개개인의 구체적·개별적 주의력의 차이가 무시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바, 이는 결코 정의에 부합되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셋째, 과실의 입증을 소송상 많은 노력과 비용을 필요로 하는 점에서 결국은 당사자간의 경제력의 대결로 귀착되기 쉽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소송수행능력에 다양한 편차가 엄연히 존재하는 한, 원고가 화해를 택하고 소송을 피한다고 하더라도 여기에는 가해자와의 경제적 역학관계는 반영되기 마련이며, 그 결과로 합의배상액도 정의에 반하기 쉽다는 것이다. 한편, 억지의 원리(The deterrence theory)는 배상을 하게 함으로써 행위자로 하여금 장래에 그와 같은 행위를 하지 않도록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 원리는 피해자의 구제가능성을 높하기 위하여 가해자의 주의의무를 확대하는 중간책임 내지 무과실책임주의 하에서는 그 실효성 또는 실익이 과실책임주의보다는 작아지게 된다. 이러한 두 가지 근거는 불법행위책임의 기능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전자의 정의의 원리가 연원적으로는 앞서지만, 근래에는 후자의 억지의 원리가 보다 과학적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억지의 논리에 대하여도 비판이 제기되는 바, 가장 큰 문제점은 정신적 또는 환경적 요인으로 인하여 현저히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기 어려운 자에 대하여도 법은 과실책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고, 행위자에 대하여는 결과적으로 아무런 억지가능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과실행위를 반복하는 자에 대한 별도의 고려가 없이는 억지의 원리의 실현은 효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하여는 별다른 조치가 따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억지의 원리가 제대로 적용이 되려면, 당사자간의 합의로 사전에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책임을 면제 또는 제한할 수 없어야 한다. 개별조약에 있어서는 물론이거니와, 계약에 의한 부합계약에 있어서도 더욱 엄격히 사전합의에 의한 면제를 제한하여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민법이 채무불이행에 있어서의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관한 제398조 규정을 불법행위에는 준용하고 있지 않다고 해석하는 것은 타당하다. 이에 대하여 실제의 경우에는 예외의 인정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 대법원 판례는 선주책임제한제도(상법 제746조 이하)와 관련한 판결에서 선하증권상의 면책약관의 효력은 별도의 명시적·묵시적 합의로 불법행위책임에 적용하기로 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미친다고 보고 있다. 한편 손해배상책임은 가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도 가해자의 재산에 대하여 존속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과실책임의 근거로는 오직 보상이론만이 설득력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은 일정한 범위내에서 불법행위능력을 가지는 개인이 아닌 단체, 즉 회사 등의 사적 단체나 지방자치단체·국가 등의 활동영역이 점자 크게 확대되고 있는데, 이들 단체의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책임에는 가해자가 자연인인 경우와는 달리 도덕적 성격이 희박할 뿐만 아니라 억지의 원리는 논하기도 어려워진다는 난점이 있게 됨을 면할 수 없다는 점이다.
5. 무과실책임론의 대두
19세기 이래 과실책임주의는 개인의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자유경쟁에 의한 기업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기에 이르러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과학문명의 비상한 발달에 따라 종래에 없었던 위험성을 내포한 현대적 기업이 출현하면서 이전에 경험치 못한 각종의 재해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손해는 기업가가 사전에 아무리 세심한 주의로서 이를 방지하려고 해도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 경우에 과실책임주의의 원리로서는 손해가 발생하여도 피해자는 구제를 받을 수 없게되어 크게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근대민법의 기본원리의 수정 또는 새로운 역사적 사실에의 적응문제가 대두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이에 따라 근대사법이 전제한 이상적 시민상인 자유·평등인의 관념론적 허구성이 드러나면서, 이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것이 법실증주의사상, 상대주의사상, 법사회학파의 출현이었다. 그래서 근세법의 사변적 질서가 19세기 후반에 와서는 생활하는 사회중심의 실증적 질서관으로 바뀌게 되었다. 또한 개인이 향수하는 절대적인 자유는 사회와의 관계에서 상대적인 자유로 바뀌어 갔다. 특히 공법의 발달과 집단화, 도시집중, 인구폭발, 화공약품, 교통·통신수단의 발달 등은 사회생활 속에서의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밀접화하는 동시에 개인 대 개인의 관계를 집단 대 집단의 관계로 바꾸어 놓아 종래의 개인본위의 사상으로부터 사회연대사상에 의하여 사회적, 단체적 책임을 새로이 고려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이론을 주장한 학자는 Roscoe Pound로서, 그는 대륙법계에서는 모든 법적 문제는 행위자의 의사를 중심으로 고찰하는데 반하여, 영미법에서는 의사이론적 구성 내지 조작을 부인하거나 한정하고, 약속의 구속력의 근거를 객관적인 규범에서 구하는 '관계이론'(relational theory)에 의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이론은 법적책임을 독립한 개인의 자유의사의 행사로부터 발생한다기보다는 현대적인 일정한 새로운 사회적 신분 내지 사회적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영미법은 법사회화 단계에 있는 현대에 있어서 신분 내지 관계에 기초하여 권리의무를 과하는 원리로서, 보통법의 전통적법리인 대륙법에 있어서의 「신분으로부터 계약으로」에 대하여 「계약으로부터 관계로」에로 재구성하고 있다. 근대민법이 채택한 과실책임주의는 개인의 자유활동, 자유경쟁에 의한 기업의 발달을 가져왔다. 그것은 첫째로 철도·자동차, 항공기, 로켓, 우주선 등 고속교통기관의 발달이고, 둘째로 광업, 전기사업, 원자력사업, 화학기업, 중화학사업, 기계공업, 식품공업 등 위험한 설비를 가지는 기업의 발달이다. 이들 기업은 종래 없던 새로운 위험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으며, 이전의 평온한 생활관계를 파괴하고 피해를 입힌 이상, 그것으로서 생긴 손해의 배상책임도 당연히 이들 위험한 물건의 관리자 내지 기업이 부담하는 것이 정의와 공평에 합당할 것이다. 근대사회에서 위험성을 내포한 대기업의 발달은 많은 위험을 그 기업의 외부에 미치게 하는 동시에 현대과학의 최고수준의 기술로서도 도저히 방지할 수 없는 위험을 기업내부에서도 무한히 내포하고 있다는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경우에 경영자가 기업경영으로 수익을 올리면서 고의·과실이 없다는 이유로 기업의 대외에 생긴 손해에 관하여 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것이 공평타당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되고 여기에 과실책임원칙에 대한 반성이 나온다. 이러한 일은 종래의 과실책임론으로서는 충분히 실현될 수가 없는 폐단이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종래의 의미로서의 과실이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별히 엄격한 주의의무를 요구할 경우라도 그때의 과학의 최고수준의 기술을 다하고도 손해가 발생하거나 또는 과학의 최고 수준의 기술을 사용하여 손해를 방지할 수 있으나 그것에는 다액의 설비와 자금이 필요할 경우 어려운 경제적인 제약이 있어 이를 하지 않았다고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 어떤 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기업의 경우에는 피해자가 그것을 거증하는 것이 곤란하다. 이때에 과실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셋째, 피해자는 과실있는 가해자에게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나, 종래의 의미의 과실이 전혀없는 가해자에 대하여는 손해가 아무리 중대하더라도 이를 청구할 수 없다. 그 예로서 광해로 인하여 농작물에 피해를 입은 경우 광업권자쪽에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넷째, 현실사회에서는 가해자가 누구의 행위로 인하여 생긴 것인지 알 수 없는 손해나 천재에 의한 손해가 발생할 경우에는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거나 가해자를 알 수 없으므로 개인적 책임을 기초로 하는 과실책임주의로서는 해결할 수가 없다. 이 경우 가해자가 없다고 하여 손해를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 여기에 손해배상제도의 사회적 고려가 요청되는 것이다. 다섯째, 과실있는 타인의 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받은 경우에도 그 행위자에게 충분한 자력이 없는 때에는 피해자는 법률상 배상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실제로는 배상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 반대의 경우, 즉 과실책임주의는 행위자의 의사능력을 전제로 하므로 배상할 만한 자력은 있으나 의사능력이 없는 유아나 광인의 가해행위로 피해를 받은 자는 가해자의 책임능력 때문에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다. 여기에 손해의 사회분담화 사상의 일환으로 배상보험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 보험제로는 1930년에 영국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강제책임보험제가 있다. 미국에서는 1933년에 Massachusetts주에서 강제보험법을 제정하였다. 우리나라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의한 자동차손해배상책임보험 등이 있다. 이외에도 손해배상자력보험제와 보험회사에 대한 적접청구제가 있다. 위와 같은 경우 등에서 과실책임론의 비판으로 무과실책임론이 필연적으로 주장되기에 이르렀다.
