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ngheej.tistory.com

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손해배상(기)]〈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사건〉- 조약의 해석 방법
    전원합의체 2023. 11. 29. 21:09

     

    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손해배상(기)]〈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사건〉 - 조약의 해석 방법

     

    【판시사항】

    [1] 조약의 해석 방법

    [2] 일제강점기에 강제동원되어 기간 군수사업체인 일본제철 주식회사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갑 등이 위 회사가 해산된 후 새로이 설립된 신일철주금 주식회사를 상대로 위자료 지급을 구한 사안에서, 갑 등이 주장하는 손해배상청구권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조약은 전문·부속서를 포함하는 조약문의 문맥 및 조약의 대상과 목적에 비추어 조약의 문언에 부여되는 통상적인 의미에 따라 성실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여기서 문맥은 조약문(전문 및 부속서를 포함한다) 외에 조약의 체결과 관련하여 당사국 사이에 이루어진 조약에 관한 합의 등을 포함하며, 조약 문언의 의미가 모호하거나 애매한 경우 등에는 조약의 교섭 기록 및 체결 시의 사정 등을 보충적으로 고려하여 의미를 밝혀야 한다.

    [2] [다수의견] 일제강점기에 강제동원되어 기간 군수사업체인 일본제철 주식회사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갑 등이 위 회사가 해산된 후 새로이 설립된 신일철주금 주식회사(이하 ‘신일철주금’이라 한다)를 상대로 위자료 지급을 구한 사안에서, 갑 등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이하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라 한다)인 점,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 이하 ‘청구권협정’이라 한다)의 체결 경과와 전후 사정들에 의하면,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이는 점, 청구권협정 제1조에 따라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이 제2조에 의한 권리문제의 해결과 법적인 대가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도 분명하지 아니한 점, 청구권협정의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갑 등이 주장하는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 사례.

     

    [대법관 이기택의 별개의견] 이미 환송판결은 ‘갑 등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아니하고, 설령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그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당연히 소멸하지 아니하고 다만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되었을 뿐이다’라고 판시하였고, 환송 후 원심도 이를 그대로 따랐다.

    상고심으로부터 사건을 환송받은 법원은 그 사건을 재판할 때에 상고법원이 파기이유로 한 사실상 및 법률상의 판단에 기속된다. 이러한 환송판결의 기속력은 재상고심에도 미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반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대법관 김소영, 대법관 이동원, 대법관 노정희의 별개의견] 청구권협정 및 그에 관한 양해문서 등의 문언, 청구권협정의 체결 경위나 체결 당시 추단되는 당사자의 의사, 청구권협정의 체결에 따른 후속 조치 등의 여러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러나 청구권협정에는 개인청구권 소멸에 관하여 한일 양국 정부의 의사합치가 있었다고 볼 만큼 충분하고 명확한 근거가 없는 점 등에 비추어 갑 등의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 없고,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갑 등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대법관 권순일, 대법관 조재연의 반대의견] 청구권협정 제2조는 대한민국 국민과 일본 국민의 상대방 국가 및 그 국민에 대한 청구권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므로 청구권협정을 국민 개인의 청구권과는 관계없이 양 체약국이 서로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하는 내용의 조약이라고 해석하기 어렵다.

    청구권협정 제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해결’이나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는 문언의 의미는 개인청구권의 완전한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결국,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하여 가지는 개인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되게 되었으므로, 갑 등이 일본 국민인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국내에서 강제동원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소로써 행사하는 것 역시 제한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참조조문】

    [1] 헌법 제6조 제1항,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31조, 제32조 [2] 헌법 제6조 제1항,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1조, 제2조,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 제2호, 민법 제751조, 법원조직법 제8조, 민사소송법 제436조 제2항,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31조, 제32조

    【전 문】

    【원고, 피상고인】 망 소외인의 소송수계인 원고 1.의 가 외 8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해마루 담당변호사 지기룡 외 1인)

    【피고, 상고인】 신일철주금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변호사 주한일 외 2인)

    【환송판결】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68620 판결

    【원심판결】 서울고법 2013. 7. 10. 선고 2012나44947 판결

    【주 문】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 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난 후에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 등 서면들의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 내에서)를 판단한다.

     

    1. 기본적 사실관계

    환송 전후의 각 원심판결 및 환송판결의 이유와 환송 전후의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들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일본의 한반도 침탈과 강제동원 등

    일본은 1910. 8. 22. 한일합병조약 이후 조선총독부를 통하여 한반도를 지배하였다.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점차 전시체제에 들어가게 되었고, 1941년에는 태평양전쟁까지 일으켰다. 일본은 전쟁을 치르면서 군수물자 생산을 위한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1938. 4. 1. ‘국가총동원법’을 제정·공포하고, 1942년 ‘조선인 내지이입 알선 요강’을 제정·실시하여 한반도 각 지역에서 관(관) 알선을 통하여 인력을 모집하였으며, 1944. 10.경부터는 ‘국민징용령’에 의하여 일반 한국인에 대한 징용을 실시하였다. 태평양전쟁은 1945. 8. 6.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다음, 같은 달 15일 일본 국왕이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끝이 났다.

     

    나. 망 소외인과 원고 2, 원고 3, 원고 4(이하 ‘원고들’이라 한다)의 동원과 강제노동 피해 및 귀국 경위

    (1) 원고들은 1923년부터 1929년 사이에 한반도에서 태어나 평양, 보령, 군산 등에서 거주하던 사람들이고, 일본제철 주식회사(이하 ‘구 일본제철’이라 한다)는 1934. 1.경 설립되어 일본 가마이시(부석), 야하타(팔번), 오사카(대판) 등에서 제철소를 운영하던 회사이다.

    (2) 1941. 4. 26. 기간(기간) 군수사업체에 해당하는 구 일본제철을 비롯한 일본의 철강생산자들을 총괄 지도하는 일본 정부 직속기구인 철강통제회가 설립되었다. 철강통제회는 한반도에서 노무자를 적극 확충하기로 하고 일본 정부와 협력하여 노무자를 동원하였고, 구 일본제철은 사장이 철강통제회의 회장을 역임하는 등 철강통제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3) 구 일본제철은 1943년경 평양에서 오사카제철소의 공원모집 광고를 냈는데, 그 광고에는 오사카제철소에서 2년간 훈련을 받으면 기술을 습득할 수 있고 훈련 종료 후 한반도의 제철소에서 기술자로 취직할 수 있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망 소외인, 원고 2는 1943. 9.경 위 광고를 보고, 기술을 습득하여 우리나라에서 취직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려 응모한 다음, 구 일본제철의 모집담당자와 면접을 하고 합격하여 위 담당자의 인솔하에 구 일본제철의 오사카제철소로 가서, 훈련공으로 노역에 종사하였다.

    망 소외인, 원고 2는 오사카제철소에서 1일 8시간의 3교대제로 일하였고, 한 달에 1, 2회 정도 외출을 허락받았으며, 한 달에 2, 3엔 정도의 용돈만 지급받았을 뿐이고, 구 일본제철은 임금 전액을 지급하면 낭비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망 소외인, 원고 2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이들 명의의 계좌에 임금의 대부분을 일방적으로 입금하고 그 저금통장과 도장을 기숙사의 사감에게 보관하게 하였다. 망 소외인, 원고 2는 화로에 석탄을 넣고 깨뜨려서 뒤섞거나 철 파이프 속으로 들어가서 석탄찌꺼기를 제거하는 등 화상의 위험이 있고 기술습득과는 별 관계가 없는 매우 고된 노역에 종사하였는데, 제공되는 식사의 양이 매우 적었다. 또한 경찰이 자주 들러서 이들에게 ‘도망치더라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말하였고 기숙사에서도 감시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하였는데, 원고 2는 도망가고 싶다고 말하였다가 발각되어 기숙사 사감으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체벌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일본은 1944. 2.경부터 훈련공들을 강제로 징용하고, 이후부터 망 소외인, 원고 2에게 아무런 대가도 지급하지 않았다. 오사카제철소의 공장은 1945. 3.경 미합중국 군대의 공습으로 파괴되었고, 이때 훈련공들 중 일부는 사망하였으며, 망 소외인, 원고 2를 포함한 나머지 훈련공들은 1945. 6.경 함경도 청진에 건설 중인 제철소로 배치되어 청진으로 이동하였다. 망 소외인, 원고 2는 기숙사의 사감에게 일본에서 일한 임금이 입금되어 있던 저금통장과 도장을 달라고 요구하였지만, 사감은 청진에 도착한 이후에도 통장과 도장을 돌려주지 아니하였고, 청진에서 하루 12시간 동안 공장건설을 위해 토목공사를 하면서도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였다. 망 소외인, 원고 2는 1945. 8.경 청진공장이 소련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자 소련군을 피하여 서울로 도망하였고 비로소 일제로부터 해방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4) 원고 3은 1941년 대전시장의 추천을 받아 보국대로 동원되어 구 일본제철의 모집담당관의 인솔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구 일본제철의 가마이시제철소에서 코크스를 용광로에 넣고 용광로에서 철이 나오면 다시 가마에 넣는 등의 노역에 종사하였다. 위 원고는 심한 먼지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었고 용광로에서 나오는 불순물에 걸려 넘어져 배에 상처를 입고 3개월간 입원하기도 하였으며 임금을 저금해 준다는 말을 들었을 뿐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였다. 노역에 종사하는 동안 처음 6개월간은 외출이 금지되었고, 일본 헌병들이 보름에 한 번씩 와서 인원을 점검하였으며 일을 나가지 않는 사람에게 꾀를 부린다며 발길질을 하기도 하였다. 위 원고는 1944년이 되자 징병되어 군사훈련을 마친 후 일본 고베에 있는 부대에 배치되어 미군포로감시원으로 일하다가 해방이 되어 귀국하였다.

    (5) 원고 4는 1943. 1.경 군산부(지금의 군산시)의 지시를 받고 모집되어 구 일본제철의 인솔자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구 일본제철의 야하타제철소에서 각종 원료와 생산품을 운송하는 선로의 신호소에 배치되어 선로를 전환하는 포인트 조작과 열차의 탈선방지를 위한 포인트의 오염물 제거 등의 노역에 종사하였는데, 도주하다가 발각되어 약 7일 동안 심한 구타를 당하며 식사를 제공받지 못하기도 하였다. 위 원고는 노역에 종사하는 동안 임금을 전혀 지급받지 못하였고, 일체의 휴가나 개인행동을 허락받지 못하였으며, 일본이 패전한 이후 귀국하라는 구 일본제철의 지시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 등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미군정 당국은 1945. 12. 6. 공포한 군정법령 제33호로 재한국 일본재산을 그 국유·사유를 막론하고 미군정청에 귀속시켰고, 이러한 구 일본재산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8. 9. 20.에 발효한 「대한민국 정부 및 미국 정부 간의 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초협정」에 의하여 대한민국 정부에 이양되었다.

    미국 등을 포함한 연합국 48개국과 일본은 1951. 9. 8. 전후 배상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샌프란시스코에서 평화조약(이하 ‘샌프란시스코 조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고, 위 조약은 1952. 4. 28. 발효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a)는 일본의 통치로부터 이탈된 지역의 시정 당국 및 그 국민과 일본 및 그 국민 간의 재산상 채권·채무관계는 위 당국과 일본 간의 특별약정으로써 처리한다는 내용을, 제4조(b)는 일본은 위 지역에서 미군정 당국이 일본 및 그 국민의 재산을 처분한 것을 유효하다고 인정한다는 내용을 정하였다.

     

    라. 청구권협정 체결 경위와 내용 등

    (1)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1951년 말경부터 국교정상화와 전후 보상문제를 논의하였다. 1952. 2. 15. 제1차 한일회담 본회의가 열려 관련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대한민국은 제1차 한일회담 당시 ‘한·일 간 재산 및 청구권 협정 요강 8개항’(이하 ‘8개 항목’이라 한다)을 제시하였다. 8개 항목 중 제5항은 ‘한국법인 또는 한국자연인의 일본은행권,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이다. 그 후 7차례의 본회의와 이를 위한 수십 차례의 예비회담, 정치회담 및 각 분과위원회별 회의 등을 거쳐 1965. 6. 22.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그 부속협정인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 이하 ‘청구권협정’이라 한다) 등이 체결되었다.

    (2) 청구권협정은 전문(전문)에서 “대한민국과 일본국은, 양국 및 양국 국민의 재산과 양국 및 양국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것을 희망하고, 양국 간의 경제협력을 증진할 것을 희망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라고 정하였다. 제1조에서 ‘일본국이 대한민국에 10년간에 걸쳐 3억 달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2억 달러의 차관을 행하기로 한다’고 정하였고, 이어서 제2조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1.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2. 본조의 규정은 다음의 것(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각기 체약국이 취한 특별조치의 대상이 된 것을 제외한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a) 일방 체약국의 국민으로서 1947년 8월 15일부터 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사이에 타방 체약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사람의 재산, 권리 및 이익

    (b) 일방 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있어서의 통상의 접촉의 과정에 있어 취득되었고 또는 타방 체약국의 관할하에 들어오게 된 것

    3. 2.의 규정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방 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본 협정의 서명일에 타방 체약국의 관할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와 일방 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 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3) 청구권협정과 같은 날 체결되어 1965. 12. 18. 발효된「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조약 제173호, 이하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이라 한다]은 청구권협정 제2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

    (a) “재산, 권리 및 이익”이라 함은 법률상의 근거에 의거하여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는 모든 종류의 실체적 권리를 말하는 것으로 양해되었다.

    (e) 동조 3.에 의하여 취하여질 조치는 동조 1.에서 말하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취하여질 각국의 국내조치를 말하는 것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g) 동조 1.에서 말하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되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에는 한일회담에서 한국 측으로부터 제출된 “한국의 대일청구요강”(소위 8개 항목)의 범위에 속하는 모든 청구가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동 대일청구요강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됨을 확인하였다.

    마. 청구권협정 체결에 따른 양국의 조치

    (1) 청구권협정은 1965. 8. 14. 대한민국 국회에서 비준 동의되고 1965. 11. 12. 일본 중의원 및 1965. 12. 11. 일본 참의원에서 비준 동의된 후 그 무렵 양국에서 공포되었고, 양국이 1965. 12. 18. 비준서를 교환함으로써 발효되었다.

    (2) 대한민국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지급되는 자금을 사용하기 위한 기본적 사항을 정하기 위하여 1966. 2. 19. 「청구권자금의 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청구권자금법’이라 한다)을 제정하였고, 이어서 보상대상이 되는 대일 민간청구권의 정확한 증거와 자료를 수집함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기 위하여, 1971. 1. 19. 「대일 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이하 ‘청구권신고법’이라 한다)을 제정하였다. 그런데 청구권신고법에서 강제동원 관련 피해자의 청구권에 관하여는 ‘일본국에 의하여 군인·군속 또는 노무자로 소집 또는 징용되어 1945. 8. 15. 이전에 사망한 자’만을 신고대상으로 한정하였다. 이후 대한민국은 청구권신고법에 따라 국민들로부터 대일청구권 신고를 접수받은 후 실제 보상을 집행하기 위하여 1974. 12. 21.「대일 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이하 ‘청구권보상법’이라 한다)을 제정하여 1977. 6. 30.까지 총 83,519건에 대하여 총 91억 8,769만 3,000원의 보상금(무상 제공된 청구권자금 3억 달러의 약 9.7%에 해당한다)을 지급하였는데, 그중 피징용사망자에 대한 청구권 보상금으로 총 8,552건에 대하여 1인당 30만 원씩 총 25억 6,560만 원을 지급하였다.

    (3) 일본은 1965. 12. 18.「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일본국과 대한민국 간의 협정 제2조의 실시에 따른 대한민국 등의 재산권에 대한 조치에 관한 법률」(이하 ‘재산권조치법’이라 한다)을 제정하였다. 그 주된 내용은 대한민국 또는 그 국민의 일본 또는 그 국민에 대한 채권 또는 담보권으로서 청구권협정 제2조의 재산, 이익에 해당하는 것을 청구권협정일인 1965. 6. 22. 소멸하게 한다는 것이다.

     

    바. 대한민국의 추가 조치

    (1) 대한민국은 2004. 3. 5.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 ‘진상규명법’이라 한다)을 제정하였다. 위 법률과 그 시행령에 따라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되어 ‘일제강점하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조사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졌다.

    (2) 대한민국은 2005. 1.경 청구권협정과 관련한 일부 문서를 공개하였다. 그 후 구성된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이하 ‘민관공동위원회’라 한다)에서는 2005. 8. 26.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 정부와 군대 등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으며, 사할린동포 문제와 원폭피해자 문제도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공식의견을 표명하였는데, 위 공식의견에는 아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 한일협상 당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의 법적 배상·보상을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고통 받은 역사적 피해사실”에 근거하여 정치적 보상을 요구하였으며, 이러한 요구가 양국 간 무상자금산정에 반영되었다고 보아야 함

    ○ 청구권협정을 통하여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불은 개인재산권(보험, 예금 등), 조선총독부의 대일채권 등 한국 정부가 국가로서 갖는 청구권,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임

    ○ 청구권협정은 청구권 각 항목별 금액결정이 아니라 정치협상을 통해 총액결정방식으로 타결되었기 때문에 각 항목별 수령금액을 추정하기 곤란하지만, 정부는 수령한 무상자금 중 상당 금액을 강제동원 피해자의 구제에 사용하여야 할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판단됨

    ○ 그러나 75년 우리 정부의 보상 당시 강제동원 부상자를 보호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도의적 차원에서 볼 때 피해자 보상이 불충분하였다고 볼 측면이 있음

    (3) 대한민국은 2006. 3. 9. 청구권보상법에 근거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불충분함을 인정하고 추가보상 방침을 밝힌 후, 2007. 12. 10.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2007년 희생자지원법’이라 한다)을 제정하였다. 위 법률과 그 시행령은, ① 1938. 4. 1.부터 1945. 8. 15. 사이에 일제에 의하여 군인·군무원·노무자 등으로 국외로 강제동원되어 그 기간 중 또는 국내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강제동원희생자’의 경우 1인당 2,000만 원의 위로금을 유족에게 지급하고, ② 국외로 강제동원되어 부상으로 장해를 입은 ‘강제동원희생자’의 경우 1인당 2,000만 원 이하의 범위 안에서 장해의 정도를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을 위로금으로 지급하며, ③ 강제동원희생자 중 생존자 또는 위 기간 중 국외로 강제동원되었다가 국내로 돌아온 사람 중 강제동원희생자에 해당하지 못한 ‘강제동원생환자’ 중 생존자가 치료나 보조장구 사용이 필요한 경우에 그 비용의 일부로서 연간 의료지원금 80만 원을 지급하고, ④ 위 기간 중 국외로 강제동원되어 노무제공 등을 한 대가로 일본국 또는 일본 기업 등으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었던 급료 등을 지급받지 못한 ‘미수금피해자’ 또는 그 유족에게 미수금피해자가 지급받을 수 있었던 미수금을 당시 일본 통화 1엔에 대하여 대한민국 통화 2,000원으로 환산하여 미수금지원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였다.

    (4) 한편 진상규명법과 2007년 희생자지원법이 폐지되는 대신 2010. 3. 22.부터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는「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2010년 희생자지원법’이라 한다)은 사할린지역 강제동원피해자 등을 보상대상에 추가하여 규정하고 있다.

