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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부자들 이야기
    경제 2023. 7. 24. 17:43

    한국의 부자들 이야기

     

     

    현금 10억원 이상 보유자는 7만 명…「억만장자(단위)10명 미만

     

    세계에서 부자가 가장 많이 사는 도시는 모스크바, 한국에선 서울 용산구

     

     

     

    억만장자 10명 미만

     

    100만 달러(10억원)만 가지고는 백만장자라고 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서울 강남지역 45평 이상 대형 아파트 한 채 값은 대부분 10억원이 넘는다. 아파트 한 채 가졌다고 백만장자, 富者라고 할 수는 없다. 여론조사들을 종합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30억원 정도의 資産(자산)을 가진 사람을 부자로 여긴다.

     

    억만장자, 원화로 () 단위의 資産(자산)을 가진 사람들은 하늘이 내린 큰 부자들이다. 과연 이런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되고, 순위는 어떻게 될까?

     

    20049월 말 현재의 상장주식과 상장주식 평가액에 기타 추정자산을 더해서 한국 최고의 부자 25을 뽑아 봤다. 한 가족은 한 명으로 취급했고, 그룹이 계열 분리된 경우에는 별개의 가족으로 봤다.

     

    한국 최고의 부자 25李健熙(삼성) 辛格浩(롯데) 李明熙(신세계) 鄭夢九(현대차) 徐慶培(태평양) 姜榮中(대교) 金澤辰(엔씨소프트) 李在賢(CJ) 朴文德(하이트맥주) 장평순(교원) 文奎榮(아주산업) 鄭夢根(현대백화점) 許昌秀(GS) 愼昌宰(교보) 具本茂(LG) 崔鎭玟(귀뚜라미 보일러) 鄭夢準(현대중공업) 趙洋來(한국타이어) 具本綾(희성) 鄭相永(금강고려화학) 李埈鎔(대림) 辛春浩(농심) 金升淵(한화) 趙亮鎬(한진) 朴炳燁(팬택)이다. 익숙지 않은 이름들이 여럿 포함돼 있다.

     

     

    [혁신형 자본가李健熙, 재산 4조원]

     

    1978三星 시가총액은 1

     

    李健熙(이건희·63) 삼성그룹 회장 一家(일가)가 단연 1등이다.

     

    회장 一家의 재산은 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4조원은 현재 공무원 연금과 맞먹는 규모로, 연간 국내총생산(GDP) 600조원의 0.7%에 해당한다.

     

    회장 一家의 재산은 삼성전자 주식이 대부분이다. 회장의 재산은 22000억여원으로, 이 중 12000억원어치가 삼성전자 주식이다. 회장은 삼성전자 지분 1.9%를 가지고 있고, 부인 홍라희 관장과 장남 이재용 상무는 0.7%씩을 가지고 있다.

     

    회장이 이런 재산을 일군 것은 아버지 李秉喆 회장으로부터 삼성그룹을 물려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의 삼성과 李健熙 회장의 재산은 그가 스스로 일군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李健熙 회장이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1987년 삼성그룹의 市價총액은 1조원 정도였다. 18년이 지난 지금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60조원이 넘는다. 株價가 높았던 20044월에는 93조원까지 불어나기도 했다.

     

    그룹 전체 매출액은 1987135000억원에서 지난해 120조원으로 늘었다. 稅前 이익은 1987년 당시 1900억원에서 200420조원으로 불어났다. 1987년 이후 신세계, CJ, 한솔그룹등이 삼성그룹에서 독립한 것을 고려하면 삼성의 사세 확장은 폭발적이었다.

     

    李健熙 회장이 18년 전 수백억원대 부자에서 수조원대 부자로 올라선 원동력은 도전과 혁신이다. 그는 197432세의 나이에 私財(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 지분을 인수했다. 회장은 재벌 2세이기에 앞서 도전적인 사업가였다.

     

    삼성의 경영을 이어받은 후 회장은 과감하게 혁신을 주도했다. 1993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는 이른바 경영 선언(일명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했다. 7·4(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도 도입했다.

     

    IMF 외환위기 체제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인 199712. 회장은 삼성 영빈관 승지원에서 미국 골드만삭스의 존 코자인 당시 회장을 맞았다. 회장은 이 자리에서 존 회장에게 삼성그룹의 구조조정을 도와달라삼성전자 등 핵심 전자 계열사와 삼성생명만 빼고 다른 계열사는 모두 팔아도 좋다고 말했다.

     

    계열사 대거 매각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필요하다면 어떤 계열사도 미련 없이 버리겠다는 게 회장의 분명한 생각이었다. 회장은 사재를 털어 인수했던 부천 반도체 공장을 파는 등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 IMF 외환위기를 넘겼다.

     

     

    이재용씨 재산은 9000억원

     

    휴대폰 화형식사건은 회장의 혁신적 사고의 단면을 잘 보여 준다.

     

    1995년 초 회장은 삼성의 불량 휴대폰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시중에 나간 휴대폰을 모조리 회수해서 공장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태우라고 했다. 그해 39일 아침 삼성전자 구미공장에서 휴대폰 10여만 대가 잿더미로 변했다.

     

    자동차 사업은 회장의 최대 실패작으로 남아 있다.

     

    회장은 1994년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동차 사업 진출을 결정했고, 4조원에 이르는 자금을 들여 1998년 양산에 들어갔다. 자동차 사업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1998년 기아자동차 인수에도 실패했고, 삼성자동차의 부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회장은 2000년 삼성자동차의 부실 24500억원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삼성자동차 채권단에 자신의 삼성생명 주식 350만 주(주당 70만원 기준)를 넘겼다.