6. 무과실책임주의의 이론적 근거
대기업의 발달과 기계의 복잡화, 약품류의 고속적 진보에 따라서 무과실에 의한 가해행위가 격증하게 된 결과로서, 과실책임주의를 원칙으로 하던 제국에서 어느 정도 무과실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법의식이 나타나고 개개의 입법에서나, 민법해석학 내부에서 해석의 방법을 통해서도 무과실책임을 인정하려는 시도가 생겨나게 되었다. 여기의 무과실의 가해라는 것은 대기업에 있어서 정밀복잡한 기계의 사소한 결함 때문에 도저히 사전에는 전문기술자라 할지라도 예상할 수 없었던 결과가 발생하여 사람에게 손해를 주는 경우로서 공장에서 배설되는 오수, 농약류 등이 지하수에 침입하여 농산물에 치명적인 손해를 주는 경우 등이다. 이러한 가해는 과실책임주의원칙 하에서는 과실에 의한 가해라고 할 수 없어 법적책임을 질 수 없다. 이러한 결론은 형식논리적 법해석으로서는 타당할지 모르나 이것은 근대민법의 원칙과는 모순되는 것이다. 시민법원리는 각인의 법익을 공평·평등하게 옹호하는 까닭이다. 과실책임주의하에서는 가해자는 과실이 없어 면책된다는 것은, 결과에 있어서 피해자의 이익을 옹호하지 않은 것으로 된다. 가해자가 무과실에 의하여 보호된다면 과실이 없는 피해자도 역시 무과실에 의하여 다같이 평등하게 보호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모순이 왜 현재까지 모순으로 의식되지 않았는가. 자본주의사회 초기의 시민법의 형성기에는 기업은 소규모였으며 근대적 대기업에서와 같은 무과실에 의한 가해를 당시 입법자가 예측하지 못하였고, 무과실에 의한 가해를 예외적 현상으로 보았던 것이다. 기업의 경이적인 발전은 무과실에 의한 가해를 빈발하게 만들게 되면서, 과실책임원리는 원래 시민법의 각인의 이익을 보호하는 원리와 본래 잠재하고 있던 모순적인 측면을 역사적 단계에서 노정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종래의 불법행위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시민법질서에 내재하는 모순이 고도의 산업사회를 맞이하여 기업에 부수하는 무과실의 가해라는 사실을 매개로 하여 명백히 확인된 것이다. 자본주의초기 단계에서 과실책임원리가 개인의 자유활동을 조장하는데 적합한 책임원리로 채택되면서, 자본주의기구가 가져오는 불가피한 결과에 관해서는 가해자의 면책과 피해자의 피해 감수, 인용이 승인되어야 한다는 관념에 있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초기에는 과실책임을 바탕으로 한 시민법원리의 모순으로 나타나지 않던 모순이,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하여 각종 대기업이 출현하기에 이르렀고, 또 그것이 필수적으로 수반하는 무과실의 가해가 발생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 양자에게 과실이 없는 가운데, 그것도 불가항력에 의한 것이 아닌 손해의 발생이 많아지자 위와 같은 모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시민법 본래의 원리를 관철하기 위하여, 즉 각인의 이익의 공평한 옹호를 위하여 과실없는 피해자는 가해자가 과실에 의하여 손해를 준 경우뿐만 아니라 무과실에 의하여 손해를 준 경우에도 언제나 손해가 주어진 이상, 반드시 그 배상청구가 인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데 있다. 이는 곧 피해자와 가해자가 동등하게 권리가 보호되는 것으로 되고, 피해자의 권리보호가 전적으로 가해자의 주관적 용태, 즉 고의·과실의 유무에 의하여 좌우되어서는 안된다는데 그 이론적 근거가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요청에 따라 무과실책임은 일찍이 Leoning에 의하여 최초로 주장되었다. 그는 특수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직접간접으로 과실책임이 없는 자에게도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는 것이 적합하다고 주장하면서, 특히 공업분야의 대기업으로부터 발생하는 위험을 타인에게 미치게 하는 자는 과실이 없어도 그 손해를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며, 이러한 부담은 기업의 일반경비 가운데 포함시켜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에 입각하여 무과실책임을 인정하려는 입법과 학설이 나타나고 있지만, 일률적인 것은 아니고 독일이나 스위스와 같이 특별입법을 하거나 프랑스나 영국처럼 판례중심으로 발전시키는 경우도 있다. 다만 어떤 경우이든 결과책임과 같이 무분별하게 적용시킬 것이 아니라, 과실책임을 취하였을 경우와 비교하여 공평하고 타당한 근거를 가진분야에서만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Ⅲ. 불법행위책임의 귀책구조
1. 거증책임의 분배
일반적으로 불법행위책임에서, 가해행위가 피고(가해자)의 과실에 의한 것을 입증하는 책임을 피해자(원고)에게 있다는 것이 통설의 입장이다. 즉 원고는 민법 제750조에 기해서 피고에게 과실이 있고, 그것 때문에 손해가 발생하였으므로, 피고는 원고에 대해서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주장해서 권리상태의 변동을 구하고 있기 때문에, 권리변동의 근거가 되는 사유인 과실에 대해서는 원고가 거증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법률요건의 방법에 따라 거증책임의 분배가 결정된다는 입장을 법률요건분류설이라고 부른다. 불법행위책임에서 과실의 거증책임을 피해자에게 부담시킬 경우에는 때로는 피해자에게 가혹한 결과가 될 때가 적지 않다. 예컨대 자동차사고때, 충돌직전에 가해자가 어떤 상태로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었는지를 피해자측에서는 알 수 없는 것이 오히려 보통이겠고, 하물며 피해자가 사망한 사례에서는 피해자측이 가해자의 과실을 입증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피해자에게 과실의 거증책임을 지게 하면 피해자의 구제가 오히려 부정될 수도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의료과오사건이나 공해·약해사건과 같이 고도의 지식을 요구하는 과학적·기술적인 과정 때문에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비전문가인 피해자에게 손해가 과연 예견가능하였는지의 여부와, 예견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 어떤 결과회피의무가 가해자에게 있는지, 그리고 가해자는 결과회피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는지 하는 입증을 시키는 것은 피해자의 입장을 한층 어렵게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전문가·사업자인 피고에 비해서, 단지 일반인으로서의 피해자인 원고는 과학적·전문적 지식에서 현저히 뒤지고 또 증거를 마련하는 경제상의 자력에서도 뒤떨어진다. 그래서 사회적인 정의와 공평의 관념으로부터 피해자에게 과실의 입증·거증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과실책임주의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게 하였다. 