     

    2. 상고이유 제1점에 관하여

    환송 후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를 들어, 망 소외인, 원고 2가 이 사건 소송에 앞서 일본에서 피고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가 이 사건 일본판결로 패소·확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일본판결이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규범적 인식을 전제로 하여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한반도와 망 소외인, 원고 2에게 적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평가한 이상, 이러한 판결 이유가 담긴 이 사건 일본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이 사건 일본판결을 승인하여 그 효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환송 후 원심의 판단은 환송판결의 취지에 따른 것으로서,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외국판결 승인요건으로서의 공서양속 위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위법이 없다.

     

    3. 상고이유 제2점에 관하여

    환송 후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를 들어, 원고들을 노역에 종사하게 한 구 일본제철이 일본국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해산되고 그 판시의 ‘제2회사’가 설립된 뒤 흡수합병의 과정을 거쳐 피고로 변경되는 등의 절차를 거쳤다고 하더라도,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에 대한 이 사건 청구권을 피고에 대하여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환송 후 원심의 판단 역시 환송판결의 취지에 따른 것으로서,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외국법 적용에 있어 공서양속 위반 여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위법이 없다.

     

    4. 상고이유 제3점에 관하여

    가. 조약은 전문·부속서를 포함하는 조약문의 문맥 및 조약의 대상과 목적에 비추어 그 조약의 문언에 부여되는 통상적인 의미에 따라 성실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여기서 문맥은 조약문(전문 및 부속서를 포함한다) 외에 조약의 체결과 관련하여 당사국 사이에 이루어진 그 조약에 관한 합의 등을 포함하며, 조약 문언의 의미가 모호하거나 애매한 경우 등에는 조약의 교섭 기록 및 체결 시의 사정 등을 보충적으로 고려하여 그 의미를 밝혀야 한다.

    나. 이러한 법리에 따라, 앞서 본 사실관계 및 채택된 증거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들이 주장하는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우선 이 사건에서 문제 되는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이하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라 한다)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을 청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위와 같은 위자료를 청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환송 후 원심의 아래와 같은 사실인정과 판단은 기록상 이를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즉 ① 일본 정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 불법적인 침략전쟁의 수행과정에서 기간 군수사업체인 일본의 제철소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조직적으로 인력을 동원하였고, 핵심적인 기간 군수사업체의 지위에 있던 구 일본제철은 철강통제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일본 정부의 위와 같은 인력동원정책에 적극 협조하여 인력을 확충하였다. ② 원고들은 당시 한반도와 한국민들이 일본의 불법적이고 폭압적인 지배를 받고 있었던 상황에서 장차 일본에서 처하게 될 노동 내용이나 환경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 채 일본 정부와 구 일본제철의 위와 같은 조직적인 기망에 의하여 동원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③ 더욱이 원고들은 성년에 이르지 못한 어린 나이에 가족과 이별하여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였고, 구체적인 임금액도 모른 채 강제로 저금을 해야 했으며, 일본 정부의 혹독한 전시 총동원체제에서 외출이 제한되고 상시 감시를 받아 탈출이 불가능하였으며 탈출시도가 발각된 경우 혹독한 구타를 당하기도 하였다. ④ 이러한 구 일본제철의 원고들에 대한 행위는 당시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다.

    (2) 앞서 본 청구권협정의 체결 경과와 그 전후 사정, 특히 아래와 같은 사정들에 의하면,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인다.

    ① 앞서 본 것처럼, 전후 배상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51. 9. 8. 미국 등 연합국 48개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a)는 ‘일본의 통치로부터 이탈된 지역(대한민국도 이에 해당)의 시정 당국 및 그 국민과 일본 및 일본 국민 간의 재산상 채권·채무관계는 이러한 당국과 일본 간의 특별약정으로써 처리한다’고 규정하였다.

    ②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체결된 이후 곧이어 제1차 한일회담(1952. 2. 15.부터 같은 해 4. 25.까지)이 열렸는데, 그때 한국 측이 제시한 8개 항목도 기본적으로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무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위 8개 항목 중 제5항에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라는 문구가 있지만, 8개 항목의 다른 부분 어디에도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내용은 없으므로, 위 제5항 부분도 일본 측의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보인다. 따라서 위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에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까지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③ 1965. 3. 20. 대한민국 정부가 발간한 ‘한일회담백서’(을 제18호증)에 의하면,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가 한·일 간 청구권 문제의 기초가 되었다고 명시하고 있고, 나아가 “위 제4조의 대일청구권은 승전국의 배상청구권과 구별된다.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조인당사국이 아니어서 제14조 규정에 의한 승전국이 향유하는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한·일 간 청구권 문제에는 배상청구를 포함시킬 수 없다.”는 설명까지 하고 있다.

    ④ 이후 실제로 체결된 청구권협정문이나 그 부속서 어디에도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언급하는 내용은 전혀 없다. 청구권협정 제2조 1.에서는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라고 하여, 위 제4조(a)에 규정된 것 이외의 청구권도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위와 같이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은 이상, 위 제4조(a)의 범주를 벗어나는 청구권, 즉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직결되는 청구권까지도 위 대상에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 2.(g)에서도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는 것’에 위 8개 항목의 범위에 속하는 청구가 포함되어 있다고 규정하였을 뿐이다.

    ⑤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도 ‘청구권협정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공식의견을 밝혔다.

    (3) 청구권협정 제1조에 따라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이 제2조에 의한 권리문제의 해결과 법적인 대가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도 분명하지 아니하다.

    청구권협정 제1조에서는 ‘3억 달러 무상 제공, 2억 달러 차관(유상) 실행’을 규정하고 있으나, 그 구체적인 명목에 대해서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 차관의 경우 일본의 해외경제협력기금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것으로 하고, 위 무상 제공 및 차관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유익한 것이어야 한다는 제한을 두고 있을 뿐이다. 청구권협정 전문에서 ‘청구권 문제 해결’을 언급하고 있기는 하나, 위 5억 달러(무상 3억 달러와 유상 2억 달러)와 구체적으로 연결되는 내용은 없다. 이는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 2.(g)에서 언급된 ‘8개 항목’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일본 측의 입장도 청구권협정 제1조의 돈이 기본적으로 경제협력의 성격이라는 것이었고, 청구권협정 제1조와 제2조 사이에 법률적인 상호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는, 청구권협정 당시 정부가 수령한 무상자금 중 상당 금액을 강제동원 피해자의 구제에 사용하여야 할 ‘도의적 책임’이 있었다고 하면서, 1975년 청구권보상법 등에 의한 보상이 ‘도의적 차원’에서 볼 때 불충분하였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 제정된 2007년 희생자지원법 및 2010년 희생자지원법 모두 강제동원 관련 피해자에 대한 위로금이나 지원금의 성격이 ‘인도적 차원’의 것임을 명시하였다.

    (4) 청구권협정의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청구권협정의 일방 당사자인 일본 정부가 불법행위의 존재 및 그에 대한 배상책임의 존재를 부인하는 마당에, 피해자 측인 대한민국 정부가 스스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까지도 포함된 내용으로 청구권협정을 체결하였다고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5) 환송 후 원심에서 피고가 추가로 제출한 증거들도,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위와 같은 판단에 지장을 준다고 보이지 않는다.

    위 증거들에 의하면, 1961. 5. 10. 제5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과정에서 대한민국 측이 ‘다른 국민을 강제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입힌 피징용자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언급한 사실, 1961. 12. 15. 제6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과정에서 대한민국 측이 ‘8개 항목에 대한 보상으로 총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하면서, 그중 3억 6,400만 달러(약 30%)를 강제동원 피해보상에 대한 것으로 산정(생존자 1인당 200달러, 사망자 1인당 1,650달러, 부상자 1인당 2,000달러 기준)’한 사실 등을 알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발언 내용은 대한민국이나 일본의 공식 견해가 아니라 구체적인 교섭 과정에서 교섭 담당자가 한 말에 불과하고, 13년에 걸친 교섭 과정에서 일관되게 주장되었던 내용도 아니다. ‘피징용자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언급한 것은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발언에 불과한 것으로 볼 여지가 크고, 실제로 당시 일본 측의 반발로 제5차 한일회담 협상은 타결되지도 않았다. 또한 위와 같이 협상 과정에서 총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청구권협정은 3억 달러(무상)로 타결되었다. 이처럼 요구액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3억 달러만 받은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도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 것이라고는 도저히 보기 어렵다.

    다. 환송 후 원심이 이와 같은 취지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과 효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위법이 없다.

    한편 피고는 이 부분 상고이유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는 전제하에, 청구권협정으로 포기된 권리가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에 한정되어서만 포기된 것이 아니라 개인청구권 자체가 포기(소멸)된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도 하고 있으나, 이 부분은 환송 후 원심의 가정적 판단에 관한 것으로서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받아들일 수 없다.

     

    5. 상고이유 제4점에 관하여

    환송 후 원심은, 1965년 한일 간에 국교가 정상화되었으나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모두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청구권협정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한 개인청구권까지도 포괄적으로 해결된 것이라는 견해가 대한민국 내에서 널리 받아들여져 온 사정 등 그 판시와 같은 이유를 들어, 이 사건 소 제기 당시까지도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대한민국에서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여 원고들에 대한 채무의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환송 후 원심의 판단 또한 환송판결의 취지에 따른 것으로서,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소멸시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위법이 없다.

    6. 상고이유 제5점에 관하여

    불법행위로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액수에 관하여는 사실심법원이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그 직권에 속하는 재량에 의하여 이를 확정할 수 있다(대법원 1999. 4. 23. 선고 98다41377 판결 등 참조).     98다41377

    환송 후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원고들에 대한 위자료를 판시 액수로 정하였다. 환송 후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이 부분 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위자료 산정에 있어서 현저하게 상당성을 결하는 등의 위법이 없다.

     

    7. 결론

    그러므로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도록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에는 상고이유 제3점에 관한 판단에 대하여 대법관 이기택의 별개의견, 대법관 김소영, 대법관 이동원, 대법관 노정희의 별개의견이 각 있고, 대법관 권순일, 대법관 조재연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었으며,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김선수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 있다.

     

    8. 상고이유 제3점에 관한 판단에 대한 대법관 이기택의 별개의견

    가. 이 부분 상고이유 요지는, 원고들이 주장하는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고, 청구권협정에 포함된 청구권은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뿐만 아니라 개인청구권까지 완전히 소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 이미 환송판결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아니하고, 설령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그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당연히 소멸하지 아니하고 다만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되었을 뿐이다’라고 판시하였고, 환송 후 원심도 이를 그대로 따랐다.

    상고심으로부터 사건을 환송받은 법원은 그 사건을 재판할 때에 상고법원이 파기이유로 한 사실상 및 법률상의 판단에 기속된다. 이러한 환송판결의 기속력은 재상고심에도 미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반하는 위와 같은 상고이유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나. 법원조직법 제8조는 “상급법원 재판에서의 판단은 해당 사건에 관하여 하급심을 기속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민사소송법 제436조 제2항은 “사건을 환송받거나 이송받은 법원은 다시 변론을 거쳐 재판하여야 한다. 이 경우에는 상고법원이 파기의 이유로 삼은 사실상 및 법률상 판단에 기속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상고법원으로부터 사건을 환송받은 법원은 그 사건을 재판할 때에 상고법원이 파기이유로 한 사실상 및 법률상의 판단에 기속된다. 다만 환송 후 심리과정에서 새로운 주장이나 증명이 제출되어 기속적 판단의 기초가 된 사실관계에 변동이 생긴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기속력이 미치지 아니할 수 있다(대법원 1988. 3. 8. 선고 87다카1396 판결 등 참조).      87다카139687

    이 사건에서 만약 환송 후 원심의 심리과정에서 새로운 주장이나 증명을 통해 환송판결의 이 부분 판단의 기초가 된 사실관계에 변동이 생겼다고 평가할 수 있다면, 기속력이 미치지 아니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선 다수의견이 적절히 설시한 것과 같이, 환송 후 원심에서 피고가 추가로 제출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제5차 및 제6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과정에서의 대한민국 측의 발언 내용들만으로는, 도저히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아니한다’라는 환송판결의 기속적 판단의 기초가 된 사실관계에 변동이 생긴 경우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환송판결의 가정적 판단, 즉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당연히 소멸하지 아니하고 다만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되었을 뿐이다’라는 부분도 그 판단의 기초가 된 사실관계에 변동이 생겼다고 보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와 관련하여 환송 후 원심에서 새로 제출된 증거들은 주로 청구권협정의 해석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밝힌 것에 불과하여 ‘사실관계’의 변동이라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다. 환송판결의 기속력은 환송 후 원심뿐만 아니라 재상고심에도 미치는 것이 원칙이다(대법원 1995. 8. 22. 선고 94다43078 판결 등 참조).        94다43078

    다만 대법원 2001. 3. 15. 선고 98두15597 전원합의체 판결은 “대법원은 법령의 정당한 해석적용과 그 통일을 주된 임무로 하는 최고법원이고, 대법원의 전원합의체는 종전에 대법원에서 판시한 법령의 해석적용에 관한 의견을 스스로 변경할 수 있는 것인바(법원조직법 제7조 제1항 제3호), 환송판결이 파기이유로 한 법률상 판단도 여기에서 말하는 ‘대법원에서 판시한 법령의 해석적용에 관한 의견'에 포함되는 것이므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가 종전의 환송판결의 법률상 판단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그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통상적인 법령의 해석적용에 관한 의견의 변경절차에 따라 이를 변경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여, 환송판결의 기속력이 재상고심의 전원합의체에는 미치지 아니한다는 취지로 판시한 바 있다.

    그러나 위 98두15597 전원합의체 판결의 의미를 ‘전원합의체에서 판단하는 이상 언제라도 환송판결의 기속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환송판결에 명백한 법리오해가 있어 반드시 이를 시정해야 하는 상황이거나 환송판결이 전원합의체를 거치지 아니한 채 종전 대법원판결이 취한 견해와 상반된 입장을 취한 때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기속력이 미치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새겨야 한다. 이렇게 보지 아니할 경우 법률에서 환송판결의 기속력을 인정한 취지가 무색하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 98두15597 전원합의체 판결의 사안 자체도, 환송판결에 명백한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환송판결이 전원합의체를 거치지도 아니한 채 기존 대법원판결에 저촉되는 판단을 한 경우였다.

    이러한 법리에 따라 이 사건에 돌아와 살펴보면, 청구권협정의 효력과 관련하여 환송판결이 설시한 법리에 명백한 오류가 있다거나 종전 대법원판결에 반하는 내용이 있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서 판단한다고 하더라도 쉽사리 환송판결이 설시한 법리를 재심사하거나 뒤집을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라. 결국, 어느 모로 보나 이 부분 상고이유 주장은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반하는 것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

    한편 앞서 본 상고이유 제1, 2, 4점에 관한 판단 부분에서 ‘환송 후 원심의 판단이 환송판결의 취지에 따른 것으로서 상고이유 주장과 같은 위법이 없다’고 판시한 것은, 위와 같은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관한 법리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이 부분 판단에 대해서는 다수의견과 견해를 달리하지 아니한다는 점을 덧붙여 두고자 한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여야 한다는 결론에서는 다수의견과 의견을 같이하지만 상고이유 제3점에 관하여는 다수의견과 그 구체적인 이유를 달리하므로, 별개의견으로 이를 밝혀 둔다.

     

    9. 상고이유 제3점에 관한 판단에 대한 대법관 김소영, 대법관 이동원, 대법관 노정희의 별개의견

    가.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 관해서는 다수의견과 결론을 같이한다. 다만 그 구체적인 이유에서는 다수의견과 견해를 달리한다.

    다수의견은 ‘원고들이 주장하는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청구권협정의 해석상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원고들 개인의 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 없고,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원고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피고를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이렇게 보아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 우선 조약의 해석 방법에 관하여 다수의견이 밝힌 법리에 관하여는 견해를 달리하지 않는다. 이러한 법리에 따라, 환송 후 원심에서 비로소 제출된 증거들(을 제16 내지 18, 37 내지 39, 40 내지 47, 50, 52, 53, 55호증)까지 포함하여 원심이 적법하게 채택·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다수의견과 달리,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1) 환송 후 원심에서 제출된 증거들을 비롯한 채택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청구권협정의 구체적인 체결 과정은 다음과 같다.

    (가) 앞서 보았듯이, 1952. 2. 15. 개최된 제1차 한일회담 당시 대한민국은 8개 항목을 제시하였는데, 이후 일본의 역청구권 주장, 독도 및 평화선 문제에 대한 이견, 양국의 정치적 상황 등으로 제4차 한일회담까지는 8개 항목에 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나) 제5차 한일회담에서부터 8개 항목에 대한 실질적인 토의가 이루어졌는데, 제5차 한일회담에서는 아래와 같은 논의가 있었다.

    ① 1961. 5. 10. 제5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일반청구권소위원회 제13차 회의에서 대한민국 측은 8개 항목 중 위 제5항(한국법인 또는 한국자연인의 일본은행권,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과 관련하여 ‘강제징용으로 피해를 입은 개인에 대한 보상’을 일본 측에 요구하였다. 구체적으로 ‘생존자, 부상자, 사망자, 행방불명자 그리고 군인·군속을 포함한 피징용자 전반에 대하여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라면서 ‘이는 다른 국민을 강제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입힌 피징용자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의미한다’는 취지로 설명하였다. 이에 일본 측이 개인의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인지, 대한민국에서 한국인 피해자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를 할 용의가 있는지 등에 대하여 묻자, 대한민국 측은 ‘나라로서 청구하는 것이며, 피해자 개인에 대한 보상은 국내에서 조치할 성질의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하였다.

    ② 일본 측은 대한민국 측의 위와 같은 개인 피해 보상요구에 반발하면서 구체적인 징용·징병의 인원수나 증거자료를 요구하거나 양국 국교가 회복된 뒤에 개별적으로 해결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는 등 대한민국 측의 요구에 그대로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하였다.

    ③ 제5차 한일회담의 청구권위원회에서는 1961. 5. 16. 군사정변에 의해 회담이 중단되기까지 8개 항목의 제1항부터 제5항까지 토의가 진행되었으나,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를 확인하였을 뿐 실질적인 의견 접근을 이루는 데는 실패하였다.

    (다) 제6차 한일회담이 1961. 10. 20. 개시된 후에는 청구권에 대한 세부적 논의가 시일만 소요될 뿐 해결이 요원하다는 판단에서 정치적 측면의 접근이 모색되었는데, 아래와 같은 협상 과정을 거쳐 제7차 한일회담 중 1965. 6. 22. 마침내 청구권협정이 체결되었다.

    ① 1961. 12. 15. 제6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일반청구권소위원회 제7차 회의에서 대한민국 측은 일본 측에 8개 항목에 대한 보상으로 총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하면서, 강제동원에 대한 피해보상으로 생존자 1인당 200달러, 사망자 1인당 1,650달러, 부상자 1인당 2,000달러를 기준으로 계산한 3억 6,400만 달러(약 30%)를 산정하였다.

    ② 1962. 3.경 외상회담에서는 대한민국 측의 지불요구액과 일본 측의 지불용의액을 비공식적으로 제시하기로 하였는데, 그 결과 대한민국 측의 지불요구액인 순변제 7억 달러와 일본 측의 지불용의액인 순변제 7,000만 달러 및 차관 2억 달러 사이에 현저한 차이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③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측은 당초부터 청구권에 대한 순변제로 하면 법률관계와 사실관계를 엄격히 따져야 될 뿐 아니라 그 금액도 적어져서 대한민국이 수락할 수 없게 될 터이니, 유상과 무상의 경제협력의 형식을 취하여서 금액을 상당한 정도로 올리고 그 대신 청구권을 포기하도록 하자고 제안하였다. 이에 대하여 대한민국 측은 청구권에 대한 순변제로 받아야 하는 입장이나 문제를 대국적 견지에서 해결하기 위하여 청구권 해결의 테두리 안에서 순변제와 무상조 지불의 2개 명목으로 해결할 것을 주장하다가, 후에 다시 양보하여 청구권 해결의 테두리 안에서 순변제 및 무상조 지불의 2개 명목으로 하되 그 금액을 각각 구분하여 표시하지 않고 총액만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것을 제의하였다.