물론 위험한 사회활동에서 생기는 손해는 가해자가 부담해야 된다고 해서, 입법 또는 해석론에 의해서 실체법상 무과실책임원칙을 채용할 때에는 과실은 책임요건이 되지 않으므로 당연히 과실의 거증책임은 문제가 되지 않게 되면서 위와 같은 어려움은 근본적으로 해소되어 버린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과실은 결과회피의무 위반이며, 이 의무는 법적의무이어서 법원이 정립하는 구체적인 법규이므로, 원고가 그 법적의무를 기초지우는 사실, 즉 회피가능성 내지 그 수단에 대하여 거증책임을 져야한다. 그런데 과실에 관한 입증책임 뿐만 아니라 “거증책임 있는 곳에 패소있다”는 법언이 가리키는 바와 같이 피해자인 원고는 언제나 패소의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보호를 주목적으로 하는 불법행위법에서 현재 무과실책임을 채용하는 입법의 예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학설의 대세는, 입법에 따르지 않고 해석으로 무과실책임을 인정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가해자의 배상책임을 강화하는 이론으로서, 과실책임을 전제로 하여 무과실책임을 표면에 내세우지 않는 범위에서 불법행위법의 보완론을 고찰코자 한다.
2. 거증책임의 전환
피해자의 입증의 부담을 면하게 하여 피해자를 보호하는 방법으로 거증책임의 전환이 있다. 거증책임의 전환이라 함은 일반적인 경우의 거증책임분배와는 달리, 특별한 경우에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반대사실에 관하여 상대방에게 거증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을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거증책임분배원칙이 예외적으로 수정되는 경우를 지칭하며 법조구성의 원칙·예외의 관계를 표시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일반불법행위(민법 제750조)에서는 그 권리를 주장하는 자(원고)가 그 사실(피고의 사실)에 관하여 거증책임을 지지만, 동물의 가해에 의한 손해배상청구(민법 제759조)에서는 피고가 반대사실(그 보관에 관하여 상당한 주의를 해태하지 아니한 것, 즉 무과실)에 관하여 거증책임을 진다. 이와 같이 법률자체에서 반대사실에 관하여 상대방이 거증책임을 부담한다고 정해져 있는 것을 거증책임의 전환이라고 한다. 그러나 거증책임의 부담은 시초부터 추상적 또는 법률적으로 결정된 것이며 구체적인 소송사건의 심리결과에 따라서 변동되는 것이 아니다. 거증책임의 전환이 거증책임분배의 일반원칙을 수정하여 예외로서 규정되어, 그 근저에는 본래의 거증책임분배의 일반원칙과 마찬가지로 형평의 사상이 기초하고 있다. 즉 이러한 거증책임의 전환이 행하여지는 원인으로서는 법률정책적인 견지에서 해당사실의 존재·부존재의 입증의 난이를 고려해서 일방당사자에 대한 구제를 용이하게 한다는 입법자의 의도가 작용된 것이다. 요컨대 거증책임의 전환은 그 분배를 규정하는 법기술인 것이다. 이것은 피고측에 고의·과실이 없었다는 거증책임을 지우는 것으로서, 민법상 제755조 내지 제759조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3조에서와 같이 가해자에게 패소의 위험을 지우는 것이다. 이와 같은 거증책임의 전환은 사실상 가해자의 책임을 무겁게 하는 것이 된다. 고의·과실이라는 주관적 사정의 유무는 그 입증이 곤란하므로, 거증책임을 지는 자는 아주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여기서 거증책임을 전환하여 가해자가 이를 부담하는 것으로 하는 것은, 실제로는 과실책임에서 무과실책임에로의 이행으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를 “중간책임”이라고 한다. 그러나 거증책임의 전환은 입법적으로 손을 대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며, 제750조의 경우에는 그 규정내용으로 보아 가해자에게 거증책임을 지우는 해석은 무리이다.
3. 과실의 일응 추정
피해자보호의 또 다른 방법으로 "과실의 일응 추정"이 있다. 이것은 피해자가 원고로서 여러 가지 증거를 제출하여 가해행위의 상황이나 손해의 발생 등 피고인 가해자의 고의·과실의 존재의 가능성을 높은 정도로 증명하였을 때, 가해자에게 고의·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게 하는 것이다(사실상의 추정). 이에 대하여, 가해자측은 고의·과실없음을 법원으로 하여금 확신을 갖게 하는 반증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이 가해자의 입증활동을 “간접반증”이라고 한다). 이 방법은 어디까지나 입증책임 자체는 피해자에게 있으나, 과실이 가해자에게 있는 것으로 일응 추정되기 때문에 그만큼 가해자측이 불리한 입정에 서게 되고, 적절한 반증을 들지 못하게 되면 패소하게 됨으로써, 피해자의 입증면에서의 구제는 대개 완료된다. 따라서 판례도 “과실의 추정”을 인정하고 있다. 즉 권리없이 가처분이나 가압류를 한 경우 실체상 청구권이 없음이 확정된 때에는, 그 채권자는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그 밖에도 의료행위와 같은 고도의 전문기술행위에 의한 불법행위의 경우 등에서도 판례는 같은 판단을 보이고 있다. 판례에 나타난 “과실의 추정”에 관해 사례 두가지를 들어 보면, ㉠대법원 1959.10.29 선고4292민상67판결은 “자동차운전수와 같은 특수한 위험업무에 종사하는 자는 사고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게 위하여 자동차의 발차 전에 기관 및 차체 전반에 관하여 고장 유무를 면밀히 조사하여야 하며, 또한 운전도중에 있어서도 자동차운전에 수반하여 발생할 수 있는 일체의 위험을 방지함에 세심한 주의를 다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므로 자동차운전수가 운전에 있어서 위와 같은 주의의무를 다하였다고 하면 보통의 경과에 있어서 특별한 다른 사정이 없는 한, 사고의 발생이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였다고 할 것이며, 따라서 만일 운전수가 운전도중에 자동차가 전복하는 등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하면, 일단 동 운전수의 고의 또는 과실에 기인한 사고라고 추정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그 사고가 운전수의 고의 또는 과실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그에 대한 입증이 있어야 한다“ 고 판시하고 있다. ㉡대법원 1980.5.13 선고79다1390판결은 ”복강경에 의한 난관불임시술을 받은 사람이 다시 임신하는 경우에, 의사의 시술상의 잘못에 그 원인이 있는 것만은 아니고 시술상의 잘못 이외의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임신하는 비율이 0.1%내지 0.2%정도 된다고 하여도, 이 사건에서는 불임시술을 받는 사람이 다시 임신하게 된 원인은 시술상의 잘못 이외의 다른 원인으로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을 인정할 수 없으니, 그 원인을 의사의 시술상의 잘못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하고 있다.