    ④ 이후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일본에서 이케다 일본 수상과 1차, 오히라 일본 외상과 2차에 걸쳐서 회담을 하였는데, 오히라 외상과 한 1962. 11. 12. 제2차 회담 시 청구권 문제의 금액, 지불세목 및 조건 등에 관하여 양측 정부에 건의할 타결안에 관한 원칙적인 합의를 하였다. 그 후 구체적 조정 과정을 거쳐 제7차 한일회담이 진행 중이던 1965. 4. 3. 당시 외무부 장관이던 이동원과 일본의 외무부 대신이었던 시이나 에쓰사부로오 사이에 ‘한·일 간의 청구권 문제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2) 앞에서 본 것처럼, 청구권협정 전문은 “대한민국과 일본국은, 양국 및 양국 국민의 재산과 양국 및 양국 국민 간의 청구권(이하 ‘청구권협정상 청구권’이라 한다)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것을 희망하고, 양국 간의 경제협력을 증진할 것을 희망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라고 전제하고, 제2조 1.은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 9. 8.에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라고 정하였다.

    또한 청구권협정과 같은 날 체결된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은 위 제2조에 관하여 “동조 1.에서 말하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되는 청구권협정상 청구권에 관한 문제에는 한일회담에서 한국 측으로부터 제출된 ‘한국의 대일청구요강’(소위 8개 항목)의 범위에 속하는 모든 청구가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동 대일청구요강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됨을 확인하였다.”라고 정하였는데, 8개 항목 중 제5항에는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이하 ‘피징용 청구권’이라 한다)의 변제청구’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청구권협정 등의 문언에 의하면,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청구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일방 국민의 상대국 및 그 국민에 대한 청구권까지도 협정의 대상으로 삼았음이 명백하고,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은 청구권협정상 청구권의 대상에 피징용 청구권도 포함됨을 분명히 하고 있다.

    (3) 청구권협정 자체의 문언은 제1조에 따라 일본이 대한민국에 지급하기로 한 경제협력자금이 제2조에 의한 권리문제의 해결에 대한 대가인지에 관하여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는 아니하다.

    그러나 앞에서 본 것처럼, ① 대한민국은 1961. 5. 10. 제5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일반청구권소위원회 제13차 회의에서 피징용 청구권 관련하여 ‘생존자, 부상자, 사망자, 행방불명자 그리고 군인·군속을 포함한 피징용자 전반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며 ‘다른 국민을 강제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입힌 피징용자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까지도 적극적으로 요청하였을 뿐만 아니라, 1961. 12. 15. 제6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일반청구권소위원회 제7차 회의에서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보상금을 구체적으로 3억 6,400만 달러로 산정하고 이를 포함하여 8개 항목에 대한 총 보상금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하였고, ② 제5차 한일회담 당시 대한민국이 위 요구액은 국가로서 청구하는 것이고 피해자 개인에 대한 보상은 국내에서 조치할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일본은 구체적인 징용·징병의 인원수나 증거자료를 요구하여 협상에 난항을 겪었으며, ③ 이에 일본은 증명의 곤란함 등을 이유로 유상과 무상의 경제협력의 형식을 취하여 금액을 상당한 정도로 올리고 그 대신 청구권을 포기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하였고, 대한민국은 순변제 및 무상조 등 2개 명목으로 금원을 수령하되 구체적인 금액은 항목별로 구분하지 않고 총액만을 표시하는 방법을 다시 제안함에 따라, ④ 이후 구체적인 조정 과정을 거쳐 1965. 6. 22. 제1조에서는 경제협력자금의 지원에 관하여 정하고 아울러 제2조에서는 권리관계의 해결에 관하여 정하는 청구권협정이 체결되었다.

    이러한 청구권협정의 체결에 이르기까지의 경위 등에 비추어 보면, 청구권협정상 청구권의 대상에 포함된 피징용 청구권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까지도 포함한 것으로서, 청구권협정 제1조에서 정한 경제협력자금은 실질적으로 이러한 손해배상청구권까지 포함한 제2조에서 정한 권리관계의 해결에 대한 대가 내지 보상으로서의 성질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다고 보이고, 양국도 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그와 같이 인식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4) 8개 항목 중 제5항은 피징용 청구권과 관련하여 ‘보상금’이라는 용어만 사용하고 ‘배상금’이란 용어는 사용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 ‘보상’이 ‘식민지배의 적법성을 전제로 하는 보상’만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위와 같이 협상 과정에서 양측이 보인 태도만 보더라도 양국 정부가 엄밀한 의미에서의 ‘보상’과 ‘배상’을 구분하고 있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양국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한 배상’도 당연히 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상호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인다.

    (5) 그뿐 아니라 대한민국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지급되는 자금을 사용하기 위한 기본적 사항을 정하기 위하여 청구권자금법 및 청구권신고법 등을 제정·시행하여, 일본에 의하여 노무자로 징용되었다가 1945. 8. 15. 이전에 사망한 자의 청구권을 청구권협정에 따라 보상하는 민간청구권에 포함시켜 그 피징용사망자에 대한 신고 및 보상 절차를 마쳤다. 이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어 있음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청구권협정 관련 일부 문서가 공개된 후 구성된 민관공동위원회도 2005. 8. 26. 청구권협정의 법적 효력에 관하여 공식의견을 표명하였는데, 일본국 위안부 문제 등 일본 정부와 군대 등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하면서도,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하여는 ‘청구권협정을 통하여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 달러에는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되었다’고 보았다.

    나아가 대한민국은 2007. 12. 10. 청구권자금법 등에 의하여 이루어진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불충분하였다는 반성적인 고려에서 2007년 희생자지원법을 제정·시행하여, 1938. 4. 1.부터 1945. 8. 15.까지 사이에 일제에 의하여 노무자 등으로 국외로 강제동원된 희생자·부상자·생환자 등에 대하여 위로금을 지급하고, 강제동원되어 노무를 제공하였으나 일본 기업 등으로부터 지급받지 못한 미수금을 대한민국 통화로 환산하여 지급하였다.

    이와 같이 대한민국은 청구권협정에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되어 있음을 전제로 하여, 청구권협정 체결 이래 장기간 그에 따른 보상 등의 후속 조치를 취하였음을 알 수 있다.

    (6) 이상의 내용, 즉 청구권협정 및 그에 관한 양해문서 등의 문언, 청구권협정의 체결 경위나 체결 당시 추단되는 당사자의 의사, 청구권협정의 체결에 따른 후속 조치 등의 여러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이와 달리,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환송 후 원심의 이 부분 판단에는, 조약의 해석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한 잘못이 있다.

    다. 그러나 위와 같은 잘못에도 불구하고, ‘원고들의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 없고, 다만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됨으로써 일본의 국내 조치로 해당 청구권이 일본 내에서 소멸하여도 대한민국이 이를 외교적으로 보호할 수단을 상실하게 될 뿐이다’라는 환송 후 원심의 가정적 판단은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이를 수긍할 수 있다.

    (1) 청구권협정에는 개인청구권 소멸에 관하여 한일 양국 정부의 의사합치가 있었다고 볼 만큼 충분하고 명확한 근거가 없다.

    과거 주권국가가 외국과 교섭을 하여 자국국민의 재산이나 이익에 관한 사항을 일괄적으로 해결하는 이른바 일괄처리협정(lump sum agreements)이 국제분쟁의 해결·예방을 위한 방식의 하나로 채택되어 왔던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이러한 협정을 통해 국가가 ‘외교적 보호권(diplomatic protection)’, 즉 ‘자국민이 외국에서 위법·부당한 취급을 받은 경우 그의 국적국이 외교절차 등을 통하여 외국 정부를 상대로 자국민에 대한 적당한 보호 또는 구제를 요구할 수 있는 국제법상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개인의 청구권까지도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다고 보려면, 적어도 해당 조약에 이에 관한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고 보아야 한다. 국가와 개인이 별개의 법적 주체라는 근대법의 원리는 국제법상으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권리의 ‘포기’를 인정하려면 그 권리자의 의사를 엄격히 해석하여야 한다는 법률행위 해석의 일반원칙에 의할 때, 개인의 권리를 국가가 나서서 대신 포기하려는 경우에는 이를 더욱 엄격하게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구권협정은 그 문언상 개인청구권 자체의 포기나 소멸에 관하여는 아무런 규정도 두고 있지 않다. 이 점에서 연합국과 일본 사이에 1951. 9. 8.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14조(b)에서 “연합국은 모든 보상청구, 연합국과 그 국민의 배상청구 및 군의 점령비용에 관한 청구를 모두 포기한다.”라고 정하여 명시적으로 청구권의 포기(waive)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과 구별된다. 물론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표현이 사용되기는 하였으나, 위와 같은 엄격해석의 필요성에 비추어 이를 개인청구권의 ‘포기’나 ‘소멸’과 같은 의미로 보기는 어렵다.

    앞서 든 증거들에 의하면, 청구권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 일본은 청구권협정에 따라 제공될 자금과 청구권 간의 법률적 대가관계를 일관되게 부인하였고, 청구권협정을 통해 개인청구권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소멸된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이에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은 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향후 제공될 자금의 성격에 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청구권협정을 체결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청구권협정에서 사용된 ‘해결된 것이 된다’거나 주체 등을 분명히 하지 아니한 채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는 등의 문언은 의도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야 하고, 이를 개인청구권의 포기나 소멸, 권리행사제한이 포함된 것으로 쉽게 판단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러한 사정 등에 비추어 보면, 청구권협정에서 양국 정부의 의사는 개인청구권은 포기되지 아니함을 전제로 정부 간에만 청구권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하자는 것, 즉 외교적 보호권에 한정하여 포기하자는 것이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2) 앞서 본 것처럼, 일본은 청구권협정 직후 일본국 내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및 그 국민에 대한 권리를 소멸시키는 내용의 재산권조치법을 제정·시행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청구권협정만으로는 대한민국 국민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음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 즉 앞서 본 바와 같이 청구권협정 당시 일본은 청구권협정을 통해 개인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만 포기된다고 보는 입장이었음이 분명하고, 협정의 상대방인 대한민국도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고 보인다. 따라서 양국의 진정한 의사 역시도 외교적 보호권만 포기된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대한민국이 1965. 7. 5. 발간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조약 및 협정 해설’에는 청구권협정 제2조에 관하여 “재산 및 청구권 문제의 해결에 관한 조항으로 소멸되는 우리의 재산 및 청구권의 내용을 보면, 우리 측이 최초에 제시한 바 있는 8개 항목의 대일청구 요강에서 요구한 것은 모두 소멸케 되는바, 따라서 피징용자의 미수금 및 보상금, 한국인의 대일본 정부 및 일본 국민에 대한 각종 청구 등이 모두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소멸케 되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당시 대한민국의 입장이 개인청구권까지도 소멸되는 것이었다고 볼 여지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와 같이 당시 일본의 입장이 ‘외교적 보호권 한정 포기’임이 명백하였던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내심의 의사가 위와 같았다고 하여 청구권협정에서 개인청구권까지 포기되는 것에 대한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더욱이 이후 대한민국에서 청구권자금법 등 보상입법을 통하여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하여 이루어진 보상 내역이 실제 피해에 대비하여 극히 미미하였던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대한민국의 의사가 청구권협정을 통해 개인청구권까지도 완전히 포기시키겠다는 것이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3) 일괄처리협정의 효력 및 해석과 관련하여 국제사법재판소(ICJ)가 2012. 2. 3. 선고한 독일 대 이탈리아 주권면제 사건(Jurisdictional Immunities of the State, Germany v. Italy: Greece intervening)이 국제법적인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많은 쟁점은 차치하더라도, 1961. 6. 2. 이탈리아와 서독 사이에 체결된「특정 재산 관련, 경제적·재정적 문제의 해결에 관한 협정(Treaty on the Settlement of certain property-related, economic and financial questions)」및「나치의 박해를 받은 이탈리아 국민들에 대한 보상에 관한 협정(Agreement on Compensation for Italian Nationals Subjected to National-Socialist Measures of Persecution)」이 체결된 경위, 그 내용이나 문언이 청구권협정의 그것과 같지 아니하므로 청구권협정을 이탈리아와 서독 사이의 위 조약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아니하다.

    라. 결국,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 다수의견의 입장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본 환송 후 원심의 결론은 타당하다. 거기에 이 부분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청구권협정의 효력,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 국민에 대한 개인청구권의 행사가능성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한 잘못이 없다.

    10. 대법관 권순일, 대법관 조재연의 반대의견

    가. 대법관 김소영, 대법관 이동원, 대법관 노정희의 별개의견(이하 ‘별개의견2’라고 한다)이 상고이유 제3점에 관하여, 청구권협정의 해석상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는 입장을 취한 데 대해서는 견해를 같이한다.

    그러나 별개의견2가 청구권협정으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아 원고들이 대한민국에서 피고를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 청구권협정 제2조 1.은 “…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라는 문언의 의미가 무엇인지, 즉 청구권협정으로 양 체약국이 그 국민의 개인청구권에 관한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한다는 의미인지 또는 그 청구권 자체가 소멸한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양 체약국 국민이 더 이상 소로써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의미인지는 기본적으로 청구권협정의 해석에 관한 문제이다.

    (1)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헌법 제6조 제1항). 그리고 구체적 사건에서 당해 법률 또는 법률조항의 의미·내용과 적용 범위를 정하는 권한, 곧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은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을 이루는 것으로서, 이는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법원에 전속한다(대법원 2009. 2. 12. 선고 2004두10289 판결 참조).

    청구권협정은 1965. 8. 14. 대한민국 국회에서 비준 동의되어 1965. 12. 18. 조약 제172호로 공포되었으므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러므로 청구권협정의 의미·내용과 적용 범위는 법령을 최종적으로 해석할 권한을 가진 최고법원인 대법원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정하여질 수밖에 없다.

    (2) 조약의 해석은 1969년 체결된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Vienna Convention on the Law of Treaties, 이하 ‘비엔나협약’이라 한다)’을 기준으로 한다. 비엔나협약은 대한민국에 대하여는 1980. 1. 27., 일본에 대하여는 1981. 8. 1. 각각 발효된 것이기는 하나, 그 발효 이전에 이미 형성되어 있던 국제관습법을 규정한 것이므로 청구권협정을 해석할 때 비엔나협약을 적용하더라도 시제법상 문제는 없다.

    비엔나협약 제31조(해석의 일반규칙)에 의하면, 조약은 전문 및 부속서를 포함한 조약문의 문맥 및 조약의 대상과 목적에 비추어 그 조약의 문언에 부여되는 통상적 의미에 따라 성실하게 해석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조약의 해석상 문맥이라고 할 때에는 조약문 외에 조약의 체결과 관련하여 당사국 사이에 이루어진 그 조약에 관한 합의 등을 포함한다. 그리고 비엔나협약 제32조(해석의 보충적 수단)에 의하면, 제31조의 적용으로부터 도출되는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또는 제31조에 따라 해석하면 의미가 모호해지거나 또는 애매하게 되는 경우, 명확하게 불합리하거나 또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에는 그 의미를 결정하기 위해 조약의 준비작업 또는 조약 체결 시의 사정을 포함한 해석의 보충적 수단에 의존할 수 있다.

    (3) 청구권협정 전문은 “양국 및 양국 국민의 재산과 양국 및 양국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것을 희망하고”라고 전제하고, 제2조 1.은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 평화조약 제4조(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2조 3.은 “… 일방 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 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고 규정하였다. 또한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은 청구권협정 제2조에 관하여 “동조 1.에서 말하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되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에는 한일회담에서 한국 측으로부터 제출된 ‘한국의 대일청구요강’(소위 8개 항목)의 범위에 속하는 모든 청구가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동 대일청구요강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됨을 확인하였다.”라고 정하였고, 대일청구요강 8개 항목 중에는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가 포함되어 있다.

    위와 같은 청구권협정 제2조,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 등의 문언, 문맥 및 청구권협정의 대상과 목적 등에 비추어 청구권협정 제2조를 그 문언에 부여되는 통상적 의미에 따라 해석하면, 제2조 1.에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은 대한민국 및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 및 일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과 일본 및 일본 국민의 대한민국 및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에 관한 문제임이 분명하고, 제2조 3.에서 모든 청구권에 관하여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이상,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라는 문언의 의미는 양 체약국은 물론 그 국민도 더 이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4) 국제법상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diplomatic protection)이란, 외국에서 자국민이 위법·부당한 취급을 받았으나 현지 기관을 통한 적절한 권리구제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 최종적으로 그의 국적국이 외교절차나 국제적 사법절차를 통하여 외국 정부를 상대로 자국민에 대한 적당한 보호 또는 구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외교적 보호권의 행사 주체는 피해자 개인이 아니라 그의 국적국이며, 외교적 보호권은 국가 사이의 권리의무에 관한 문제일 뿐 국민 개인의 청구권 유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것처럼, 청구권협정 제2조는 대한민국 국민과 일본 국민의 상대방 국가 및 그 국민에 대한 청구권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므로 청구권협정을 국민 개인의 청구권과는 관계없이 양 체약국이 서로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하는 내용의 조약이라고 해석하기 어렵다. 또한 청구권협정 제2조 1.에서 규정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라는 문언은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체약국 사이에서는 물론 그 국민들 사이에서도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그 문언의 통상적 의미에 부합하고, 단지 체약국 사이에서 서로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한다는 의미로 읽히지 않는다.

    (5) 일본은 청구권협정 체결 이후 청구권협정으로 양 체약국 국민의 개인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양 체약국이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한 것이라는 입장을 취해 왔다. 이는 일본 정부가 자국 국민에 대한 보상의무를 회피하기 위하여 ‘재한청구권에 대하여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하였다’는 입장을 취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대일청구요강 8개 항목을 제시하면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였고, 청구권자금의 분배는 전적으로 국내법상의 문제라는 입장을 취하였으며, 이러한 입장은 청구권협정 체결 당시까지 유지되었다.