4. 입증책임의 완화
(1)개연성이론
피해자의 구제와 관련하여 원고는 인과관계의 존재의 개연성을 증명하면 되며, 피고는 반증으로서 인과관계의 부존재를 증명하지 않는 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이론으로서, 미국에서는 판례상 정황증거 이론으로 이미 주장되었던 것이다. 이 설은 환경오염소송에 있어서는 증명의 정도보다도 경도의 심증을 형성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함으로서 피해자의 구제에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왔는 바, 증거우월설과 사실상의 추정설에 의한 법리구성을 하고 있다 다만 증거우월설에 대하여는, 증거의 우월이란 영미법상 배심으로 하여금 계쟁사실의 부존재보다도 그 존재가 더욱 확실하다고 사실인정을 하게 되는 증명을 뜻하는 바, 우리 소송법상의 증명과 실질적인 차이가 없어 사실상 피해자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 또한 사실상의 추정설에 대하여는, 법관의 자유심증의 범위내의 문제이므로 법관에게 사실인정에 관한 객관적 기준을 제공하지 못하며, 법률의 근거없이 증명과 소명의 중간적인 심증으로 사실인정을 하는 것이 되어 부당하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입증부담의 완화 요청을 증명도의 영역에서만 해결하려고 한 까닭에 생기는 필연적인 결과로서 이에 대한 반응책으로 등장한 것이 간접반증론(신개연성이론)이다.
(2)간접반증론(신개연성이론)
환경오염소송에 있어서 인과관계의 입증을 대부분 간접사실에 의하는데, 이의 대전제가 되는 경험칙을 폭넓게 채용하여야 하는데 착안하여 피고에게 입증부담이 되는 간접반증의 개념을 도입하고 더불어 입법과정에서 경험칙의 적용범위를 확대함으로서 원고의 입증책임을 상대적으로 경감하려는 것이 신개연성이론이다. 간접반증론의 도입은 인과관계의 증명도 자체를 인하하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피해자의 입증부담이 직접적으로 경감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과관계의 존재를 일응 추정하게 하는 간접사실이 입증된 단계에 이른 경우에, 가해기업이 인과관계의 부존재에 관한 특별사정을 간접반증으로 입증하도록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피해자의 입증범위를 완화하는 경과가 됨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결과는 피해자의 구제범위를 넓히는 것으로서 경험칙을 체득하는 유력한 수단인 역학적인 조건을 활용함으로서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3)개연성이론의 적용상의 문제
개연성이론은 피해자구제에 장점이 있지만, 실제 적용상의 불합리를 방지하기 위하여 다음 원칙에 따라야 할 것이다. 첫째로 사실인정을 하여서는 안 되며, 둘째는 가능성정도로 인과관계의 추정도 안 되고, 끝으로 개연적 입증 이상의 입증을 요구하여서는 안 된다. 한편 제조물책임에 관하여 개연성이론 및 역학적 인과관계론이 적용될 수 있는가가 문제되는 바, 원칙적으로 원용이 가능할 것이다. 특히 역학적 인과관계론은 식품이나 약품과 같이 피해가 집단적으로 나타나며 인과관계의 증명이 곤란한 경우에는 당연히 원용되어야 할 것이다. 입증책임의 법리상 주요사실은 원고가 그 주장 및 입증책임을 지며, 입증과 주장책임은 그 내용이 일치한다. 그러나 과실의 입증에 관하여는 원고가 과실의 법률적·가치개념적 요소인 법적의무의 존재에 대한 입증책임을 진다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원고는 “과실 그 자체”에 관하여 주장책임을 지지만, 그 입증책임은 과실판단의 기초가 되는 사실 또는 간접사실에 관하여만 이를 부담한다고 해석함이 타당할 것이다. 과실자체의 주장은 손해의 원인 또는 결함에 관한 일반적 과실 또는 과실일반의 주장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현대적 불법행위에 있어 원고의 부담을 경감시켜 주는 것이다.
5. 책임개념의 확대
과실책임의 원칙은 전부 아니면 전무의 원칙(Alles oder Nichts Prinzip)이라고 한다. 이는 가해자의 과실이 존재할 경우 피해자는 전부를, 즉 완전한 손해배상을 받는 반면에, 가해자의 과책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피해자는 아무것도 배상받을 수없다는 불합리를 의미이다. 현행민법 제750조가 과실책임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이상 그 모순을 시정하는 방안이 절실히 요청되기에 이르렀다. 요컨대 일반적으로 불법행위가 성립하려면 가해자의 고의 또는 과실을 필요로 한다. 이같은 통설에 따르면 고의란 일정한 결과의 발생을 인식하면서 그에 불구하고 행위를 하는 심리상태이며, 과실이란 결과의 발생을 부주의로 인식하지 못한 채 어떤 행위를 하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고도의 위험을 수반하는 현대의 불법행위에 비추어 볼 때, 과실이나 인과관계의 증명이 불능인 경우 피해자는 전 손해를 져야 하는 모순이 있다. 그리하여 19세기말 이래 객관적 책임론은 위험의 수반되는 특정한 경우, 손해를 발생시킨 행위자는 언제나 책임이 있다고 하여 과실책임원칙의 보충기능을 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비판이 있다. 첫째로, 실정법규에 위반되고, 둘째로 기업의 책임이 가중되어 발달이 저지됨에 따라 사회적 이익을 해지며, 셋째로 책임유무의 판단기준이 불명확할 뿐만 아니라, 끝으로 논리적인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러한 비판과 과실책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해석론으로서 두가지의 방법론이 제기되는 바, 첫째는 민법 제758조를 무과실 책임의 유일한 규정으로 보아 모든 기업책임을 본조의 적용범위에 포함시키자는 주장이다. 다음은 법 제750조의 과실의 개념에서 기업책임의 경우에 일반인의 경우와는 달리 주의의무의 정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1)제758조의 적용범위 확대설
민법 제758조의 규정에 의하면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공작물점유자에게 제1차적 배상책임이 있다. 그러나 점유자가 손해의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해태하지 아니한 때에는 제2차적으로 그 공작물의 소유자에게 배상책임이 있다(1항). 이 경우에 소유자에게는 면책요건이 없다는데 유의하여야 한다. 또한 이 규정은 수목의 재식 또는 보존에 하자가 있는 경우에 준용된다(2항). 손해를 배상한 점유자 또는 소유자는 그 손해의 원인을 만든 자에게 대해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3항). 여기에서 점유자의 공작물책임의 성질은 과실책임이라도 소위 과실의 거증책임이 점유자에게 이전되었다는 의미에서 중간책임이라고 보는 입장이 통설이다. 공작물의 설치·보존상의 하자 또는 수목의 재식·보존상의 하자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의 제1차적 배상책임은 점유자에게 있으나, 점유자가 손해발생의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해태하지 아니하였음을 입증한 때에는 그 책임을 면한다. 따라서 점유자가 중간책임을 진다는 의미는, 손해의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하지 않은데 대하여 점유자에게 거증책임이 전환되고 있으므로, 공작물의 하자의 존재가 증명되면 주의의무 위반은 추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점유자의 책임은 무과실책임은 아니지만 과실책임의 일반원칙에 비하면 피해자에게 비교적 유리한 특수한 중간책임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민법 제758조의 공작물소유자의 책임에 대하여는 제2차적 책임으로서 점유자에게 인정되는 면책사유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소유자는 무과실책임을 진다고 하는 견해가 통설과 판례의 입장이다. 공작물의 소유자에게 민법의 일반원칙과 다른 무과실책임을 인정하는 근거에 대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힐지도 모른다는 위험성을 가진 하자있는 공작물을 지배하고 있는 그 위험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고 하는 위험책임 내지 위태책임에서 구하는 입장이 다수설이다. 또한 공작물책임의 근거로서 공작물의 보유에 의하여 이익을 얻고 있다는 이유에서 보상책임의 의미도 있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 한편 무과실책임의 근거로서 위험책임과 보상책임과 아울러 공작물의 소유자의 부단한 주의를 환기시키려고 하는 예방적·정책적 배려를 드는 견해도 있다. 특히 무과실책임의 일반규정이 없는 국내에서는 무과실책임의 실정법상의 근거로서 민법 제758조의 공작물책임에 관한 규정을 들고 있으며, 공작물의 개념을 확대해석함으로써 가능한 한 무과실책임의 일반규정의 기능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2)제758조의 과실책임 확장설