    앞서 본 사실관계 및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① 대한민국 측은 1952. 2. 15. 제1차 한일회담에서부터 8개 항목을 일본 측에 제시하였고, 1961. 5. 10. 제5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일반청구권소위원회 제13차 회의에서 8개 항목 중 제5항과 관련하여 ‘강제징용으로 피해를 입은 개인에 대한 보상’을 일본 측에 요구하였으며, 개인의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인지에 대한 일본 측의 질의에 대하여 ‘나라로서 청구하는 것이며 피해자 개인에 대한 보상은 국내에서 조치할 성질의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② 1961. 12. 15. 제6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일반청구권소위원회 제7차 회의에서 대한민국 측은 일본 측에 8개 항목에 대한 보상으로 총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하면서 그중 강제동원에 대한 피해보상금을 3억 6,400만 달러로 산정하여 제시하였다. ③ 청구권협정 체결 직후인 1965. 7. 5. 대한민국 정부가 발간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조약 및 협정 해설’에는 “재산 및 청구권 문제의 해결에 관한 조항으로 소멸되는 우리의 재산 및 청구권의 내용을 보면, 우리 측이 최초에 제시한 바 있는 8개 항목의 대일청구요강에서 요구한 것은 모두 소멸케 되는바, 따라서 … 피징용자의 미수금 및 보상금, … 한국인의 대일본 정부 및 일본 국민에 대한 각종 청구 등이 모두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소멸케 되는 것이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④ 1965. 8. 장기영 경제기획원장관은 청구권협정 제1조의 무상 3억 달러는 실질적으로 피해국민에 대한 배상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⑤ 청구권협정 체결 후 대한민국은 청구권자금법, 청구권신고법, 청구권보상법, 2007년 및 2010년 희생자지원법 등을 제정하여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2010년 희생자지원법에 따라 설치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의 결정(전신인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지원위원회’의 결정을 포함한다)을 통하여 2016. 9.경까지 지급된 위로금 등의 내역을 살펴보면, 사망·행방불명 위로금 3,601억 원, 부상장해 위로금 1,022억 원, 미수금지원금 522억 원, 의료지원금 1인당 연 80만 원 등 5,500억 원가량이 된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하여 보면, 청구권협정 당시 대한민국은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청구권도 소멸되거나 적어도 그 행사가 제한된다는 입장을 취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청구권협정 당시 양국의 진정한 의사가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한다는 데에 일치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6) 한편 국제법상 전후 배상문제 등과 관련하여 주권국가가 외국과 교섭을 하여 자국국민의 재산이나 이익에 관한 사항을 국가 간 조약을 통하여 일괄적으로 해결하는 이른바 ‘일괄처리협정(lump sum agreements)’은 국제분쟁의 해결·예방을 위한 방식의 하나로서, 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국제관습법상 일반적으로 인정되던 조약 형식이다.

    일괄처리협정은 국가가 개인의 청구권 등을 포함한 보상 문제를 일괄 타결하는 방식이므로, 그 당연한 전제로 일괄처리협정에 의하여 국가가 상대국으로부터 보상이나 배상을 받았다면 그에 따라 자국민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는 것으로 처리되고, 이때 그 자금이 실제로 피해국민에 대한 보상 용도로 사용되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국제사법재판소(ICJ)가 2012. 2. 3. 선고한 독일 대 이탈리아 주권면제 사건(Jurisdictional Immunities of the State, Germany v. Italy: Greece intervening), 이른바 ‘페리니(Ferrini) 사건’ 판결 참조].

    청구권협정에 관하여도 대한민국은 일본으로부터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포함한 대일청구요강 8개 항목에 관하여 일괄보상을 받고, 청구권자금을 피해자 개인에게 보상의 방법으로 직접 분배하거나 또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한 기반시설 재건 등에 사용함으로써 이른바 ‘간접적으로’ 보상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청구권협정은 대한민국 및 그 국민의 청구권 등에 대한 보상을 일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조약으로서 청구권협정 당시 국제적으로 통용되던 일괄처리협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도 청구권협정이 국민 개인의 청구권과는 관계없이 단지 양 체약국이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하기로 하는 합의를 담은 조약이라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다. 청구권협정 제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해결’이나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는 문언의 의미는 개인청구권의 완전한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1) 청구권협정은 그 문언상 개인청구권 자체의 포기나 소멸에 관하여는 직접 정하고 있지 않다. 이 점에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14조(b)에서 “연합국은 모든 보상청구, 연합국과 그 국민의 배상청구 및 군의 점령비용에 관한 청구를 모두 포기한다.”라고 정하여 명시적으로 청구권의 포기(waive)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과 구별된다. 그러므로 청구권협정에 따라 개인청구권이 실체법적으로 완전히 소멸되거나 포기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데에는 별개의견2와 견해를 같이한다.

    (2) 청구권협정 제2조 1.은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해결’에 이르는 방식은 제2조 3.에서 규정하고 있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는 문언에 의하여 실현된다. 즉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청구권 문제의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해결’을 기하고 있다. 그런데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는 문언의 의미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없고, 그렇다고 청구권 자체가 실체법적으로 소멸되었다는 의미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는 문언의 의미는 결국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제한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3) 앞서 본 것처럼 대한민국은 청구권협정 체결 후 청구권보상법, 2007년 및 2010년 희생자지원법 등을 제정하여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이는 청구권협정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이 소송으로 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이 제한된 결과 대한민국이 이를 보상할 목적으로 입법조치를 한 것이다. ‘외교적 보호권 한정 포기설’에 따르면 대한민국이 위와 같은 보상 조치를 취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라. (1) 별개의견2가 대한민국에서 청구권자금법 등 보상입법을 통하여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하여 이루어진 보상 내역이 실제 피해에 대비하여 매우 미흡하였다는 점을 들어 청구권협정의 효력을 해석하는 근거로 삼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앞서 본 것처럼 ‘일괄처리협정(lump sum agreements)’에 따라 국가가 보상이나 배상을 받았다면 그 국민은 상대국 또는 그 국민에 대하여 개인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고, 이는 지급받은 자금이 실제로는 피해국민에 대한 보상 용도로 사용되지 않았더라도 달리 볼 수 없기 때문이다.

    (2)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수행을 위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가한 고통에 비추어 볼 때, 대한민국이 피해자들에게 한 보상이 매우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2006. 3. 9. 청구권보상법에 근거한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이 불충분함을 인정하고 추가보상 방침을 밝힌 후 2007년 희생자지원법을 제정하였고, 이후 2010년 희생자지원법을 추가 제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추가적인 보상조치에 의하더라도 국내강제동원 피해자는 당초부터 위로금 지급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고, 국외강제동원 생환자에 대하여는 2007년 희생자지원법 제정 당시 국회에서 1인당 500만 원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법안이 의결되었으나, 추가적인 재정부담 등을 이유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결국 그들에 대한 위로금 지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3) 일본 정부가 청구권협정의 협상 과정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던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청구권협정을 체결한 것이 과연 옳았는지 등을 포함하여 청구권협정의 역사적 평가에 관하여 아직도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청구권협정이 헌법이나 국제법을 위반하여 무효라고 볼 것이 아니라면 그 내용이 좋든 싫든 그 문언과 내용에 따라 지켜야 하는 것이다.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을 더 이상 행사할 수 없게 됨으로써 피해를 입은 국민에게 지금이라도 국가는 정당한 보상을 하여야 한다. 대한민국이 이러한 피해국민에 대하여 지는 책임은 법적 책임이지 이를 단순히 인도적·시혜적 조치로 볼 수는 없다. 대한민국은 피해국민의 소송 제기 여부와 관계없이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할 책무가 있으며 이러한 피해국민에 대하여 대한민국이 소송에서 그 소멸시효 완성 여부를 다툴 것도 아니라고 본다.

    마. 결국,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하여 가지는 개인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되게 되었으므로, 원고들이 일본 국민인 피고를 상대로 국내에서 강제동원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소로써 행사하는 것 역시 제한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와 다른 취지로 판시한 원심의 판단에는 청구권협정의 적용 범위 및 효력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고, 원심이 근거로 삼은 환송판결의 청구권협정에 관한 견해 역시 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변경되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다수의견에 반대한다.

    11.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김선수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가. 원고들이 주장하는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 즉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는 다수의견의 입장은 조약의 해석에 관한 일반원칙에 따른 것으로서 타당하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 조약 해석의 출발점은 조약의 문언이다. 당사자들이 조약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의도가 문언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약의 문언이 가지는 통상적인 의미를 밝히는 것이 조약의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공통적으로 의도한 것으로 확정된 내용이 조약 문언의 의미와 다른 경우에는 그 의도에 따라 조약을 해석하여야 한다.

    이때 문언의 사전(사전)적인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문맥, 조약의 목적, 조약 체결 과정을 비롯한 체결 당시의 여러 사정뿐만 아니라 조약 체결 이후의 사정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조약의 의미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다만 조약 체결 과정에서 이루어진 교섭 과정이나 체결 당시의 사정은 조약의 특성상 조약을 해석하는 데 보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한편 조약이 국가가 아닌 개인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포기하는 것과 같은 중대한 불이익을 부과하는 경우에는 약정의 의미를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하고, 그 의미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개인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개인의 권리를 포기하도록 조약을 체결하고자 한다면 이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조약의 문언에 포함시킴으로써 개개인들이 그러한 사정을 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1969년에 체결된 비엔나협약은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1980. 1. 27., 일본에 대해서는 1981. 8. 1. 발효되었기 때문에, 이 협약은 1965년에 체결된 청구권협정 해석의 기준으로 곧바로 적용할 수는 없다. 다만 조약 해석에 관한 비엔나협약의 주요 내용은 기존의 국제관습법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청구권협정을 해석하는 데도 참고할 수 있다. 조약의 해석기준에 관한 다수의견은 비엔나협약의 주요 내용을 반영한 것으로서, 조약 해석에 관한 일반원칙과 다르지 않다. 다만 비엔나협약이 청구권협정에 직접 적용되는 것은 아니므로, 청구권협정을 해석할 때 비엔나협약을 문구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은 청구권협정 전문과 제2조에 나오는 ‘청구권’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이다. 구체적으로는 위 ‘청구권’에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정신적 손해배상청구권’, 즉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포함되는지 여부가 문제 된다.

    청구권협정에서는 ‘청구권’이 무엇을 뜻하는지 따로 정하고 있지 않다. 청구권은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는 용어이다. 이 용어에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 특히 이 사건에서 문제 되는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까지 일반적으로 포함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청구권협정의 문맥이나 목적 등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우선 청구권협정 제2조에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a)를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므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가 청구권협정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에는 별다른 의문이 없다. 즉 청구권협정은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a)에서 말하는 ‘일본의 통치로부터 이탈된 지역(대한민국도 이에 해당)의 시정 당국·국민과 일본·일본 국민 간의 재산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채권·채무관계’는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불법행위와 관련된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된 것도 아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a)에서는 ‘재산상 채권·채무관계’에 관하여 정하고 있기 때문에, 정신적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될 여지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기초로 열린 제1차 한일회담에서 한국 측이 제시한 8개 항목은 다음과 같다. ‘① 1909년부터 1945년까지 사이에 일본이 조선은행을 통하여 대한민국으로부터 반출하여 간 지금(지김) 및 지은(지은)의 반환청구, ② 1945. 8. 9. 현재 및 그 이후 일본의 대(대) 조선총독부 채무의 변제청구, ③ 1945. 8. 9. 이후 대한민국으로부터 이체 또는 송금된 금원의 반환청구, ④ 1945. 8. 9. 현재 대한민국에 본점, 본사 또는 주사무소가 있는 법인의 재일(재일) 재산의 반환청구, ⑤ 대한민국 법인 또는 대한민국 자연인의 일본은행권,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 ⑥ 한국인의 일본국 또는 일본인에 대한 청구로서 위 ① 내지 ⑤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한일회담 성립 후 개별적으로 행사할 수 있음을 인정할 것, ⑦ 전기(전기) 여러 재산 또는 청구권에서 발생한 여러 과실(과실)의 반환청구, ⑧ 전기(전기) 반환 및 결제는 협정성립 후 즉시 개시하여 늦어도 6개월 이내에 완료할 것’이다.

    위 8개 항목에 명시적으로 열거된 것은 모두 재산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위 제5항에서 열거된 것도 가령 징용에 따른 노동의 대가로 지급되는 임금 등 재산상 청구권에 한정된 것이고 불법적인 강제징용에 따른 위자료청구권까지 포함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더욱이 여기에서 말하는 ‘징용’이 국민징용령에 따른 징용만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원고들과 같이 모집방식 또는 관 알선방식으로 이루어진 강제동원까지 포함되는지 명확한 것도 아니다. 또한 제5항은 ‘보상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징용이 적법하다는 전제에서 사용한 용어로서 불법성을 전제로 한 위자료가 포함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당시 대한민국과 일본의 법제는 ‘보상’은 적법한 행위로 인한 손실을 전보하는 것이고 ‘배상’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전보하는 것으로 명확하게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청구권협정 직전에 대한민국 정부가 발간한 ‘한일회담백서’에서도 ‘배상청구는 청구권 문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기타’라는 용어도 앞에 열거한 것과 유사한 부수적인 것이라고 보아야 하므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을 포함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에서는 청구권협정에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는 것으로 되는’ 청구권에 8개 항목의 범위에 속하는 모든 청구가 포함된다고 정하고 있지만, 위와 같이 위 제5항의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가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여기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

    결국, 청구권협정,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의 문맥, 청구권협정의 목적 등에 비추어 청구권협정의 문언에 나타난 통상적인 의미에 따라 해석할 경우 청구권협정에서 말하는 ‘청구권’에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까지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라. 위와 같은 해석 방법만으로는 청구권협정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아 교섭 기록과 체결 시의 여러 사정 등을 고려하여 그 의미를 밝혀야 한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결론이 달라지지 않는다.

    우선 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양국의 의사가 어떠하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계약의 해석과 마찬가지로 조약의 해석에서도, 밖으로 드러난 표시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내심의 의사가 일치하고 있었다면 그 진의에 따라 조약의 내용을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만일 청구권협정 당시 양국 모두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과 같은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청구권도 청구권협정에 포함시키기로 하는 의사가 일치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면, 청구권협정에서 말하는 ‘청구권’에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청구권협정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강제동원 과정에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가 자행되었다는 점은 물론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청구권협정 당시 일본 측이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을 청구권협정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만한 자료도 없다. 당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의 존재 자체도 인정하지 않고 있던 일본 정부가 청구권협정에 이를 포함시키겠다는 내심의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

    이는 청구권협정 당시 대한민국 정부도 마찬가지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수의견에서 본 것처럼, 청구권협정 체결 직전인 1965. 3. 20. 대한민국 정부가 발간한 공식 문서인 ‘한일회담백서’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가 한·일 간 청구권 문제의 기초가 되었다고 명시하고 있고, 나아가 ‘위 제4조의 대일청구권은 승전국의 배상청구권과 구별된다. 대한민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조인당사국이 아니어서 제14조 규정에 의한 승전국이 향유하는 손해와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한·일 간 청구권 문제에는 배상청구를 포함시킬 수 없다.’는 설명까지 하고 있다.

    한편 위와 같은 청구권협정 체결 당시의 상황 외에 체결 이후의 사정도 보충적으로 조약 해석의 고려요소가 될 수 있는데, 이에 따르더라도 청구권협정에서 말하는 ‘청구권’에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이 뒷받침된다. 청구권협정 이후 대한민국은 청구권자금법, 청구권신고법, 청구권보상법을 통해 1977. 6. 30.까지 피징용사망자 8,552명에게 1인당 30만 원씩 총 25억 6,560만 원을 지급하였다. 이는 위 8개 항목 중 제5항의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가 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됨에 따른 후속조치로 보일 뿐이므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에 대한 변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그 보상 대상자도 ‘일본국에 의하여 군인·군속 또는 노무자로 소집 또는 징용되어 1945. 8. 15. 이전에 사망한 자’로 한정되어 있었다. 또한 이후 대한민국은 2007년 희생자지원법 등을 통해 이른바 ‘강제동원희생자’에게 위로금이나 지원금을 지급하기는 하였으나, 해당 법률에서 그 명목이 ‘인도적 차원’의 것임을 명시하였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조치는, 청구권협정에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은 포함되어 있지 않고 대한민국이 청구권협정 자금으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자에 대하여 법적인 지급의무를 부담하지 않음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마. 국가 간 조약을 통해서 국민 개개인이 상대국이나 상대국의 국민에 대해서 가지는 권리를 소멸시키는 것이 국제법상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해당 조약에서 이를 명확하게 정하고 있어야 한다. 더욱이 이 사건과 같이 국가와 그 소속 국민이 관여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 그중에서도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의 소멸과 같은 중대한 효과를 부여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조약의 의미를 더욱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14조가 일본에 의해 발생한 ‘손해와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과 그 ‘포기’를 명확하게 정하고 있는 것과 달리, 청구권협정은 ‘재산상 채권·채무관계’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고, 청구권협정의 대상에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와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이 포함된다거나 그 배상청구권에 대한 ‘포기’를 명확하게 정하고 있지 않다.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로 강제 동원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지 못한 채 온갖 노동을 강요당했던 피해자인 원고들은 정신적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고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지나치게 가볍게 보고 그 실상을 조사·확인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청구권협정을 체결한 것일 수도 있다. 청구권협정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에 관하여 명확하게 정하지 않은 책임은 협정을 체결한 당사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고 이를 피해자들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다수의견의 논거를 보충하고자 한다.

    대법원장   김명수(재판장)        대법관   김소영(주심) 조희대 권순일 박상옥 이기택 김재형 조재연 박정화 민유숙 김선수 이동원 노정희

    ========================

    서울고등법원 2013. 7. 10. 선고 2012나44947 판결

    [손해배상(기)][미간행]


    【전 문】

    【원고, 항소인】 원고 1 외 3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해마루 담당변호사 장완익 외 1인)

    【피고, 피항소인】 신일철주금(신일철주김)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변호사 주한일 외 2인)

    【변론종결】

    2013. 6. 19.

    【제1심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08. 4. 3. 선고 2005가합16473 판결

    【환송전판결】 서울고등법원 2009. 7. 16. 선고 2008나49129 판결

    【환송판결】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68620 판결

    【주 문】

    1. 제1심 판결 중 아래에서 지급을 명하는 금원에 해당하는 원고들 패소부분을 각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10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2013. 6. 19.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2. 원고들의 나머지 항소를 각 기각한다.

    3. 소송총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4. 제1항의 금원지급부분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10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 다음 날 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이 유】

    1. 인정사실

    다음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제1 내지 4, 6, 22, 24, 25, 47 내지 55, 62, 71 내지 76, 78 내지 92, 97, 98, 99호증(가지번호 있는 경우 각 포함, 이하 같다), 을 제1, 2, 6, 7, 31, 32호증의 각 기재, 제1심의 원고 4에 대한 당사자 본인신문결과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이를 인정할 수 있다.

    가. 원고들의 동원, 강제노동 및 귀국경위

    1) 원고들은 1923년부터 1929년 사이에 한반도에서 태어나 평양, 보령, 군산 등에서 거주하던 사람들이고, 일본제철 주식회사(이하 ‘구 일본제철’이라 한다)는 1934. 1.경 설립되어 일본 가마이시(부석), 야하타(팔번), 오사카(대판) 등에서 제철소를 운영하던 회사이다.

    2) 일본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군수물자 생산에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1938. 4. 1. ‘국가총동원법’을 제정, 공포하고 1942년 ‘조선인 내지이입 알선 요강’을 제정·실시하며, 한반도 각 지역에서 소위 ‘관 알선’을 통하여 인력을 모집하고, 1944. 10.경부터는 ‘국민징용령’에 의하여 한국인에 대한 징용을 실시하였다. 한편, 기간 군수사업체에 해당하는 구 일본제철을 비롯한 일본의 철강생산자들을 총괄 지도하는 일본 정부 직속기구인 철강통제회가 1941. 4. 26. 설립되었는데, 철강통제회는 한반도에서 노무자를 적극 확충하기로 하고 일본 정부와 협력하여 노무자를 동원하였고, 구 일본제철은 사장이 철강통제회의 회장을 역임하는 등 철강통제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3) 구 일본제철은 1943년경 평양에서 오사카제철소의 공원모집 광고를 냈는데, 그 광고에는 오사카제철소에서 2년간 훈련을 받으면 기술을 습득할 수 있고 훈련 종료 후 한반도의 제철소에서 기술자로 취직할 수 있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원고 1(대판: 소외인), 원고 2는 1943. 9.경 위 광고를 보고, 기술을 습득하여 우리나라에서 취직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려 응모한 다음, 구 일본제철의 모집담당자와 면접을 하고 합격하여 위 담당자의 인솔 하에 구 일본제철의 오사카제철소로 가서, 훈련공으로 노역에 종사하였다.