우리나라에서 공작물소유자의 책임을 과실책임으로 보는 견해는 소수설이다. 과실책임설을 택하고 있는 이태재교수의 견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즉 소유자의 책임은 점유자에게 책임없는 경우에 한하여 지워지는 제2차적 책임이면서도 면책조건이 없는 절대책임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와 같이 부르는 이유는 소유자책임을 법률상 과실있는 것으로 간주된 책임이라는 뜻에서 광의의 과실책임의 일태양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작물 또는 수목 뿐만 아니라 모든 물건의 소유자는 그 물건을 보존·이용·수익하는데 그 하자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지 아니할 주의의무를 지고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과실개념을 확장하여 공작물설치 또는 그 보존의 하자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 공작물소유자가 지는 책임은, 소유자에게 지워지는 주의의무의 결여에서 오는 것이며, 지진·폭격 등과 같은 천재지변으로 인한 경우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므로, 마땅히 과실책임의 개념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한다. 동교수는 과실책임을 확장하는 근거가 실제상, 이론상으로 요구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상으로는 오늘과 같은 밀집생활 속에서 위험성 있는 시설과 고속도의 교류를 생활수단으로 하는 현대사회의 사법질서에서는 과실개념의 확장은 당연히 요구된다. 또한 이론적으로도 종래 학자들의 과실개념에 관하여 통상인의 주의의무의 결여라는 추상적이며 일률적인 기준에서 모든 것을 증명하려고 하는 태도와 과실을 좁게 해석하여 구체적 침해행위 또는 침해사실자체에 대한 주의결여만을 문제 삼으려고 한데서 그 과오가 시작되었다고 지적하면서, 불법행위의 요건으로서의 과실유무의 객관적 판단은 그 주체의 구체적 사정을 제1차적 기준으로 하여 그와 같은 류에 속하는 평균인의 주의의무를 먼저 규정하여야 할 것이라고 한다. 또한 그 주의의무는 주관적 심소 외에 그 사회의 공동생활상 당연히 요구되는 한도까지는 어느 의미에서 사회적으로 강요된다고 할 것이므로, 사회가 요구하는 고도의 주의의무나 궁극적 주의의무가 따르는 행위나 사실을 스스로 선택한 자가 그 주의를 결하면 곧 과실이 있다고 해석된다고 하고 있다. 한편 민법 제750조의 기본규정의 해석론 속에서 과실의 개념을 확장할 수 방법 중의 하나로서 주의의무의 고도화라는 법률상 기술이 있다. 이는 원래 가해자의 주관적 책임으로 구성되어 있던 과실책임의 개념을 객관적으로 구성하므로써 행위자의 주의의무를 고도로 확대시키는 것이다. 우리나라 통설은 ‘과실’을 사회의 통상인을 기준으로 하여 객관화·정형화한 추상적과실로 보고 있다. 종래의 과실에 대한 생각은 주의하면 예견할 수 있고, 예견하면 그 피해를 발생시키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어서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과실의 경우에는 피해의 발생을 인식·예견하는 주의의무를 게을리한 때에 과실이 있다는 것이지만, 의무위반의 전제로서 요구되는 예견의무 또는 조사의무를 될 수 있는 한 엄격하게 하는 방향이 바로 주의의무의 고도화라는 수단이다. 과실의 개념을 객관화함으로써 기업책임에 대해서는 그 기업에 관한 지극히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자를 표준으로 하여 그 자가 예견가능한 상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견하지 못하고, 그 가해의 용태를 취한 경우에는 과실이 있다고 인정되어 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즉 이 경우에는 통상 일반인과는 다른 표준인을 과실유무의 판단기준으로서 채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경우라면 과실을 인정할 수 없는 경우에도, 고도의 주의의무표준에서는 과실이 있다고 인정되는 것이다. 이 견해를 채용할 때에는 종래의 과실책임주의하에서 무과실의 가해라고 생각되기 쉬운 경우가, 고도의 주의의무로써 전문적 지식을 가진 자를 기준으로 해서 과실을 판단함으로써, 실제로 무과실의 가해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우게 하는 결과가 되어 피해자를 보호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관적 과실개념에서 객관적 과실개념으로 완화하고, 따라서 주의의무의 고도화란 법기술의 조작으로, 높여진 기준에 의해서도 역시 과실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이 견해는 적극적인 해답을 줄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Ⅳ.불법행위책임의 체계론
1. 불법행위책임 일원론
(1) 불법행위책임 일원론의 의의
불법행위책임 일원론이라 함은, 무과실책임을 과실책임과는 다른 이질의 것으로 보지 않고. 과실책임의 귀책근거에 의해서 통일적으로 설명하는 견해를 말한다. 이는 일본의 石本雅男 교수의 견해이다. 동교수는 불법행위의 목적을 일관해서 무책의 피해자의 구제라고 주장하고, 예견가능성으로써 귀책의 한계로 하는 종래의「과실」이 민법전 성립후 빈발하는 사고손해의 귀책에는 무력하다고 지적하였다. 민법전 제정당시 단순한 생활관계에서는 과실책임주의만으로 충분히 피해자를 보호하였으나, 현대산업사회의 사고는 가해자·피해자 모두 무과실인 경우가 많고, 무과실인 가해자는 면책되고 무과실의 피해자는 손해를 부담하게 되어 피해자구제의 목적이 불가능하여지면서 종래 과실책임주의는 불공평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무과실책임의 요청이 있지만, 石本雅男 교수에 의하면 무과실책임의 단순한 승인에 의해서 사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고 책임의 성립에 귀책원인(비난원인)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무과실책임의 근저에는 비난원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과실책임과 무과실책임 양자를 원칙과 예외의 관계로 보든, 양자에 원칙적의미를 인정하든간에 이원론(이원주의)의 그 근저에는 양자에 공통하는 하나의 근원적 비난원인을 필연적으로 승인하고 있는 것을 논리적으로 전제한다는 변증법적 방법론으로부터 과실책임과 무과실책임의 통일적 근원적 원리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불법행위책임 이원론은 과실책임과 무과실책임이 다른 별개의 귀책원리로서 양자가 병존해서 불법행위법을 구성한다는 견해를 말한다. 이에 대하여 石本雅男 교수는 과실책임이든지 무과실책임이든지 양자는 하나의 법질서 속에 포섭되고 그것에 의해서 하나의 통일적인 체계를 가진 법질서를 형성하는 한에는, 양자는 상호 무관계 무연의원리가 아니고 논리적으로 그 배후에는 하나의 통일적인 원리(근원적 귀책원리)가 존재하다면서 그것을 매개로 해서 양자는 상호보완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2) 근원적 귀책원리로서의 과실
石本雅男 교수는 과실책임과 무과실책임을 변증법적 방법론으로 통일적 근원적 귀책원리를 추급하여야 한다면서, 그것을 과실이라 부른다. 동교수가 말하는 과실을 법의 역사속에서 구하려는 노력과 함께 종래의 과실개념 속에 수정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다음과 같은 이론을 주장한다. 그는 공해등으로 기업책임이 문제가 되는 경우에 일본민법 제709조(우리민법 제750조)로 적용할 때에는 가해자는 면책되고 피해자가 오히려 손해를 감당해야 할 경우가 생기게 되어 양자의 보호에서 불평등이 생길 것을 의식하고, 과실개념 속의 수정의 필요성을 지적하여 종래의 견해가 세가지 유형으로 과실이 있다고 분류하는 것에다 새로운 유형의 과실을 더하였다. 즉 제1유형은 행위자가 어떠한 행위를 하는데에 그와 같은 행위를 하면 결과적으로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예견하지 못함으로써 손해발생을 방지할 수 있는 행위를 하지 않아 손해를 발생하게 하는 경우이다. 제2유형은 행위자가 행위를 하는데에 그와같은 행위를 한다면 결과적으로 손해를 야기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막연히 손해가 발생하지 않으리라 믿고 손해발생을 방지하는 행위를 하지 않은 결과, 예상에 반하여 손해가 발생한 경우이다. 제3유형은 행위자가 어떠한 행위를 하는데에 그와같은 행위를 한다면, 결과는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였기 때문에 그 손해의 방지행위를 할 때에 그 정도의 방지행위로는 손해를 방지할 수 없다는 것을 예견하였어야 함에도 그것을 예견하지 못하고 그 방지행위에 의하여 손해방지가 될 것이라고 믿고 행위를 한 결과 결국 손해를 방지하지 못하고 손해가 야기된 경우를 들었다. 여기에다 제4유형으로서 행위자가 행위를 하는데에 그와 같은 행위를 할 때에는 그 결과로서 손해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누구도 예견할 수가 없었고, 또한 손해발생의 가능성도 인식할 수가 없었을 경우로서, 그러나 사안의 중요성으로 보아 손해를 야기하지 않도록 종래의 주의의무 이상으로 신중한 주의를 경주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고도의 주의의무를 위반한 결과 손해를 야기한 경우를 더하였다. 이와 같은 石本雅男 교수의 견해는 가해행위를 위험행위와 방지행위로 구분하여 방지행위에서의 과실은 예견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종래의 과실개념에 의하여야 할 것이나, 이에 비하여 위험행위는 오늘날 그 결과의 예견가능성과 반드시 결부되지 않은 것에서 역사적인 특색이 있는 것이므로, 거기서 인정될 수 있는 과실은 종래의 과실개념에 의하지 않는 새로운 과실개념에 의하여야 할 것이며, 그것을 상기 제4유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과실개념을 위험행위에서의 과실과 방지행위에서의 과실 두가지로 승인하는 것은 일본민법 제709조(우리민법 제750조)에 현대적인 불법행위책임의 원칙적인 의의를 인정하고자 하는 경우, 필연적으로 승인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아마도 로마법에서의 최경과실을 포함하는 과실책임을 인정하는 방법에서 시사받은 것으로 보인다. 로마법의 최경과실의 내용은 「결과에 대한 예견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자기의 결의에 의하여서 행동한(타인에게 강제된 것이 아닌) 결과, 적어도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이상은 거기에 과실이 있다」는 것이며, 이와같이 과실개념을 확대해서 파악해도, 그 가해에 대한 방지행위에서의 과실유무의 판정은 종래의 과실개념이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3) 과실개념의 재검토와 민법해석론
근대적 과실책임의 원리는 각인의 자유에 평등을 기조로 하는 시민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수립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의 근본원리와의 모순이 나타났다. 즉 시민법은 그 정신에 더욱더 철저하면 할수록 자기에게 본질적으로 대립하는 근대적 과실책임의 원리를 승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지만, 그 과실책임주의는 거기에 철저하면 할수록 자기의 원리의 지반이라고 하는 그 시민사회의 본질적 원리와 크게 모순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즉 자기에게 철저하면 할수록 자기의 논리적 존립의 지반은 오히려 부정하고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 결과 근대적 과실책임주의와 시민사회의 근본원리와의 관계에서 그 형성과 조화를 다시금 파악해야 하는 상태에 놓인 것이다. 이와같은 과실책임의 원리와 시민법원리의 대립의 조화(지양)를 위해서는 옛날부터 귀책원인이 되어 오늘날도 역시 새로운 의미에서의 귀책원인이 되고 있는 과실의 개념을 재차 검토하고, 현실에 맞는 역사적·사회적 제약에 따르도록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며, 또 재구성된 과실책임이야말로 근원적 귀책원인이어서, 그것은 이원론의 모순을 통일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민법해석학상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귀책원인인 과실개념의 재컴토의 문제의 해결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일본민법 제709조(우리민법 제750조)의 과실개념에 대해서 종래 이해되고 있던 관념을 배제하고, 오히려 이것을 로마법이래의 전통적 개념을 기초로 해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이해할 때에 과실에 의한 가해란, 불가항력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람의 자발적인 용태를 통해서 손해를 준 것을 말한다. 따라서 고의에 의하였거나 또는 그 행위의 결과를 예견해야 함에도 예견하지 않음으로써 이루어진 가해만이 아니라, 오늘날 민법해석상으로는 과실이 없다고 보여진 용태에 의한 가해행위도 그 속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리고 「과실」을 이와같이 확장해서 파악한 결과로 민법상 공작물소유자의 무과실책임은 넓은 의미의 과실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민법에서의 불법행위책임은 일원적인 과실책임주의에 의해서 일관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실의 개념구성으로 종래 가해자의 과실없이 주어진 가해에 대해서, 과실없는 피해자가 이유없이 받은 손해를 인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불합리를 해소하여 피해자가 정당하게 구제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법이 개인의 법익을 공평·평등하게 보호한다는 원칙에서 말하자면, 사람이 스스로 과실없이 감수인용해야 할 이유가 없는 타인에 의한 이익침해행위에 대해서는 항상 그 전보를 청구할 수 있다는 원칙이 당연히 인정되어 있으면서도, 근대적 과실책임주의 아래서의 불법행위에서는 가장 중요한 이 경우에 무시되었던 모순이 이것에 의해서 구제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생각하면 과실책임의 일원화는, 이원론이 가지는 민법의 체계상의 모순을 지양하는 것이므로, 현재의 이원론적 해석은 필연적으로 일원화와 통일화의 요구를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법의 형성발전의 역사적 성격면에서 말하면, 본래 일원적으로 형성되어 온 과실책임의 원리가 근대법의 형성에 따르는 역사적 제약에 의해서 변용되어 생긴 이원론이 다시금 근대사회의 발전속에서 재차 일원적으로 전개하는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게 된 결과라는 것이다. 요컨대 과실의 개념을 불가항력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람의 자발적인 용태를 통해서 손해를 준 경우에는 결과의 예견가능성의 유무를 불문하고 과실이 있다고 재구성하여, 이원론의 모순을 지양하려는 것이다.