    원고 1, 원고 2는 오사카제철소에서 1일 8시간의 3교대제로 일하였고, 한 달에 1, 2회 정도 외출을 허락받았으며, 한 달에 2, 3엔 정도의 용돈만 지급받았을 뿐이고, 구 일본제철은 임금 전액을 지급하면 낭비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원고 1, 원고 2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위 원고들 명의의 계좌에 임금의 대부분을 일방적으로 입금하고 그 저금통장과 도장을 기숙사의 사감에게 보관하게 하였다. 위 원고들은 화로에 석탄을 넣고 깨뜨려서 뒤섞거나 철 파이프 속으로 들어가서 석탄찌꺼기를 제거하는 등 화상의 위험이 있고 기술습득과는 별 관계가 없는 매우 고된 노역에 종사하였는데, 제공되는 식사의 양이 매우 적었다. 또한 경찰이 자주 들러서 위 원고들에게 ‘도망치더라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말하였고 기숙사에서도 감시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위 원고들은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하였는데, 원고 2는 도망가고 싶다고 말하였다가 발각되어 기숙사 사감으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체벌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일본은 1944. 2.경부터 훈련공들을 강제로 징용하고, 이후부터 원고 1, 원고 2에게 아무런 대가도 지급하지 않았다. 오사카제철소의 공장은 1945. 3.경 미합중국 군대의 공습으로 파괴되었고, 이때 훈련공들 중 일부는 사망하였으며, 원고 1, 원고 2를 포함한 나머지 훈련공들은 1945. 6.경 함경도 청진에 건설 중인 제철소로 배치되어 청진으로 이동하였다. 원고 1, 원고 2는 기숙사의 사감에게 일본에서 일한 임금이 입금되어 있던 저금통장과 도장을 달라고 요구하였지만, 사감은 청진에 도착한 이후에도 위 통장 및 도장을 돌려주지 아니하였고, 위 원고들은 청진에서 하루 12시간 동안 공장건설을 위해 토목공사를 하면서도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였다. 원고 1, 원고 2는 1945. 8.경 청진공장이 소련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자 소련군을 피하여 서울로 도망하였고 비로소 일제로부터 해방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4) 원고 3은 1941년 대전시장의 추천을 받아 보국대로 동원되어 구 일본제철의 모집담당관의 인솔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구 일본제철의 가마이시제철소에서 코오크스를 용광로에 넣고 용광로에서 철이 나오면 다시 가마에 넣는 등의 노역에 종사하였다. 위 원고는 심한 먼지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었고 용광로에서 나오는 불순물에 걸려 넘어져 배에 상처를 입고 3개월간 입원하기도 하였으며 임금을 저금해준다는 말을 들었을 뿐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였다. 노역에 종사하는 동안 처음 6개월간은 외출이 금지되었고, 일본 헌병들이 보름에 한 번씩 와서 인원을 점검하며 일을 나가지 않는 사람에게 꾀를 부린다며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위 원고는 1944년이 되자 징병되어 군사훈련을 마친 후 일본 고베에 있는 부대에 배치되어 미군포로감시원으로 일하다가 해방이 되어 귀국하였다.

    5) 원고 4는 1943. 1.경 군산부(지금의 군산시)의 지시를 받고 모집되어 구 일본제철의 인솔자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구 일본제철의 야하타제철소에서 각종 원료 및 생산품을 운송하는 선로의 신호소에 배치되어 선로를 전환시키는 포인트 조작과 열차의 탈선방지를 위한 포인트의 오염물 제거 등의 노역에 종사하였는데, 도주하다가 발각되어 약 7일 동안 심한 구타를 당하며 식사를 제공받지 못하기도 하였다. 위 원고는 위 노역에 종사하는 동안 임금을 전혀 지급받지 못하였고, 일체의 휴가나 개인행동을 허락받지 못하였으며, 일본이 패전한 이후 귀국하라는 구 일본제철의 지시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나. 일본제철의 해산 및 제2회사, 피고의 설립

    1) 구 일본제철은 일본 정부의 지시로 1947. 3. 18. 오사카공탁소에 원고 1(창씨개명은 ○○○○으로 되었으나 강제노동 당시에 사용한 △△△△으로 공탁됨)을 피공탁자로 하여 급료 50.52엔, 예저금(예저김) 445엔 합계 495.52엔을, 같은 날 원고 2(창씨개명 □□□□)를 피공탁자로 하여 급료 57.44엔, 예저금(예저김) 410엔 합계 467.44엔을, 1946년경 원고 3(창씨개명 ◇◇◇◇)을 피공탁자로 하여 예저금 23.80엔을, 1946년경 원고 4(창씨개명 ☆☆☆☆)를 피공탁자로 하여 급료 40엔, 퇴직수당 10.20엔 합계 50.20엔을 각 공탁하였다.

    2) 구 일본제철은 일본의 회사경리응급조치법(1946. 8. 15. 법률 제7호), 기업재건정비법(1946. 10. 19. 법률 제40호)의 제정·시행에 따라 위 각 법에서 정한 특별경리회사, 특별경리주식회사로 지정되어 1950. 4. 1.에 해산하였고, 구 일본제철의 자산 출자로 야하타제철(팔번제철) 주식회사, 후지제철(부사제철) 주식회사, 일철기선(일철기선) 주식회사, 하리마내화연와(파마내화련와) 주식회사(이하 위 4개 회사를 ‘제2회사’라 한다)가 설립되었다.

    회사경리응급조치법은 “특별경리회사에 해당될 경우 그 회사는 지정시(1946. 8. 11. 00:00을 말한다. 제1조 제1호)에 신계정과 구계정을 설정하고(제7조 제1항), 재산목록상의 동산, 부동산, 채권 기타 재산에 대하여는 「회사의 목적인 현재 행하고 있는 사업의 계속 및 전후산업의 회복진흥에 필요한 것」에 한하여 지정시에 신계정에 속하며, 그 외에는 원칙적으로 지정시에 구계정에 속하고(제7조 제2항), 지정시 이후의 원인에 근거하여 발생한 수입 및 지출을 신계정의 수입 및 지출로, 지정시 이전의 원인에 근거하여 발생한 수입 및 지출은 구계정의 수입 및 지출로 경리처리하며(제11조 제1, 2항), 구채권에 대해서는 변제 등 소멸행위를 금지하되, 예외적으로 변제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구계정으로 변제하여야 하고, 신계정으로 변제하는 경우는 특별관리인의 승인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일정한 금액의 한도에서만 가능(제14조)”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구 일본제철은 회사경리응급조치법, 기업재건정비법에 따라 1946. 8. 11. 오전 0시를 기준으로 하여 신계정과 구계정으로 구분 경리하여 이후의 기업활동은 오직 신계정에서 행하고 사업의 계속 및 전후산업의 회복진흥에 필요한 기존 재산을 신계정에 속하도록 한 뒤, 신계정에 속하는 재산을 제2회사에 현물출자하거나 자산과 영업을 양도하여 1950. 4. 1. 제2회사를 설립하였고, 그 외 그때까지 발생한 채무를 위주로 한 구계정상의 채무를 구 일본제철의 해산 및 청산절차에 맡겼다. 그 결과, 구 일본제철이 보유하고 있던 야하타, 와니시, 가마이시, 후지, 히로하타의 각 제철소 자산 중 야하타 제철소의 자산과 영업, 이사 및 종업원은 제2회사인 야하타제철 주식회사가, 나머지 4개 제철소의 자산과 영업, 이사 및 종업원은 다른 제2회사인 후지제철 주식회사가 각각 승계하였다.

    3) 구 일본제철은 해산과 동시에 청산절차를 진행하였고, 1963. 11. 28. 개최된 주주총회 이래 재외재산에 관한 청산업무만을 남겨 두었다고 보아 그 업무를 특수관재인에게 위임하였으며, 특수관재인은 현재 청산업무를 정지한 상태이다.

    한편 야하타제철 주식회사는 1970. 3. 31. 상호를 ‘일본제철 주식회사’로 변경하고 1970. 5. 29. 후지제철 주식회사를 합병하였으며, 2012. 8.경 스미토모 금속공업(주우김속공업) 주식회사를 합병한 후 2012. 10. 1. 상호를 ‘신일철주금 주식회사’(피고이다)로 변경하였다.

    다.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조약과 부속협정의 체결

    1)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1951년 말경부터 국교정상화 및 전후 보상문제를 논의하였고 마침내 1965. 6. 22. ‘국교정상화를 위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그 부속협정의 하나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하 ‘청구권협정’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는데, 청구권협정은 제1조에서 일본국이 대한민국에 10년간에 걸쳐 3억 달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2억 달러의 차관을 행하기로 한다고 정함과 아울러 제2조에서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

    1.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3. 2의 규정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본 협정의 서명일에 타방체약국의 관할 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와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또한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은 위 제2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a) “재산, 권리 및 이익”이라 함은 법률상의 근거에 의거하여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는 모든 종류의 실체적 권리를 말하는 것으로 양해되었다.

    (e) 동조 3.에 의하여 취하여질 조치는 동조 1.에서 말하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취하여질 각국의 국내조치를 말하는 것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g) 동조 1.에서 말하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되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에는 한일회담에서 한국측으로부터 제출된 “한국의 대일청구요강”(소위 8개 항목)의 범위에 속하는 모든 청구가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동 대일청구요강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됨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위 합의의사록에 적시된 대일청구 8개 요강에는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 한국인의 일본정부 또는 일본인에 대한 개별적 권리행사에 관한 사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2) 청구권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일본은 1965. 12. 17.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일본국과 대한민국간의 협정 제2조의 실시에 따른 대한민국 등의 재산권에 대한 조치에 관한 법률’(법률 제144호, 이하 ‘재산권조치법’이라 한다)을 제정·시행하였는데, 그 내용은 “대한민국 또는 그 국민의 일본국 또는 그 국민에 대한 채권 또는 담보권으로 협정 제2조의 재산, 이익에 해당하는 것을 1965. 6. 22.에 소멸한 것으로 한다.“는 것이다.

    라. 원고 1, 원고 2의 일본에서의 소송

    원고 1, 원고 2는 1997. 12. 24.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피고와 일본국을 상대로 국제법 위반 및 불법행위 등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금과 강제노동기간 동안 지급받지 못한 임금 등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가 2001. 3. 27. 원고청구기각 판결을 선고받고, 오사카고등재판소에 항소하였으나 2002. 11. 19. 항소기각판결을 선고받았으며, 2003. 10. 9. 최고재판소의 상고기각 및 상고불수리 결정으로 위 판결들이 확정되었다(이하 이와 같은 일본에서의 소송을 ‘이 사건 일본소송’이라 하고, 그 판결들을 ‘이 사건 일본판결’이라 한다). 한편 원고들은 원고 1, 원고 2의 이 사건 일본소송이 종료한 이후인 2005. 2. 28. 대한민국 법원인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피고를 상대로 국제법 위반 및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금의 지급을 구하는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원고 1, 원고 2가 이 사건 소송에서 주장하는 청구원인은 모두 이 사건 일본소송에서 주장한 청구원인에 포함되어 있다.

    마. 민관공동위원회의 개최

    대한민국 정부는 원고들이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기 직전 청구권협정과 관련한 일부 문서를 공개한 후, 이 사건 소송이 제기된 후인 2005. 8. 26.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이하 ‘민관공동위원회’라 한다)를 개최하고,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정부와 군대 등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으며, 사할린동포 문제와 원폭피해자 문제도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공식의견을 표명하였다.

    2. 본안전항변에 관한 판단

    가. 청구권협정에 따라 권리보호자격이 소멸하였다는 주장

    피고는 원고들이 주장하는 피고에 대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 제2조에서 정한 재산, 권리, 이익 또는 청구권에 포함되어 모두 소멸하여 원고들이 권리보호자격을 상실하였으므로, 이 사건 소는 부적법하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피고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청구권협정 제2조에서 말하는 재산, 권리, 이익 또는 청구권에 피징용 한국인의 일본인에 대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되어 있어 그 청구권이 소멸하였다고 가정하더라도 위 청구권협정의 규정이 그 손해의 배상을 구하는 제소 자체를 금지하여 권리보호의 자격까지 박탈하는 것이라고는 보이지 아니하고 이는 본안에서 청구의 당부에 관하여 판단할 사항이라고 보이므로, 위 주장은 이유 없다.

    나. 원고 1, 원고 2에 대하여 기판력에 저촉된다는 주장

    피고는 다시 원고 1, 원고 2가 이미 동일한 내용의 이 사건 일본소송에서 패소한 이 사건 일본판결을 받아 그 판결이 확정되었으므로 이 사건 소 중 위 원고들의 청구는 기판력에 저촉되어 부적법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고의 주장과 같이 이 사건 일본판결에 기판력을 인정할 수 있어서 이 사건 소송이 이 사건 일본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된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러한 경우 법원으로서는 이 사건 일본판결과 모순되는 판단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구속력에 따라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는 본안판결을 하여야 하는 것이고 원고들의 청구를 부적법하다고 하여 각하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이 부분 주장 역시 이유 없다.

    3. 본안에 관한 판단

    가. 당사자들의 주장 요지

    1) 원고들

    일제강점 아래에서 피고의 전신인 구 일본제철의 모집담당관이 원고들에게 기술습득, 귀국 후 안정적인 일자리 보장, 충분한 식사와 임금 제공 등을 보장한다면서 원고들을 회유하거나 행정기관을 통하여 모집한 후 일본으로 동원하였으나, 실제로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의 여러 공장에서 원고들의 의사에 반하여 자유를 박탈당한 상황에서 강제노동에 혹사당하고 임금마저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였으므로, 구 일본제철과 사실상 동일한 법인으로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승계한 피고가 원고들에게 각 100,000,000원의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2) 피고

    원고 1, 원고 2는 이미 동일한 청구를 한 이 사건 일본소송에서 패소확정판결을 받았으므로 이 사건 소 중 위 원고들의 청구는 기판력에 저촉되어 기각되어야 하고, 피고는 구 일본제철과 법인격이 다르고 구 일본제철의 원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채무를 승계하지도 않았으며, 원고들이 주장하는 손해배상채권은 청구권협정 및 그 후속조치로 인하여 소멸하였고,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위 손해배상채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었거나 제척기간이 도과하였으므로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없다.

    나. 구 일본제철의 불법행위책임의 성립

    1) 이 사건에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성립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준거법은 법정지인 대한민국에 있어서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에 적용될 준거법의 결정에 관한 규범(이하 ‘저촉규범’이라 한다)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앞서 본 사실에 따르면 피고의 행위 및 그 결과발생이라는 불법행위는 구 섭외사법(1962. 1. 15. 법률 제996호로 제정된 것, 이하 같다)이 시행된 1962. 1. 15. 이전에 발생하였다. 이와 같이 1962. 1. 15. 이전에 발생한 법률관계에 적용되는 대한민국의 저촉규범은 1912. 3. 28.부터 일왕(일왕)의 칙령 제21호에 의하여 우리나라에 의용(의용)되어 오다가 군정 법령 제21호를 거쳐 대한민국 제헌헌법 부칙 제100조에 의하여 “현행법령”으로서 대한민국 법질서에 편입된 일본의 ‘법례(법례)’(1898. 6. 21. 법률 제10호)이다. 위 ‘법례’에 의하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성립과 효력은 불법행위 발생지의 법률에 의하는데(제11조), 이 사건 불법행위지는 대한민국과 일본에 걸쳐 있으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하여 판단할 준거법은 대한민국법 또는 일본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미 공동원고들인 원고 1, 원고 2가 일본법이 적용된 이 사건 일본소송에서 패소한 점에 비추어 불법행위의 피해자들인 원고들은 자신들에게 보다 유리한 준거법으로 대한민국법을 선택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추인되는 점이나 이와 같이 준거법이 될 수 있는 여러 국가의 법이 있을 경우 법정지의 법원은 당해 사안과의 관련성의 정도, 피해자의 권리보호의 필요성과 가해자의 준거법에 대한 예측가능성 및 방어권보장 등 당사자 사이의 공평, 형평과 정의, 재판의 적정성 등을 함께 고려하여 준거법을 선택·결정할 수 있다고 할 것인데 위와 같은 요소를 모두 고려할 때 대한민국법을 준거법으로 함이 옳다고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여 대한민국법을 준거법으로 하여 판단하기로 한다. 나아가 제정 민법이 시행된 1960. 1. 1.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의 판단에 적용될 대한민국법은 제정 민법 부칙 제2조 본문에 따라 ‘구 민법(의용 민법)’이 아닌 ‘현행 민법’이다.

    2) 위 인정사실을 준거법인 현행 민법에 비추어 보면, 일본 정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 불법적인 침략전쟁의 수행과정에서 기간 군수사업체인 일본의 제철소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조직적으로 인력을 동원하였고, 핵심적인 기간 군수사업체의 지위에 있던 구 일본제철은 철강통제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일본 정부의 위와 같은 인력동원정책에 적극 협조하여 인력을 확충하였는데, 원고들은 당시 한반도와 한국민들이 일본의 불법적이고 폭압적인 지배를 받고 있었던 상황 아래에서 장차 일본에서 처하게 될 노동 내용이나 환경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 채 일본 정부와 구 일본제철의 위와 같은 조직적인 기망에 의하여 동원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더욱이 원고들은 성년에 이르지 못한 어린 나이에 가족과 이별하여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였고, 구체적인 임금액도 모른 채 강제로 저금을 당하였으며, 일본 정부의 혹독한 전시 총동원체제 하에서 외출을 제한당하고 상시 감시를 당하여 탈출이 불가능하였으며 탈출시도가 발각된 경우 혹독한 구타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구 일본제철의 원고들에 대한 행위는 당시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다.

    따라서 구 일본제철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들의 정신적 고통을 금전으로나마 위자할 의무가 있다.

    다. 원고 1, 원고 2에 관한 이 사건 일본판결의 기판력 인정 여부

    피고가 구 일본제철의 불법행위책임을 그대로 부담하는지에 관하여 살펴보기에 앞서 원고 1, 원고 2에 관한 이 사건 일본판결이 기판력을 가지는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법정지의 절차법인 우리 민사소송법 제217조 제3호는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아니하여야 한다는 점을 외국판결 승인요건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외국판결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 즉 외국판결을 승인한 결과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는지 여부는 그 승인 여부를 판단하는 시점에서 외국판결의 승인이 우리나라의 국내법 질서가 보호하려는 기본적인 도덕적 신념과 사회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외국판결이 다룬 사안과 우리나라와의 관련성의 정도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하고, 이때 그 외국판결의 주문뿐 아니라 이유 및 외국판결을 승인할 경우 발생할 결과까지 종합하여 검토하여야 한다.

    을 제2, 6, 7호증의 각 기재에 의하면, 앞서 본 이 사건 일본판결은 원고 1, 원고 2가 주장하는 청구권 발생 당시 위 원고들을 일본인으로 보고, 위 원고들이 거주하던 한반도를 일본 영토의 구성부분으로 봄으로써 위 원고들의 청구에 적용될 준거법을 외국적 요소를 고려한 국제사법적 관점에서 결정하지 않고 처음부터 일본법을 적용한 사실, 나아가 일본의 한국병합 경위에 관하여 “조선은 1910년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된 후, 일본국의 통치하에 있었다.”고 전제하고, 위 원고들에 대한 징용경위에 대하여 “당시 일본국 정부, 조선총독부 등이 전시 하의 노무동원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내세우고 있었던 것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위 원고들은 모두 노동자 모집 당시의 설명에 응하여 그 의사에 의하여 응모함으로써 오사카제철소에서 노동하기에 이른 것이고, 이들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연행한 것은 아니”라고 보아, “위 원고들이 응모한 1943. 9.경에는 이미 ‘조선인 내지이주 알선요강’에 따라 사업주의 보도원(보도원)이 지방행정기관, 경찰, 그리고 조선노무협회 등이 연계된 협력을 받아 단기간에 목적한 인원수를 확보하고, 확보된 조선인 노무자는 사업주의 보도원에 의해 인솔되어 일본의 사업소로 연행되는 ‘관 알선 방식’으로 징용이 실시되었는데, 이것은 일본국 정부가 후생성과 조선총독부의 통제 하에 조선인 노동력을 중요기업에 도입하여 생산기구에 편입하려는 계획 하에 진행된 것으로서 실질적인 강제연행이나 강제징용이었다.”는 위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사실, 또한 이 사건 일본판결은 구 일본제철이 사전 설명과 달리 위 원고들을 오사카제철소에서 자유가 제약된 상태로 위법하게 강제노동에 종사하게 한 점, 실질적인 고용주로서 위 원고들에 대하여 일부 임금을 지급하지 아니하고, 안전배려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아니한 점 등 위 원고들의 청구원인에 관한 일부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구 일본제철의 위 원고들에 대한 채무는 구 일본제철과 별개의 법인격을 가지고 있는 피고에게 승계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더라도 청구권협정과 일본의 재산권조치법에 의해 소멸하였다는 이유로 결국 위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청구를 기각한 사실 등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이 사건 일본판결의 이유에는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규범적 인식을 전제로 하여,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한반도와 위 원고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평가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제헌헌법은 그 전문(전문)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상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하고, 부칙 제100조에서는 “현행법령은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고 하며, 부칙 제101조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또한, 현행헌법도 그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대한민국 헌법의 각 규정에 비추어 볼 때,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규범적인 관점에서 불법적인 강점(강점)에 지나지 않고, 일본의 불법적인 지배로 인한 법률관계 중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그 효력이 배제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 일본판결 이유는 침략전쟁의 수행을 위한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더구나 당시 일본 정부가 ‘국가총동원법’ 등의 비상수단까지 동원하여 수행하였던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국제법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침략전쟁이었다는 점에 대하여는 국제사회가 인식을 함께 하고 있고, 이런 침략전쟁 및 이를 수행하는 행위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은 세계 문명국가들의 공통적인 가치이며 뒤 라.항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본국 헌법 역시 그와 같은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면, 세계 각국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가치에 반하는 판결 이유가 담긴 이 사건 일본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결과는 위 민사소송법에서 말하는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가 국제성까지 고려한 개념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헌법 등 국내법 질서가 근거하고 있고 지키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기본적인 도덕적 신념과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것임이 분명하다(민사소송법의 위 조항이 말하는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의 의미는 외국 중재판정을 승인하거나 외국법을 준거법으로 삼을 때 고려하는 대한민국의 ‘공서’와 동일한 것인데, 위의 각 경우에 관한 기존 대법원 판례인 대법원 2009. 5. 28. 선고 2006다20290 판결, 대법원 2006. 5. 26. 선고 2005므884 판결 등도 ‘공서’의 의미를 이와 동일한 취지로 보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이 사건 일본판결을 승인하여 그 효력을 인정할 수는 없으므로, 이 사건 일본판결이 대한민국에서 승인될 수 있음을 전제로 원고 1, 원고 2의 청구가 이 사건 일본판결의 기판력에 반하여 인정될 수 없다는 피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라. 피고가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부담하는지 여부

    1) 피고와 구 일본제철을 법적으로 동일한 법인으로 볼 수 있어 피고가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그대로 부담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구 일본제철의 해산 및 분할에 따른 법인격의 소멸 여부, 제2회사 및 피고가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승계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준거법 역시 대한민국의 저촉규범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하는데, 그 법률관계가 발생한 시점은 구 섭외사법이 시행된 1962. 1. 15. 이전부터 그 이후까지 걸쳐 있다. 그중 1962. 1. 15. 이전에 발생한 법률관계에 적용되는 대한민국의 저촉규범은 앞서 본 ‘법례’이다. 위 ‘법례’는 구 일본제철과 제2회사 및 피고의 법적 동일성 여부를 판단할 법인의 속인법에 대하여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았지만, 법인의 설립준거지법이나 본거지법에 의하여 이를 판단한다고 해석되고 있었고, 구 일본제철과 제2회사 및 피고의 설립준거지와 본거지는 모두 일본이므로, 구 일본제철의 해산 및 분할에 따른 법인격의 소멸 여부, 채무 승계 여부를 판단할 준거법은 일단 일본법이 될 것이고 여기에 회사경리응급조치법과 기업재건정비법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편, 위 ‘법례’ 제30조는 “외국법에 의한 경우에 그 규정이 공공의 질서 또는 선량한 풍속에 반하는 때에는 이를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었으므로, 대한민국의 저촉규범에 따라 준거법으로 지정된 일본법을 적용한 결과가 대한민국의 공서양속에 위반되면 일본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법정지인 대한민국의 법률을 적용하여야 한다. 또한, 1962. 1. 15. 이후에 발생한 법률관계에 적용되는 구 섭외사법에 있어서도 이러한 법리는 마찬가지이다.

    2) 이 사건에서 외국법인 일본법을 문언 그대로 적용하게 되면,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에 대한 채권을 피고에 대하여 주장하지 못하게 된다.

    구 일본제철이 피고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피고가 구 일본제철의 영업재산, 임원, 종업원을 실질적으로 승계하여 회사의 인적, 물적 구성에는 기본적인 변화가 없었던 사실은 위에서 본 바이다. 또한 갑 제89, 90호증, 을 제31 내지 36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면, 회사경리응급조치법과 기업재건정비법은 일본 정부가 불법적인 침략전쟁을 수행하면서 일본 기업으로부터 공급받은 전쟁물자 등에 대한 전시보상금의 지급을 정지하면서 그로 인한 일본 기업의 경영상의 손실을 주주와 채권자의 손실로 처리하여 전후 일본경제의 갱생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인 사실, 위 각 법률은 지정시 이전에 생긴 채무는 원칙적으로 구계정에 속하도록 하면서 종업원의 급여채권 등의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 한 변제를 금지하고, 변제하더라도 구계정에서 변제하며, 특별관리인의 승인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일정 금액 한도 내에서만 신계정에서의 변제가 가능하게 제한을 가한 사실, 특별경리회사가 부담하는 특별손실을 그 범위에 따라 주주와 채권자가 분담하도록 하고 생산활동에 필요한 실질적 가치가 있는 재산은 신계정에 속하도록 해서 이를 출자받은 제2회사를 설립하고 제2회사가 기존 채무의 부담 없이 생산 및 영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면서 이 과정에서 제기되는 이해관계인의 이의신청에 대하여 주무대신이 결정하는 등 정비계획에 대하여는 주무대신의 인가를 받도록 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한편으로 위와 같은 갱생절차를 거치면서 비록 이의제기가 없더라도 구 일본제철이 알고 있는 채권자에 대한 절차관여권 보장을 위한 통지나 이들을 위한 일부 재산의 유보 등의 권리보호를 위한 절차적 또는 실체적인 장치를 거의 두지 아니한 사실, 구 일본제철 역시 구 계정에 대한 청산절차를 진행하면서 알고 있는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아니한 채 다만 신고하지 아니한 채권은 제척된다는 취지로 공고만 한 사실 역시 인정할 수 있다.

    위와 같이 위 회사경리응급조치법과 기업재건정비법은, 패전이라는 비상상황에서 일본경제의 회생이라는 목적으로 제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채무자인 구 일본제철이 이미 알고 있고 더구나 그 채무의 발생원인이 반인도적이고 고의적으로 자행된 불법행위에 기한 것에 이르기까지 채권자에 대한 거의 아무런 보호절차를 두지 아니하여 당시 국교가 단절된 상태이어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가능성이 사실상 없는 대한민국 기타 피침략국의 국민 등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과 관련한 피해자들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권리행사를 봉쇄하는 효과를 가지게 되는바 위 각 법 제정의 배후에 이러한 의도가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앞서 본 구 일본제철이 일본 정부의 지시에 따라 구계정에서 출연하여 공탁한 원고들에 대한 임금, 예저금의 규모가 원고들의 노역기간의 장단에 비례하지 않는 등에 비추어 정당하게 산출된 것으로 보이지 아니하는데, 이 역시 위 공탁이 피해자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위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의 채무를 면하고자 하는 의도 아래 이루어졌다고 의심하게 하는 하나의 징표이다). 한편으로 일반적인 기업도산절차에서 구 채무를 부담하지 아니하는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거나 영업을 양수한 새로운 법인이 종전의 사업을 계속하도록 하는 방법이 세계적으로 널리 취하여지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채권에 대한 추급효를 박탈하는 위 각 법에 의한 갱생절차를 문명국가에서 시행되는 도산법제 아래에서의 채무의 정리와 단순 비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세계 각국이 취하는 도산절차는 채권자의 동의를 전제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고(예를 들어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237조, 제242조 등) 알고 있는 채권자에 대하여는 개별적인 통지를 하는 등으로 절차관여권을 두텁게 보호하고 있다. 또한 갑 제106, 111호증, 을 제13, 14, 15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면, 패전 후 독일은 ‘소멸 중인 I. G. Farbenindustrie 주식회사의 채권자에 대한 최고 관련 법’을 제정하면서 기한 내 채권자들이 등록하지 아니한 청구권은 소멸하는 것으로 정하면서도 위 회사가 알고 있는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는다고 정하였고, 비록 독일연방대법원과 연방헌법재판소가 위 회사에 대한 강제징용 노동자의 손해배상청구를 불허한 바 있으나, 독일은 패전 이후 소위 나치 치하의 비인도적 범죄 피해자들에 대하여 자발적인 보상을 실시하였고, 과거 강제노동자 개인들에 대한 보상이 처음부터 계획되지 있지 않았던 이유로 미국에 소재지를 둔 독일 기업에 대한 강제노동자들의 집단소송이 줄이어 제기되자 미국 등 세계 각지의 나치 피해자들을 대변하는 다수의 대리인과 함께 장기간의 논의 끝에 '기억, 책임, 미래 재단‘을 설립하는 법을 마련하여 위 재단을 통해서 피해자 개인들이 보상금을 지급받도록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거기에다가 헌법을 정합성을 갖춘 규범 체계로 구성, 해석하고 이런 틀 위에서 법률을 포함한 각종 규범을 헌법합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법원의 의무이고 외국법을 준거법으로 함에 있어서도 그 외국의 헌법 내용까지 고려하여 외국법을 해석하여야 할 것인데, 일본국 헌법의 경우에도 제9조에서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으로 인한 전쟁, 무기에 의한 위협과 무력의 행사를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원히 포기한다.”고 규정하는 등 과거 일본 정부가 일으켰던 침략전쟁의 참화에 대한 반성에 기초하여 영구적인 평화를 염원하며 국제사회에서 명예로운 위치에 설 것을 헌법적인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의 필요에 부응하여 이루어진 기망적인 모집이나 징용을 통해 인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군수업체에게까지 그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사실상 면탈하게 하는 내용의 법률 기타 규범의 효력을 그 문언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준거법으로 고려되는 일본법 중 최상위의 효력을 가진 일본국 헌법의 가치에 부합하는 해석이라고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모든 사정에 비추어 보면, 위 각 법 등 당시의 일본법이 정한 기존 채무의 정리에 관한 절차는 문명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방법에 의한 갱생절차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위 각 법은 결국 전후처리 및 배상채무 해결을 위한 일본 국내의 특별한 목적 아래 부당한 채무면탈이 예견됨에도 이를 용인하는 방식으로 제정된 기술적 입법에 불과하여 이러한 일본 국내법을 이유로 구 일본제철의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채무가 면탈되는 결과를 수긍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법률이 외국법을 적용할 때 고려하도록 정하고 있는 국제적 강행법규 내지 공서에 반한다.

    일본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당시의 대한민국 법률을 적용하여 보면, 구 일본제철이 제1항에서 본 바와 같이 책임재산이 되는 자산과 영업, 인력을 제2회사에 이전하여 동일한 사업을 계속한 점 등에 비추어 구 일본제철과 피고는 그 실질에 있어서 동일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여 법적으로는 동일한 회사로 평가하기에 충분하고, 일본국의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구 일본제철이 해산되고 제2회사가 설립된 뒤 흡수합병의 과정을 거쳐 피고로 변경되는 등의 절차를 거쳤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에 대한 청구권을 피고에 대하여도 행사할 수 있다.

    3) 피고는 원고들이 구 일본제철의 청산절차에서 채권을 신고하지 않아 제척되었으므로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에 대한 채권을 주장할 수 없어 결국 피고에 대한 채권도 소멸하였다고 주장하나, 위 각 법 등 일본법이 이 사건의 준거법이 될 수 없고 피고가 구 일본제철과 동일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은 앞서 본 바와 같아서 구 일본제철의 청산절차가 적법하다고 할 수 없으므로 이와 다른 전제의 위 주장은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마. 청구권협정으로 원고들의 청구권이 소멸하였는지 여부

    1)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서, 청구권협정 제1조에 의해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은 제2조에 의한 권리문제의 해결과 법적 대가관계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 점, 청구권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청구권협정의 일방 당사자인 일본 정부가 스스로 불법행위의 존재 및 그에 대한 배상책임의 존재를 스스로 부인한 이상 그 후 위 협정을 해석하면서 배상책임이 모두 이행되었다거나 그 청구권이 포기되었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하여는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하지 아니하였음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도 포기되지 아니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나아가 국가가 조약을 체결하여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함에 그치지 않고 국가와는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국민 개인의 동의 없이 국민의 개인청구권을 직접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근대법의 원리와 조화되기 어렵고, 국가가 조약을 통하여 국민의 개인청구권을 소멸시키는 것이 국제법상 허용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와 국민 개인이 별개의 법적 주체임을 고려하면 조약에 명확한 근거가 없는 한 조약 체결로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 이외에 국민의 개인청구권까지 소멸하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인데, 청구권협정에는 개인청구권의 소멸에 관하여 한일 양국 정부의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볼 만큼 충분한 근거가 없다. 여기에 일본이 청구권협정 직후 일본국 내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및 그 국민에 대한 권리를 소멸시키는 내용의 재산권조치법을 제정·시행한 조치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대한민국 국민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음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점 등을 함께 고려해 보면, 설령 원고들의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는 없고, 다만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됨으로써 일본의 국내 조치로 해당 청구권이 일본국 내에서 소멸하여도 대한민국이 이를 외교적으로 보호할 수단을 상실하게 될 뿐이다.

    따라서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원고들은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피고에 대하여 위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2) 피고는 위와 같이 청구권협정을 해석하는 것이 대법원 2012. 5. 10.자 2012다12863 심리불속행 판결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나, 위 판결의 사안은 청구권협정 체결과 관련한 대한민국 공무원의 행위가 불법행위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관한 것으로 이 사건과 사안을 달리하는 것이고, 심리불속행 판결은 상고이유의 주장이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 제1항이 정한 사유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이거나 또는 그러한 주장이 있더라도 원심판결과 관계가 없거나 원심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할 때에 할 수 있는 것이어서 위 판결이 청구권협정에 관하여 피고의 주장과 같은 해석을 하고 있는 판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

    바. 소멸시효 또는 제척기간 주장에 관한 판단

    1) 원고들의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채권의 소멸 여부에 관한 준거법 역시 앞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대한민국법이 되는데, 현행 민법에 의하면 불법행위에 관하여는 소멸시효만이 규정되어 있어 일본법이 준거법이라는 전제 아래서 제척기간이 도과되었다는 피고의 주장은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2) 다음으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피고의 주장에 관하여 본다.

    소멸시효는 객관적으로 권리가 발생하여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하고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동안은 진행하지 않지만 여기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경우라 함은 그 권리행사에 법률상의 장애사유, 예컨대 기간의 미도래나 조건 불성취 등이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사실상 권리의 존재나 권리행사 가능성을 알지 못하였고 알지 못함에 과실이 없다고 하여도 이러한 사유는 법률상 장애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6다1381 판결 등 참조).

    한편,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11. 6. 30. 선고 2009다72599 판결 등 참조).

    위에서 채택한 증거 및 갑 제11호증, 을 제17, 47 내지 53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면, 구 일본제철의 위와 같은 불법행위가 있은 후 1965. 6. 22. 한일 간의 국교가 수립될 때까지는 일본국과 대한민국 사이의 국교가 단절되어 있었고, 따라서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대한민국에서 판결을 받더라도 이를 집행할 수 없었던 사실, 1965년 한일 간에 국교가 정상화되었으나,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모두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청구권협정 제2조 및 그 합의의사록의 규정과 관련하여 청구권협정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한 개인청구권이 포괄적으로 해결된 것이라는 견해가 대한민국 내에서 널리 받아들여져 온 사실, 일본에서는 청구권협정의 후속조치로 재산권조치법을 제정하여 원고들의 청구권을 일본 국내적으로 소멸시키는 조치를 취하였고 원고 1, 원고 2가 제기한 이 사건 일본소송에서 청구권협정과 재산권조치법이 이들의 청구를 기각하는 부가적인 근거로 명시되기도 한 사실, 그런데 원고들의 개인청구권, 그 중에서도 특히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하지 않았다는 견해가 원고 1, 원고 2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한 1990년대 후반 이후에야 서서히 부각되었고 마침내 2005. 1. 한국에서 한일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된 뒤, 2005. 8. 26.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민관공동위원회의 공식적 견해가 표명된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다.