2. 불법행위책임 이원론
(1) 불법행위책임 이원론의 의의
불법행위책임 이원론이란 과실책임과 무과실책임이 다른 별개 귀책원리로 병존해서 불법행위법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에 첫째, 과실책임을 원칙으로 하고 무과실책임을 예외로 하든, 둘째, 무과실책임을 원칙으로 하고 과실책임을 예외로 하든가, 셋째, 과실책임·무과실책임을 대동한 원칙으로 하는 이론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과실책임을 원칙으로 하고 무과실책임을 예외로 하는 견해, 다시 말해서 과실없으면 책임없다는 원리를 원칙으로 하고, 입법 기타에 의한 무과실책임은 예외로 인정하려는 것이 다수설의 입장으로서 가장 보수적이다. 다음은 과실책임과 무과실책임을 대등한 원칙으로 인정하려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독일의 위험책임(Gefährdungshaftung)을 받아들인 신진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무과실책임을 원칙으로 하고 과실책임을 예외로 하는 견해로서 소련민법이 보통 이에 속한다고 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두 번째 입장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Vladimir Gsovski에 의하면 소련민법 제403조는 타인의 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무과실책임을 채용하고 있으나, 가해자가 손해의 발생을 방지할 수 없었다는 것, 손해를 생기게 하는 권한을 가진 것 또는 손해가 피해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하여 생겼다는 것을 입증한 때에는 배상의 책임을 면한다고 하여 결국 과실의 거증책임을 전도시킬 수 있다. 그리고 동법 제404조에서「철도·전차·공업시설·가연소물의 취급자, 야생동물의 보관자, 건물의 축조자 등과 같은 현저한 위험을 포장한 행위를 하는 개인 또는 기업은 그 위험의 원인에 의해서 생긴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 손해가 불가항력 또는 피해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해서 생긴 것을 거증한 때에는 그 책임을 면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래서 여기서는 무엇이 그와 같은 위험의 원인으로 인정되는가에 관하여서 여러 의문이 있게 된다. 또 모두가 근대의 기업에 관한 특별한 책임으로 할 수 없음은 분명하나, 어쨌든 일종의 위험책임을 인정하며, 전조(제403조)에서 면책되었던 「손해의 발생을 방지할 수 없다는 것」을 거증하여도 책임은 면하지 못한다. 따라서 소련민법은 대체로 특히 위험을 포장한 경우에 관한 무과실책임과 그 밖의 경우에 관한 과실책임(단 거증책임의 전환)의 그 두 가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불법행위책임 이론은 세 가지로 나누어지나, 이하에서는 이러한 입장을 총칭하여 과실책임과 무과실책임의 이원론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2) 무과실책임의 근거
과실책임론에서는 과실있는 자가 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가에 대해서, 통설은 그의 의사에 윤리적인 비난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과실의 유무를 판단함에, 행위자의 개인적 주의능력을 기준으로 하는 구체적 과실이 아니고, 통상인으로서의 표준적 주의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자는, 만약 세심한 주의를 하였더라도 그 주의가 통상인의 수준에 이르지 못해서 과실이 있다고 판단될 우려가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손해의 발생을 회피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를 윤리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과실책임에서도 귀책근거를 행위자 개인의 의사의 비난성에 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능력이 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넘어서 위험한 행위를 선택한 점에서 귀책원인을 구하며, 상대방이 통상인과 같은 행위를 할 것이라고 서로 기대신뢰를 한 것에 배신되었다는 점에 신뢰원칙위반에 의한 책임이 발생한다는 견해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무과실책임의 귀책근거는 어떤 것일까. 과실책임이 도의적 내지 주관적책임임에 대해서 무과실책임을 과실책임과는 전혀 개별의 사회적 내지 객관적 책임으로서 해석하는 이원론에서는, 도의적 비난에 대신할 귀책근거를 구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이원론에 선 사고방식도 그 귀책근거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로 나누어진다. 즉, 각종의 무과실책임을 통해서 하나의 귀책근거를 찾아내려는 입장과 무과실책임의 유형에 따라서 몇 개의 다른 귀책근거를 제시하는 여러 견해가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 필요성도 없으며 실익도 없다고 생각되기에 여기서는 그 주된 견해에 종류만을 간단히 거론해 본다. 무과실책임은 가해자에게 고의·과실이 없는데도 타인에게 손해가 발생하면 배상책임을 지우게 하는 것인 바, 왜 무과실의 가해자 배상책임을 지는가 하는 이론적 근거에 관한 학설로 보상책임설, 위험책임설, 원인책임설, 공평책임설 등이 대표적이다.