    여기에 앞서 본 바와 같이 구 일본제철과 피고의 동일성 여부에 대하여도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하는 일본에서의 법적 조치가 있었던 점을 더하여 보면, 적어도 원고들이 이 사건 소를 제기할 시점인 2005. 2.까지는 원고들이 대한민국에서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원고들과 유사한 지위에 있던 일부 대한민국 국민이 미쯔비시중공업 주식회사를 상대로 2000. 5. 1. 대한민국 내에서 소송을 제기한 사정만으로는 원고들에 대한 위 장애사유가 그 무렵 해소되었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점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구 일본제철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법적 지위에 있는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여 원고들에 대한 채무의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사.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한 판단

    피고는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을 위하여 침략전쟁을 수행하고자 하는 일본 정부에 적극 협력하여 면밀한 계획 하에 원고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가혹행위를 하면서 강제노동을 강요하였다. 이로 인하여 원고들은 어린 나이에 가족과 이별하여 가족으로부터 보호를 받거나 가족을 부양할 기회를 빼앗기고, 교육의 기회나 직업선택의 자유도 박탈당한 채 오로지 일본국이 패전할 때까지 피고가 강제하는 일정과 규범에 따라 노동에 종사해야 하였다. 이와 같은 침해행위의 불법성의 정도와 기간 및 그 고의성, 피고가 이러한 불법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및 그 관여 정도, 그로 인한 원고들의 피해의 정도, 그럼에도 불법행위 이후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책임을 부정한 피고의 태도 등의 당심 변론종결 당시까지 발생한 일체의 사정과 함께 이 사건 불법행위 시와 당심 변론종결 시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함에 따른 국민소득수준이나 통화가치의 변경 등을 고려하고, 이와 같이 불법행위 시와 변론종결 시 사이의 통화가치 변경 등을 고려한 위자료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은 예외적으로 그 위자료 산정의 기준시인 사실심 변론종결 당일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아야 함에 따라 불법행위 시로부터 변론종결 시까지 장기간 동안 배상이 지연됨에도 그 기간에 대한 지연손해금이 전혀 가산되지 않게 된다는 사정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면(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9다103950 판결, 대법원 2011. 7. 21. 선고 2011재다19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피고가 지급할 위자료의 액수는 적어도 100,000,000원 이상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아. 소결론

    그러므로, 피고는 원고들에게 원고들이 구하는 바에 따라 각 10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앞서 본 바와 같이 당심 변론종결일인 2013. 6. 19.부터 다 갚는 날까지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20%의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4. 결 론

    그렇다면,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각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각 기각할 것인바, 제1심판결은 이와 일부 결론을 달리하여 부당하므로, 제1심판결 중 위에서 지급을 명한 금원에 해당하는 원고들 패소부분을 각 취소하고 피고에게 그 지급을 명하며, 원고들의 나머지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각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윤성근(재판장) 문정일 구자헌

    ===========================

    서울중앙지방법원 2008. 4. 3. 선고 2005가합16473 판결

    [손해배상(기)][미간행]


    【전 문】

    【원 고】 원고 1 외 4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해마루종합법률사무소 담당변호사 장영석 외 1인)

    【피 고】 신일본제철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변호사 주한일 외 1인)

    【변론종결】

    2008. 3. 6.

    【주 문】

    1.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한다.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100,000,000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한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 다음 날 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각 지급하라.

    【이 유】

    1. 기초사실

    다음 각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제1호증, 제2호증의 1, 6, 제3호증의 1, 제4호증의 1, 제5호증의 1, 제6호증의 1, 제22호증의 1, 제23호증의 1, 제25호증, 제47호증의 1, 2, 제49호증 내지 제53호증(각 가지번호 포함), 제55호증의 1, 2, 제62호증의 1, 2, 제71호증의 1, 2, 제74호증 내지 제78호증(각 가지번호 포함), 을 제1호증의 1, 2, 제2호증의 1, 2, 제6호증, 제7호증의 각 기재와 갑 제3호증의 3, 제4호증의 4, 제6호증의 5의 일부 기재 및 원고 5(원심: 원고 4)에 대한 당사자 본인신문결과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이를 인정할 수 있다.

    가. 원고들의 동원, 강제노동 및 귀국경위

    (1) 원고들은 1923.부터 1929.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평양, 보령, 군산 등에서 거주하고 있던 자들이고, 일본제철 주식회사(이하 ‘구 일본제철’이라 한다)는 1934. 1.경 설립되어 일본 가마이시(부석), 야하타(팔번), 오사카(대판) 등에서 제철소를 운영하고 있었던 회사이다.

    (2) 일본 정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군수물자 생산에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1938. 4. 1. 국가총동원법을 제정, 공포하고 이를 같은 해 5. 5.부터 우리나라에서 실시하였으며, 1942. 조선인 내지이입 알선 요강을 제정·실시하고, 우리나라 각 지역의 관알선을 통하여 인력을 모집하였으며, 1944. 10.경부터는 국민징용령에 의하여 우리나라 국민에 대한 징용을 실시하였다.

    한편, 구 일본제철을 비롯한 일본의 철강생산자들을 총괄 지도하는 일본 정부 직속기구인 철강통제회가 1941. 4. 26. 설립되었는데, 철강통제회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노무자를 적극 확충하기로 하고 일본 정부와 협력하여 노무자를 동원하였고, 구 일본제철은 사장이 철강통제회의 회장을 역임하는 등 철강통제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3) 구 일본제철은 1943.경 평양에서 오사카제철소의 공원모집 광고를 냈는데, 그 광고에는 오사카제철소에서 2년간 훈련을 받으면 기술을 습득할 수 있고 훈련 종료 후 한반도의 제철소에서 기술자로 취직할 수 있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4) 원고 1, 원고 2는 1943. 9.경 위 광고를 보고, 기술을 습득하여 우리나라에서 취직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려 응모한 다음, 구 일본제철의 모집담당자와 면접을 하고 합격하여 위 담당자의 인솔 하에 구 일본제철의 오사카제철소로 가서, 훈련공으로서 노역에 종사하게 되었다.

    (5) 오사카제철소에서 원고 1, 원고 2는 1일 8시간의 3교대제로 일하였고, 한 달에 1, 2회 정도 외출이 허용되었으며, 한 달에 2, 3엔 정도의 용돈만 지급받았을 뿐이고, 구 일본제철은 임금전액을 지급하면 낭비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원고 1, 원고 2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위 원고들 명의의 구좌에 임금의 대부분을 일방적으로 입금하였으며, 그 저금통장과 도장을 기숙사의 사감에게 보관하게 하였다. 위 원고들은 화로에 석탄을 넣고 깨뜨려서 뒤섞거나 철 파이프 속으로 들어가서 석탄찌꺼기를 제거하는 등 화상의 위험이 있고 기술습득과는 별 관계가 없는 매우 고된 노역에 종사하였는데, 제공되는 식사는 그 양이 매우 적었다. 또한 경찰이 자주 들러서 위 원고들에게 ‘도망치더라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말하였고 기숙사에서도 감시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위 원고들은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하였는데, 원고 2는 도망가고 싶다고 말하였다가 발각되어 기숙사 사감으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체벌을 받기도 하였다.

    (6) 그러던 중 일본은 1944. 2.경 훈련공들을 강제로 징용하였고, 원고 1, 원고 2는 징용 이후에는 용돈도 전혀 지급받지 못하였다. 오사카제철소의 공장은 1945. 3.경 미합중국 군대의 공습으로 파괴되었고, 이때 훈련공들 중 일부는 사망하였으며, 원고 1, 원고 2를 포함한 나머지 훈련공들은 1945. 6.경 우리나라 청진에 건설 중인 제철소로 배치되어 청진으로 이동하였다. 원고 1, 원고 2는 기숙사의 사감에게 임금이 입금되어 있던 저금통장과 도장을 달라고 요구하였지만, 사감은 청진에 도착한 이후에도 위 통장 및 도장을 돌려주지 아니하였고, 원고 1, 원고 2는 청진에서 하루 12시간 동안 공장건설을 위해 토목공사를 하면서도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였다.

    (7) 원고 3은 1941.경 대전시장의 추천을 받아 보국대로 동원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구 일본제철의 가마이시제철소에서 노역에 종사하였는데, 임금을 저금해준다는 말을 들었을 뿐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였다. 원고 4는 1942. 10.경 충남 보령군 마을 구장의 지시를 받고 모집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위 가마이시제철소에서 노역에 종사하였는데, 임금은 극히 일부만 지급받았다. 원고 5는 1943. 1.경 군산부(지금의 군산시)의 지시를 받고 모집되어 구 일본제철의 인솔자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구 일본제철의 야하타제철소에서 노역에 종사하였는데,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였고, 도주하다가 발각되어 약 5일 동안 구타를 당하기도 하였다.

    (8) 원고들은 1945. 8.경부터 같은 해 12.경까지 사이에 각 제철소가 공습으로 파괴되고 일본이 패전하여 구 일본제철에서 더 이상 강제노동을 시킬 수 없게 되자 각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나. 전후의 상황

    (1) 미불임금의 공탁

    구 일본제철은 1947. 3. 18. 오사카공탁소에 원고 1(창씨개명 ○○○○. 강제노동 당시에 △△△△을 사용함)을 피공탁자로 하여 급료 50.52엔, 예저금(예저김) 445엔 합계 495.52엔을, 같은 날 오사카공탁소에 원고 2(창씨개명 □□□□)를 피공탁자로 하여 급료 57.44엔, 예저금(예저김) 410엔 합계 467.44엔을, 1946.경 원고 3(창씨개명 ◇◇◇◇)을 피공탁자로 하여 예저금 23.80엔을, 1946.경 원고 5(창씨개명 ☆☆☆☆)를 피공탁자로 하여 급료 40엔, 퇴직수당 10.20엔 합계 50.20엔을 각 공탁하였다.

    (2) 구 일본제철의 해산

    구 일본제철은 회사경리응급조치법(1946. 8. 15. 법률 제7호), 기업재건정비법(1946. 10. 19. 법률 제40호)의 제정·시행에 따라 위 각 법에서 정한 특별경리회사, 특별경리주식회사로 지정되어 1950. 4. 1.에 해산하였고, 구 일본제철의 자산 출자로 야하타제철(팔번제철) 주식회사, 후지제철(부사제철) 주식회사, 일철기선(일철기선) 주식회사, 하리마내화연와(파마내화련와) 주식회사(위 4개 회사를 이하 ‘제2회사’라 한다)가 설립되었다.

    (3)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조약과 부속협정의 체결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1951.말경부터 국교정상화 및 전후 보상문제를 논의하였고 마침내 1965. 6. 22. ‘국교정상화를 위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그 부속협정의 하나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하 ‘청구권협정’이라고 한다)이 체결되었는데, 청구권협정은 제1조에서 일본국이 대한민국에 10년간에 걸쳐 3억 달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2억 달러의 차관을 행하기로 한다고 정함과 아울러 제2조에서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

    1.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2. 본조의 규정은 다음의 것(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각기 체약국이 취한 특별조치의 대상이 된 것을 제외한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a) 일방체약국의 국민으로서 1947년 8월 15일부터 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사이에 타방체약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사람의 재산, 권리 및 이익

    (b)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있어서의 통상의 접촉의 과정에 있어 취득되었고 또는 타방체약국의 관할하에 들어오게 된 것

    3. 2의 규정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본 협정의 서명일에 타방체약국의 관할 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와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또한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은 위 제2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a) “재산, 권리 및 이익”이라 함은 법률상의 근거에 의거하여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는 모든 종류의 실체적 권리를 말하는 것으로 양해되었다.

    (e) 동조 3.에 의하여 취하여질 조치는 동조 1.에서 말하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취하여질 각국의 국내조치를 말하는 것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g) 동조 1.에서 말하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되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에는 한일회담에서 한국측으로부터 제출된 “한국의 대일청구요강”(소위 8개 항목)의 범위에 속하는 모든 청구가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동 대일청구요강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됨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위 합의의사록에 적시된 대일청구 8개 요강에는,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전쟁에 의한 피징용자의 피해에 대한 보상, 한국인의 일본인 또는 일본법인에 대한 청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4) 청구권협정에 따른 후속조치

    청구권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일본은 1965. 12. 17.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일본국과 대한민국간의 협정 제2조의 실시에 따른 대한민국 등의 재산권에 대한 조치에 관한 법률’주1) (법률 제144호, 이하 ‘재산권조치법’이라 한다)을 제정·시행하였다.

    한편 대한민국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수입되는 자금을 사용하기 위한 기본적 사항을 정하기 위하여 1966. 2. 19. ‘청구권자금의 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주2) 을 제정하고, 이에 이어 1971. 1. 19. ‘대일 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주3) 을 제정하여 10개월간 국민의 대일청구권 신고를 받은 결과 총 109,540건의 신고가 접수되었는바, 위 신고분에 대한 실제 보상을 집행하기 위하여 1974. 12. 21. ‘대일 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1975. 7. 1.부터 1977. 6. 30.까지 사이에 총 83,519건에 대하여 총 9,187,693,000원의 보상금을 지급하였고, 위 각 법률은 1982. 12. 31. 모두 폐지되었다.

    (5) 피고의 설립

    야하타제철 주식회사는 1970. 3. 31. 일본제철 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하였고, 1970. 5. 29. 후지제철 주식회사를 합병하였다.

    다. 일본에서 소송의 경과

    원고 1, 원고 2는 1997. 12. 24.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피고에 대하여 임금지급 및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고, 2001. 3. 27. 원고청구기각 판결이 선고되었으며, 오사카고등재판소에서 2002. 11. 19. 항소기각되고, 위 판결은 2003. 10. 9. 확정되었다(위 소를 이하 ‘이 사건 전소’라 한다).

    2. 당사자들의 주장

    가. 원고들의 주장

    원고들은, 일제강점 하에 피고의 전신인 구 일본제철의 모집담당관이 원고들에게 기술습득, 귀국 후 안정적인 일자리 보장, 충분한 식사와 임금 제공 등을 보장한다면서 원고들을 회유하여 일본으로 동원하였으나, 실제로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의 여러 공장에서 원고들의 의사에 반하여 자유를 박탈당한 상황에서 강제노동에 혹사당하고 임금마저 강제로 저축당하여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였으므로, 구 일본제철의 후신으로서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승계한 피고가 원고들에게 각 100,000,000원의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나. 피고의 주장

    이에 대하여 피고는, ① 원고 1, 원고 2가 이미 일본에서 피고를 상대로 동일한 소를 제기하여 패소확정판결을 받았으므로 이 사건 소 중 위 원고들의 청구는 기판력에 저촉되어 기각되어야 하고, ② 원고 3, 원고 4, 원고 5의 경우 강제로 또는 기망을 통해 동원되었다 하더라도 동원은 강제노동이라는 불법행위의 수단일 뿐이고 강제노동에 종사시킨 불법행위 자체는 일본에서만 이루어졌으므로, 대한민국이 불법행위지가 아니어서 대한민국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이 없으므로, 이 사건 소 중 위 원고들의 청구부분은 부적법하여 각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가사 적법하다 하더라도, ① 청구권협정 및 그 후속조치로 인하여 원고들의 위자료 청구권은 소멸하였고, ② 피고는 구 일본제철과 법인격이 다르고 구 일본제철의 원고들에 대한 위자료채무를 승계하지도 않았으므로, 피고에게 위자료 지급을 구하는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없다고 주장한다.

    3. 본안전 항변에 관한 판단

    가. 대한민국법원의 국제재판관할권 인정 여부

    대한민국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이 없으므로 이 사건 소가 각하되어야 한다는 피고의 항변에 대하여 살펴본다.

    (1) 국제재판관할권 유무 판단의 기준

    살피건대, 국제재판관할권의 유무 판단을 위한 일반적인 기준과 관련하여, 우리나라 국제사법(2001. 4. 7. 법률 제6465호로 전문개정된 것)은 제2조 제1항에서 “법원은 당사자 또는 분쟁이 된 사안이 대한민국과 실질적 관련이 있는 경우에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진다. 이 경우 법원은 실질적 관련의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 국제재판관할 배분의 이념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원칙에 따라야 한다.”라고 추상적인 기준을 제시한 다음, 제2조 제2항에서 “법원은 국내법의 관할 규정을 참작하여 국제재판관할권의 유무를 판단하되, 제1항의 규정의 취지에 비추어 국제재판관할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여 당해 사건이 법정지인 우리나라 민사소송법의 재판적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우리나라 국제재판관할을 인정하되 이때에도 국제재판관할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국제재판관할을 결정함에 있어서는 국내법의 관할 규정을 기초로 당사자 간의 공평, 재판의 적정, 신속 및 경제를 기한다는 기본 이념뿐만 아니라 소송당사자들의 공평, 편의 그리고 예측가능성과 같은 개인적인 이익, 그리고 재판의 적정, 신속, 효율 및 판결의 실효성 등과 같은 법원 내지 국가의 이익도 함께 고려하여야 할 것이며, 이러한 다양한 이익 중 어떠한 이익을 보호할 필요가 있을지 여부는 개별 사건에서 법정지와 당사자와의 실질적 관련성 및 법정지와 분쟁이 된 사안과의 실질적 관련성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삼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대법원 2005. 1. 27. 선고 2002다59788 판결 참조).

    (2) 이 사건 소에 대한 판단

    ㈎ 의무이행지

    원고들은, 이 사건 청구가 손해배상청구이고 그 의무이행지가 지참재무의 원칙에 따라 원고들의 주소지인 대한민국이므로 대한민국법원은 국제제판관할권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민사소송법 제8조에 의하면 재산권에 관한 소는 의무이행지의 법원에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는 지참채무이므로 이에 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일률적으로 그 의무이행지에 해당하는 피해자의 주소지국에서 제기할 수 있다고 한다면 피고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응소를 강요받는 결과가 되어 공평에 반하게 되므로, 위 조항이 규정하고 있는 의무이행지에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채무의 이행지는 제외된다 할 것이다.

    따라서, 원고들이 피고에 대하여 불법행위책임에 따른 위자료를 구하는 이 사건 소에 관하여는 민사소송법 제8조의 의무이행지 규정에 근거하여 국제재판관할권이 대한민국의 법원에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피고의 이 부분에 관한 주장은 이유 있다.

    ㈏ 불법행위지

    원고들은, 일본 정부와 구 일본제철이 공모하여 원고들을 기망함으로써 원고들을 모집하였고, 원고들을 기망하여 동원한 것은 강제노동을 전제로 한 것으로서 강제노동이라는 불법행위의 시작이며, 기망으로 동원한 행위가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진 이상 대한민국은 불법행위지이므로 대한민국 법원은 이 사건 소에 대하여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위 1.의 가.항에서 본 바와 같이 원고 1, 원고 2의 경우 모집광고에서 제시된 내용과 달리 실제로는 매우 열악한 조건에서 감시를 당하면서 기술습득과는 별 관계가 없는 노동에 종사하였고, 원고 3, 원고 4, 원고 5의 경우 구체적인 노동조건이나 내용에 대하여 알지 못한 채 지시를 받고 동원되어 임금도 받지 못하고 노동에 종사하였는바, 원고들이 위와 같이 동원된 후 강제노동에 종사하게 되었다면, 불법행위는 대한민국 내 원고들의 각 거주지역에서 원고들을 동원한 것으로부터 일본에 이르러 강제노동에 종사시키기까지 일련의 계속된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대한민국은 불법행위지에 해당한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불법행위지로서 이 사건과 실질적 관련성이 있다 할 것이다.

    또한, 가장 중요한 소송자료라고 할 수 있는 원고들이 모두 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으므로, 대한민국은 당사자의 생활근거지로서 이 사건과 실질적 관련성을 가진다 할 것이고, 이 사건 청구에 대한 판단이 청구권협정의 체결과 그 후속조치 등 대한민국의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대한민국은 분쟁 사안과 실질적 관련이 있다 할 것이다. 나아가 이 사안은 대한민국 국민을 동원하여 강제노동에 종사시킨 것으로 그 피해자가 귀국하여 대한민국에서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은 예측가능하다 할 것이고, 원고들과 피고의 소송수행능력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 법원에 재판관할권을 인정하는 것이 당사자간의 공평을 현저히 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으며, 피고가 대한민국 내에 사무실을 둔 대리인을 선임하여 응소하고 있는 이상 대한민국법원에 응소를 강제하는 것이 심히 부당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볼 수도 없다.

    (3) 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소송에 관하여 대한민국 법원은 의무이행지로서는 국제재판관할권이 인정되지 아니하나, 불법행위지로서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진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의 위 항변은 이유 없다.

    나. 기판력 저촉 여부에 대한 판단

    원고 1, 원고 2가 일본에서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소와 동일한 내용으로 제기한 이 사건 전소에서 청구기각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실은 위 1.의 다.항에서 본 바와 같은 바, 이 사건 소의 제기가 위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는지에 대하여 살펴본다.

    (1) 외국법원 확정판결의 승인 요건

    민사소송법 제217조의 규정에 의하면,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은 ① 대한민국의 법령 또는 조약에 따른 국제재판관할의 원칙상 그 외국법원의 국제재판관할이 인정될 것, ② 패소한 피고가 소장 또는 이에 준하는 서면 및 기일통지서나 명령을 적법한 방식에 따라 방어에 필요한 시간여유를 두고 송달받았거나 송달받지 아니하였더라도 소송에 응하였을 것, ③ 그 판결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아니할 것, ④ 상호보증이 있을 것 등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우리나라에서 그 효력이 인정되고,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이 위 승인요건을 구비하고 있는 경우에는 이와 동일한 소송을 우리나라 법원에 다시 제기하는 것은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된다 할 것이다.

    (2) 판단

    ㈎ 이 사건이 위 4가지 요건을 충족하는지에 대하여 보건대, 먼저 ① 일본은 피고의 사무소 소재지이므로, 이 사건 전소가 제기된 일본국 재판소가 위 사건에 대하여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지고, ② 원고 1, 원고 2가 이 사건 전소에서 원고로 소를 제기하였다가 패소하였고, 피고가 패소한 경우가 아니므로, 위 ①, ②요건은 모두 충족되었다 할 것이다.

    다음으로, ④요건에 대하여 보면, 상호보증은 외국의 법령, 판례 및 관례 등에 의하여 승인요건을 비교하여 인정되면 충분하고 반드시 당사국과 조약이 체결되어 있을 필요는 없고, 우리나라와 외국 사이에 동종 판결의 승인요건이 현저히 균형을 상실하지 아니하고 외국에서 정한 요건이 우리나라에서 정한 요건보다 전체로서 과중하지 아니하며 중요한 점에서 실질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는 정도라면 상호보증의 요건을 구비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며, 당해 외국에서 구체적으로 우리나라의 동종 판결을 승인한 사례가 없더라도 실제로 승인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상태이면 충분하다 할 것인바(대법원 2004. 10. 28. 선고 2002다74213 판결 등 참조), 일본의 경우 일본 민사소송법 제118조에서 외국판결의 승인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민사소송법 제217조와 동일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상호보증이 있다고 할 것이어서, 위 ④요건도 충족되었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위 ③요건, 즉 이 사건 전소에 대한 판결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아니하는지에 대하여 이하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위반의 의미

    위 ③요건에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란 민법 제103조에 정한 국내 실체법상의 공서보다는 좁은 의미로서, 실체적 공서와 그 성립절차에 관한 절차적 공서를 포함하는 것인바,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는 경우’란 ㉠ 동일 당사자 간의 동일 사건에 관하여 대한민국에서 판결이 확정된 후에 다시 외국에서 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됨으로써 대한민국 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는 경우(대법원 1994. 5. 10. 선고 93므1051, 1068 판결 참조), ㉡ 재심사유에 관한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제6호, 제7호, 제2항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피고가 판결국 법정에서 위증을 이용하여 판결을 얻는 등의 사기적인 사유를 주장할 수 없었고 또한 처벌받을 사기적인 행위에 대하여 유죄 판결과 같은 고도의 증명이 있는 경우(대법원 2004. 10. 28. 선고 2002다74213 판결 참조), ㉢ 외국판결의 내용 자체가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는 경우 등을 말한다.

    이 사건의 경우 위 ㉠, ㉡의 경우에는 해당하지 아니함이 명백하고, ㉢의 경우 즉 일본법원의 판결 내용 자체가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는지가 문제된다.

    ㈐ 이 사건 전소의 판결 내용

    을 제2호증의 1, 을 제6호증의 각 기재에 나타난 바와 같이, 이 사건 전소에서 일본국 법원은, 일본의 패전으로 일본기업이 부담할 엄청난 액수의 배상 및 미지급 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46. 제정·시행된 회사경리응급조치법, 기업재건정비법에 따라, 원고들의 임금채권 및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채권이 위 각 법에서 정한 구채권에 해당하여 구계정에 속하고, 제2회사가 구계정에 속하는 구 일본제철의 구채무를 당연히 포괄승계하는 것은 아니며, 제2회사가 구 일본제철의 구채무를 승계한다는 의사표시를 한 사실을 인정할 증거도 없으므로, 제2회사 중 일부가 합병되어 설립된 피고에게도 원고들에 대한 채무가 승계되지 않았다고 보아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 판단

    위와 같은 일본법원의 판결 내용 자체가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는지 살펴본다.

    1) 회사 해산, 분할, 합병의 준거법

    회사의 설립, 권리능력의 유무와 범위, 행위능력, 조직 및 내부관계, 사원의 권리와 의무 등 회사의 설립부터 소멸까지의 사항을 비롯한 회사법상의 쟁점에 대하여는 회사의 속인법(속인법)이 적용되어야 하므로, 회사가 해산하여 분할되었다가 후에 일부가 다시 합병될 경우 그 절차 및 그에 따른 회사법적 효과, 즉 법인격의 소멸과 권리·의무의 승계 등도 회사의 속인법이 규율하는 사항이라고 할 것이다.

    섭외사법(2001. 4. 7. 법률 제6465호로 전문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섭외사법’이라 한다) 제29조는 "상사회사의 행위능력은 그 영업소 소재지의 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었을 뿐 그 속인법에 관한 명문의 규정이 없어 설립준거법주의와 본거지법주의 등 학설이 나뉘어 왔었는데 어느 견해를 따르더라도 구 일본제철의 속인법이 일본국 법률이라는 점에는 차이가 없으므로(전문개정된 후의 국제사법 제16조는 "법인 또는 단체는 그 설립의 준거법에 의한다"라고 규정하여 원칙적으로 설립준거법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구 일본제철의 회사해산 및 분할에 따른 법인격 소멸 여부, 채무승계 여부 등을 판단할 준거법으로는 당시 일본국의 법률인 회사경리응급조치법, 기업재건정비법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이에 대하여 원고들은, 위 법률들이 법인격남용의 이론에 정면으로 반하는 내용이므로 이 사건에서 판단기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2) 회사경리응급조치법, 기업재건정비법의 규정에 따른 판단

    섭외적 사건에 관하여 적용될 외국법규의 내용을 확정하고 그 의미를 해석할 때에는 그 외국법이 그 본국에서 현실로 해석·적용되고 있는 의미·내용대로 해석·적용되어야 하는바(대법원 2003. 1. 10. 선고 2000다70064 판결 등 참조), 을 제1호증의 1의 기재에 의하면, 회사경리응급조치법에서는, 1946. 8. 11. 오전 0시(이하 ‘지정시’라 한다)를 기준으로 회사의 계산은 신계정과 구계정으로 구분하여 경리해야 하고, 회사의 목적으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사업의 계속 및 전후 산업의 회복진흥에 필요한 것은 신계정에 소속시키며(위 법 제1조, 제7조), 지정시 이전에 생긴 원인으로 발생한 채권은 구채권에 해당하고, 구채권에 대해서는 변제 등 소멸행위를 금지하며(위 법 제14조), 예외적으로 변제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구계정으로 변제하여야 하고, 신계정으로 변제하는 경우는 특별관리인의 승인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일정한 금액의 한도 내에서 가능하며(위 법 제14조), 지정시 이전의 원인으로 생긴 수입, 지출은 구계정의 수입, 지출로 경리해야 한다(위 법 제11조)고 규정되어 있다.

    위 규정내용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들의 위자료청구권은 지정시 이전에 생긴 원인으로 발생한 것으로서 구채권에 해당하고, 위 규정의 취지는 구채권이 구계정에 속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원고들의 위자료청구권은 구계정에 속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이에 대하여 원고들은, 위 법에서 정한 ‘지정시 이전에 생긴 원인’이란 정상적인 영업활동과 관련된 것만을 의미하고 원고들의 경우와 같이 전쟁범죄를 위하여 강제노동에 종사시키는 불법행위를 의미하지는 않으므로, 원고들의 권리는 구채권에 해당하지 않고 신계정과 구계정 모두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권리였다고 주장하나, 이를 인정할 근거가 없으므로, 원고들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또한, 을 제1호증의 2의 기재에 의하면, 기업재건정비법에서는, 특별경리주식회사가 신계정에 속하는 자산을 출자할 경우 출자받는 자가 지정시 이후에 특별경리주식회사의 신계정의 부담이 된 채무를 승계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위 법 제10조), 구계정에 속하는 채무의 승계여부에 대하여는 아무런 규정이 없고, 지정시까지 생긴 손실액과 이익액을 계산하여(위 법 제3조) 손실액이 이익액을 초과하는 경우 그 초과액을 특별손실액으로 하여(위 법 제4조) 일정한 기준에 따라 주주, 채권자가 부담하도록(위 법 제7조) 규정하고 있다.

    위 규정내용을 종합하면, 제2회사가 당연히 특별경리주식회사의 채무를 승계하지는 않는다는 전제에서, 지정시 이후에 신계정의 부담이 된 채무를 승계하는 경우에 대하여만 채권자를 보호하는 규정을 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제2회사가 특별경리주식회사의 구계정에 속하는 구채권을 당연히 포괄적으로 승계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원고들은, 근로관계에 기한 채권은 회사의 경영주체 변경에 의하여 당연히 포괄적으로 새로운 회사에 승계되고, 원고들의 강제노동에 의한 손해배상청구권은 근로관계에 기한 채권의 일종이므로, 구 일본제철의 원고들에 대한 채무를 피고가 당연히 승계하였다고 주장하나, 이를 인정할 근거가 없으므로, 원고들의 위 주장도 이유 없다.

    (3) 결론

    그렇다면, 위와 같이 판단한 일본 판결의 내용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비추어 허용될 수 없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결국 일본의 위 확정판결은 우리나라에서 그 효력이 인정된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소 중 원고 1, 원고 2의 청구 부분은, 일본의 위 확정판결과 동일한 소송을 우리나라 법원에 다시 제기한 것으로서, 위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어 이 법원으로서는 종전 판결과 모순된 판단을 할 수 없으므로, 위 청구 부분은 본안에 관하여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4. 원고 3, 원고 4, 원고 5의 청구에 관한 판단

    가. 청구원인에 대한 판단

    (1) 국제법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 성립 여부

    원고 3, 원고 4, 원고 5(이하 ‘원고 3 등’이라 한다)는 구 일본제철이 강제노동에 관한 국제노동기구(ILO) 제29호 조약(C29 Forced Labour Convention), 국제인권규약 등 국제법 규정을 위반하였으므로 이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국제법상 사인(사인)의 주체성 인정 여부에 관하여 국가만이 그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으나 국제법상 사인의 주체성을 부정할 근거가 부족하고, 다만 사인이 실제로 국제법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여부는 개개의 조약, 국제관습법에서 정한 규범의 내용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특히 사인이 국제법에 근거하여 다른 국가 또는 그 국민을 상대로 직접 어떤 청구를 할 수 있는지 여부는 각 조약 등 국제법 자체에서 해당 규범의 위반행위로 인하여 권리를 침해당한 사인에게 그 피해회복을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 및 그에 관한 구체적인 요건, 절차, 효과에 관한 내용을 규정한 경우나 그 국제법에 따른 사인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국내법적 입법조치가 행하여진 경우에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하여 보면, 강제노동에 관한 국제노동기구 제29호 조약 등의 각 규정에, 강제노동으로 피해를 입은 사인에게 강제노동을 실시한 주체에 대해 직접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없다. 그렇다면, 원고 3 등은 국제법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구할 수는 없다 할 것이므로, 이 부분 원고 3 등의 주장은 더 나아가 살펴 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

    (2) 국내법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 성립 여부

    ㈎ 준거법

    구 섭외사법 제13조 제1항에 의하면, 불법행위로 인하여 생긴 채권의 성립 및 효력은 그 원인된 사실이 발생한 곳의 법에 의하도록 되어 있는바, 위 3.가.(2)의 ㈏항에서 본 바와 같이, 구 일본제철의 불법행위는 대한민국 내 원고 3 등의 각 거주지역에서 원고 3 등을 동원한 것으로부터 일본에 이르러 강제노동에 종사시키기까지 일련의 계속된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대한민국은 불법행위지로서 그 원인된 사실이 발생한 곳에 해당한다. 따라서 대한민국 민법의 불법행위에 관한 규정이 피고의 손해배상책임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준거법이 된다.

    ㈏ 판단

    위 증거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일본 정부는 일본의 제철소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우리나라의 인력을 동원한 사실, 구 일본제철은 철강통제회에 적극 참여하는 등 일본 정부의 인력동원정책에 공모하여 인력을 확충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원고 3 등은 당시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상황하에서 장차 일본에서 처하게 될 노동 내용이나 환경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 채 일본 정부와 구 일본제철의 위와 같은 조직적인 기망에 의하여 동원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또한, 원고 3 등이 어린 나이에 가족과 이별하여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였고, 구체적인 임금액도 모른 채 강제로 저금을 당하였으며, 상시 감시를 당하여 이탈이 불가능하였고, 식사도 불충분하게 주어진 사실은 위에서 본 바와 같으므로, 구 일본제철은 원고 3 등을 강제노동에 종사하게 한 것이고 이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원고 3 등이 위와 같이 강제노동에 종사하면서 정신적 고통을 입었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구 일본제철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 3 등의 정신적 고통을 금전적으로나마 위자할 의무가 있다.

    나.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원고 3 등의 위자료청구권이 소멸하였는지 여부

    위 1.나.의 (3),(4)항 기재 청구권협정, 합의의사록의 내용 및 갑 제17호증, 제18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청구권협정에서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이익과 양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차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이익으로서 각 상대국의 관할 하에 있는 것에 대하여 각 상대국에서 국내조치를 취하기로 하고(청구권협정 제2조 제3항, 합의의사록 ⒠항), 이에 대하여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다(청구권협정 제2조 제3항)고 정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이에 의하면,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은 청구권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상대국이 취하는 국내조치에 대하여 외교보호권을 행사하지 않고 재산, 권리, 이익, 청구권에 대하여 외교보호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하며 상대국이 어떠한 국내조치를 취할지는 각 국의 결정에 맡기기로 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및 그 국민에 대한 청구권 자체가 소멸되었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원고 3 등의 이 사건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소멸한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다. 구 일본제철과 피고의 법인격 동일성 및 채무승계 여부

    구 일본제철이 원고 3 등에게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지급채무를 부담하는바, 원고 3 등이 위와 같은 위자료청구권을 피고에 대하여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본다.

    원고 3 등은, 피고가 구 일본제철의 영업재산, 임원, 종업원, 사표(사표) 등을 그대로 승계하고 있을 뿐 아니라, 피고가 구 일본제철에 의해 징용당한 자의 유족에게 위자료 및 위령제 비용을 지급한 점에 비추어보아도 구 일본제철과 피고는 법인격이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갑 제68호증 내지 제73호증(각 가지번호 포함), 갑 제80호증의 1 내지 3의 각 기재만으로 피고가 구 일본제철의 영업재산, 임원, 종업원 등을 그대로 승계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할 뿐 아니라, 가사 피고가 구 일본제철의 영업재산, 임원, 종업원을 그대로 승계하였다 하더라도 그러한 점과 구 일본제철과 상호가 유사한 점 등을 들어 구 일본제철과 피고의 법인격이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피고가 구 일본제철에 의해 징용되어 1945. 7. 및 같은 해 8.경 가마이시제철소에서 함포사격으로 사망한 자들의 유족들에게 위자료 및 위령제 비용을 지급한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으나, 이를 인도적인 차원에서 책임을 부담한 것으로 볼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이러한 사실을 들어 피고가 구 일본제철과 법인격이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피고가 구 일본제철의 원고 3 등에 대한 채무를 승계하지 아니한 것은 위 3.나.(2)의 ㈑항에서 본 바와 같은바, 피고가 구 일본제철과 법인격이 동일하다거나 피고가 구 일본제철의 원고 3 등에 대한 위자료지급채무를 승계하였음을 전제로 하여, 피고에 대하여 위자료 지급을 구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따라서 원고 3 등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없다.

    라. 시효소멸 여부(부가적 판단)

    (1) 피고의 주장 및 판단

    피고는 원고 3 등의 이 사건 위자료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원고 3 등의 이 사건 위자료청구권은 구 일본제철이 원고 3 등을 강제노동에 종사시킨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한다고 할 것인바(민법 제766조 제2항), 원고 3 등이 주장하는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는 물론 그 이후 대한민국과 일본국 사이의 국교가 정상화된 1965. 6. 22.로부터 기산하더라도 이 사건 소가 그로부터 10년이 이미 경과된 후인 2005. 2. 28. 제기되었음이 기록상 명백하므로, 원고 3 등의 이 사건 위자료청구권은 이 사건 소제기 이전에 이미 시효로 소멸하였다 할 것이다.

    (2) 원고 3 등의 주장 및 판단

    이에 대하여 원고 3 등은, ① 청구권협정의 존재 등 법률상 장애사유로 인하여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고, ② 피고가 시효소멸의 항변을 하는 것은 신의칙이나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먼저 위 ①주장에 대하여 살피건대, 소멸시효는 객관적으로 권리가 발생하여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하고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동안은 진행하지 않지만 여기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경우란 그 권리행사에 법률상의 장애사유, 예컨대 기간의 미도래나 조건 불성취 등이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사실상 권리의 존재나 권리행사 가능성을 알지 못하였고 알지 못함에 과실이 없다고 하여도 이러한 사유는 법률상 장애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것인바(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6다1381 판결 등 참조), 그 동안 청구권협정 제2조 및 그 합의의사록의 내용 해석에 관하여 대한민국 정부의 국민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한 것인지, 혹은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한 개인적 손해배상청구권도 포기한 것인지에 관하여 논란이 있어 왔고, 원고 3 등이 위 청구권협정의 명확한 의미를 알지 못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것으로 믿었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 원고 3 등의 권리 행사를 저지하는 법률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원고 3 등의 위 주장도 이유 없다.

    다음으로 위 ②주장에 대하여 살피건대,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는 경우란,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 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말하는바(대법원 2005. 5. 13. 선고 2004다71881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의 경우 일본의 강제징용 등 불법행위에 구 일본제철이 공모하여 개입한 사정만으로, 구 일본제철과 법인격이 동일하지도 않고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승계하였다고도 볼 수 없는 피고에 대하여 채무 이행의 거절을 인정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원고 3 등의 위 주장도 이유 없다.

    5. 결 론

    그렇다면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모두 이유 없어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윤준(재판장) 하홍영 최지영

    주1) 1. 다음에 게재하는 대한민국 또는 그 국민의 재산권으로 협정 제2조의 재산, 이익에 해당하는 것은 다음 항의 적용을 제외하고 1965년 6월 22일에 소멸한 것으로 한다(단서 생략). (1) 일본국 또는 그 국민에 대한 채권 (2) 담보권으로 일본국 또는 그 국민이 가지는 물 또는 채권을 목적으로 하는 것.

    주2) 제5조 제1항 대한민국국민이 가지고 있는 1945년 8월 15일 이전까지의 일본국에 대한 민간청구권은 이 법에서 정하는 청구권자금 중에서 보상하여야 한다. 제2항 전항의 민간청구권의 보상에 관한 기준,종류,한도 등의 결정에 필요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

    주3) 제2조 (신고대상의 범위) 제1항 이 법의 규정에 의한 신고대상의 범위는 1947년 8월 15일부터 1965년 6월 22일까지 일본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자를 제외한 대한민국 국민이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일본국 및 일본국민에 대하여 가졌던 청구권 등으로서 다음 각 호에 게기하는 것으로 한다. 9. 일본국에 의하여 군인, 군속 또는 노무자로 소집 또는 징용되어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사망한 자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