(3) 무과실책임의 영역과 한계
이원론에선 학설이 많은 점에서 공통인식을 가지고 있으나, 무과실책임 입법이 현저히 늦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해석에 의해 무과실책임을 어느 정도 확장할 수 있는가. 또 그 한계는 존재하는가가 문제이다. 먼저 독일에서는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는 한 과실책임이 되어야 한다고 학설·판례가 해석하여, 위험책임(무과실책임)입법에 의하지 않는 분야에서는 구제받을 수 없는 피해자가 생겨난다. 또한 위험책임규정은 항상 새로운 기술적 발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뒤쫓아 가는 상태이었다. 그리하여 기술적 발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위험책임 입법을 개혁하여, 민법전에 위험책임의 일반조항(Generalklausel Für die Gefährdungshaftung)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이미 언급한 바가 있다. 이는 무과실책임이 과실책임과의 관계에 대해서 보여주는 예이고, 해석에 의한 무과실책임의 발전도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한편 일본에서는 입법에 의한 무과실책임을 인정하지만, 독일만큼의 무과실책임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학설에서는 일찍부터 해석에 의해 무과실책임을 확장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我妻榮 교수는 기업을 구성하는 자동차, 항공기 등의 설비와 기업 활동에 기인한 사고에 대해서도 무과실책임을 부담시키기 위하여 공작물책임의 기준에 있는 위험책임의 방법을 확장·유추하는 방법을 제창했다. 공작물책임의 유추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입법에 의한 무과실책임의 확충에 기대를 표명하였던 加藤一郞 교수도 그 후에 제조물책임에 대해서는 민법이 예상하지 못했던 특수한 불법행위유형으로 「정면에서부터 무과실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정도이다」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石田穰 교수는 날로 확대하는 불법행위법상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하여 종래의 해석학설에 근본적인 비판을 던지고, 입법자의 의사를 근거로 과실을 행위자의 능력을 기준으로 하는 구체적 과실로 획정하고(「의사책임적불법행위」의 영역), 과실개념의 확장에 의해 처리되고 있는 「행위책임적불법행위」의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행위책임적불법행위는 다시 조리에 의해 「객관책임적불법행위」의 유형(행위자가 손해방지를 위해 객관적으로 상당한 행위를 하지 않는 한 면책되지 않는 불법행위)과 「결과책임적불법행위」의 유형(행위자가 손해방지를 위하여 객관적으로 상당한 행위를 해도 면책되지 않는 불법행위)을 형성해서 무과실책임을 조리해석에 의해서 넓게 확장하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와 같이 무과실책임의 영역을 일종의 「법의 흠결」로 보아 유추(我妻榮)정책적형량(加藤一郞) 조리(石田穰)에 기하여 보충한다. 다시 말해서 무과실책임을 해석에 의해 실정법이 결하고 있는 것을 필요로 하는 부분에 자유로 주장된다는 견해가 강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과실책임의 확장에 대하여 주지하는 바와 같이 특별법의 제정에 의하여 무과실책임을 인정하고 있으나, 입법의 정체 때문에 해석에 의한 무과실책임을 확장하려고 하고 있는 형편이다. 무과실책임의 일반규정이 없는 국내에서는 학설이 민법 제758조의 공작물소유자의 책임규정을 확대적용함으로써 가능한 무과실책임의 해석에 의한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김주수 교수는 무과실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초가 확립되기 전까지는 무과실책임론에 입각하고 있다고 일반적으로 말해지고 있는 민법 제755조 이하의 실정법 제규정의 해석·적용을 통하여 책임을 인정하여야 하며, 무과실책임의 추상적 기준을 그대로 현실적으로 책임인정의 기초로 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 한편 서광민 교수는 불법행위를 「비난가능형 불법행위」(위법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야기하는 유형의 불법행위로서 민법 제750조에 포섭될 수 있는 불법행위)와 「위험원지배형 불법행위」(일정한 위험원의 운행 내지 경험에 완전 방지 불가능한 손해발생의 추상적 위험이 내재하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적 유용성 때문에 그러한 활동이 허용되는 경우, 그러한 위험이 현실화하여 손해를 야기하는 유형의 불법행위)로 구분하였다. 특히 후자에 대해서는 근대사회의 고도의 공업화, 기술화에 힘입은 각종의 특수한 위험원을 운행하거나 경영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사고손해로서 민법 제750조에 의해서는 공평하게 전보될 수가 없다고 하고, 이러한 위험원지배형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된 손해에 대하여 위험책임을 인정함에 법원적 준거는 특별법이 없는 경우에는 민법 제1조의 조리에서 찾아야 한다고 한다. 이상에서 이원론에 의거해서 과실책임과 무과실책임의 병존을 인정함에, 무과실책임의 타당영역의 범위 내에서 입법이 제정될 것이며, 무과실책임이 인정될 영역에 실정법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에는 어느 정도까지 해석에 의한 무과실책임이 확장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학자들 사이에 의사가 일치되어 있지 않은 점에 그 한계가 있다고 하겠다.
3. 일원론과 이원론에 대한 비판
예견가능성의 요소를 불요로 하면서도 자발적인 용태의 가해에 과실을 인정하는, 말하자면 과실의 주관적요소를 극소화함으로로써 무과실책임을 포괄하는 石本雅男 교수의 견해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비판이 있다. 첫째로 종래의 무과실책임의 영역에는 가해자의 주관(용태)이 전혀 관여되지 않은 손해를 귀책으로 하는 것(예컨대 공작물책임의 소유자책임)도 존재하고 있으며, 이 부분이 일원론에 의해서는 일부 남겨지는 결과가 되지 않는가 하는 비판이 있다. 둘째로 고차의 과실하에 종래의 과실책임과 무과실책임을 통일시키더라도 역시 종래의 과실이 작용하는 영역은 남아서, 그 양자를 민법 제709조(우리민법 제 750조)에 동거시키는 이론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있다. 셋째로 불가항력의 경우를 제외하고 자발적인 용태를 통해서 타인에게 손해를 준 경우에는 항상 과실이 있다는 것은 과실개념을 무제한으로 확대하고 용어의 통상 용법을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서, 과실책임을 통해서 무과실책임을 인정한다는 말은 모순인 것이다. 넷째로 「고차의 과실」과「종래의 과실」을 귀책면에서 병존시킨 것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현실사회 속에 귀책기준을 구별할 요청이 존재하고 있으며, 「과실」개념의 확장에 의해 무과실책임을 흡수해서도 그 안에서까지 이원적인 귀책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결국 언어의 치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있다. 다섯째로 추상적 위법행위(가해)를 행한 경우에는 행위자는 고도의 주의의무를 지는 점은 인정되더라도, 구체적인 손해가 발생한 사실에서 바로 주의의무위반이 있다고 할 수 없고, 石本雅男 교수 자신이 인정하듯이 과실이 「추정」되는데 그친다. 그렇다고 하면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아무리 고도의 주의를 해도 행위시의 기술로서는 회피가 불가능한 듯한 손해인 점이 입증되는 경우에는 그 추정을 뒤집는 것이 된다. 이렇게 되면 불가항력으로만 면책사유로 하는 무과실책임이, 주의의무위반이란 행위자에 대한 귀책근거에 의해서 설명되어짐은 무리가 있는 것으로 여긴다. 한편 민사책임인 불법행위책임을 과실책임과 무과실책임으로 이원적으로 구성하는 이원론의 의의가 과실책임과 무과실책임의 적절한 기능분담을 시도하는 것에 있다고 한다면, 무과실책임에 의한 귀책이 적당한 영역에 실정법이 결여하고 있는 경우에, 무과실책임의 해석에 의한 확장을 어떻게 고찰하여야 하는가는 이원론을 위하는 입장의 피할 수 없는 논점인 것이다. 또한 민법 제750조에서 과실책임을 원칙으로 하는 한, 과실책임의 요건에서 과실개념의 객관화·정형화가 문제되고, 과실의 입증이란 문제가 여전히 노정하게 된다. 더욱이 자기의 과실이 없이 손해를 입은 피해자가 구제되지 않는 경우가 나오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불법행위책임을 과실책임과 무과실책임 이원적으로 나누어지는 것에 대한 비판은 지금껏 숙제로 남아있다고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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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법행위책임의 연혁적 고찰|작성자 물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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