     

    현재의 삼성생명 장외 거래가격(22만원)을 기준으로 이 350만 주의 가치는 7700억원 정도 된다. 자동차 사업에 실패하고 부실을 책임지는 바람에 회장은 7700억원에 가까운 재산을 날린 셈이다.

     

    회장의 장남 삼성그룹 이재용 상무의 주식재산은 약 9000억원이다. 상무는 2003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삼성전자와 장외 계열사인 서울통신기술 삼성SDS에서 총 61억원의 배당 수입을 거두었다.

     

     

    [83엔의 신화辛格浩 회장]

     

    장남과 차남이 각각 1재산 보유

     

    辛格浩(신격호·83) 롯데그룹 회장은 경영일선을 지키고 있는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1세대 기업인이다. 맨주먹으로 시작해 지금은 국내에만 38개 계열사를 거느리는 등 韓日 양국에서 거대한 롯데 왕국을 일궈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롯데그룹은 국내 순수 민간그룹 가운데 자산총액 기준으로 서열 6위다.

     

    회장 一家의 재산은 약 3조원에 이른다. 회장 본인의 재산은 약 7000억원어치고, 장남 신동주 일본 롯데그룹 부사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각각 1조원 가량의 재산을 갖고 있다.

     

    장녀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은 1000억원 상당의 재산을 가졌다. 재산의 대부분이 상장사인 롯데제과와 롯데칠성, 상장사인 롯데쇼핑의 주식이다. 회장 一家는 롯데제과 지분의 24%, 롯데칠성의 지분 42%, 롯데쇼핑 지분 45%를 가지고 있다.

     

    1941년 울산농림를 졸업한 회장은 19세 나이에 단돈 83엔을 들고 일본에 건너갔다. 도쿄의 고향 친구들을 찾아가 함께 자취생활을 하며 우유배달로 돈을 모아 와세다화학공학과에 진학했다.

     

    이공계를 지원한 이유는 당시 징병을 면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1944년 대학 재학 중 하나미쓰라는 일본인 노인의 도움을 받아 군수용 커팅오일공장을 차렸는데 미군의 폭격으로 공장이 부숴졌다.

     

    대학을 졸업한 뒤 1948년 일본 롯데를 세우고 껌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롯데그룹이 태동했다. 일본 롯데는 초고속으로 성장했고 이후 초콜릿 시장에 뛰어들면서 종합 과자업체로 변신했다. 결국 일본 최대 식품 메이커로 자리 잡았다.

     

    회장이 고향 한국으로 사업영역을 넓힌 것은 1966년이다. 자본금 3000만원의 롯데제과를 세우고 한국과 일본을 가로지르는 현해탄 경영을 시작했다.

     

    롯데그룹은 현재 한국 유통시장의 1인자다. 롯데쇼핑이 연 4조원의 매출을 올려, 기업인 롯데제과 매출(1조원)4배를 넘어섰다. 롯데그룹은 국내 최대 소주업체인 진로의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80세를 넘긴 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경영일선에서 일하고 있다. 짝수 달에는 일본에 머물고 홀수 달에는 한국으로 건너온다.

     

     

    [자수성가 교육갑부姜榮中 회장]

     

    교육 한 우물만 파

     

    눈높이 수학姜榮中(강영중·56) 대교그룹 회장 역시 赤手空拳(적수공권)으로 재산을 일으킨 자수성가형이다. 회장 一家의 재산은 약 6000억원에 이른다. 대부분 대교그룹의 지주회사인 대교네트워크(상장사) 주식이다. 회장 一家는 대교네트워크의 지분 83%와 상장사 대교의 지분 2%를 가지고 있다.

     

    회장은 교육사업 한 우물만 팠다. 서라벌와 건국농화학과를 나온 그는, ROTC 10기로 제대하고 나서 서울 종암동에 허름한 과외교실을 열었다. 그러다가 1976년 일본 公文(구몬)수학과 손잡고 을지로에 한국공문수학연구회를 차렸다.

     

    1980군부가 등장해 과외금지 조치를 내리면서 회장의 교육사업은 위기에 빠졌다. 회장은 집집마다 방문하며 문제지를 돌리고, 채점은 하지 않는 방식으로 단속을 피했다. 일본 구몬측이 자신들의 구몬브랜드에 대한 로열티를 요구하자 공문이라는 브랜드를 포기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지금의 눈높이브랜드다.

     

    대교는 전국에 230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국내 최대 학습지 업체로 성장했고, 20032월 거래소에 상장했다. 회장은 교육부 장관인 송자씨에게 대교를 맡기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벤처신화의 상징金澤辰 사장]

     

    리니지5000억원 재산 이뤄

     

    온라인 게임의 대명사 리니지를 만든 엔씨소프트의 金澤辰(김택진·38) 사장은 305000억원대의 재산을 이룬 벤처 신화의 상징이다.

     

    서울전자공학과 85학번인 사장은 대학 때 아래아한글개발을 도왔다. 워드프로세서를 개발 중이던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한글과컴퓨터 사장)이 컴퓨터동아리에서 그래픽 전문가로 통하던 사장을 개발팀에 합류시켰다.

     

    1989아래아한글이 개발되고 이찬진 사장은 한글과컴퓨터(한컴)를 차렸지만 사장은 대학원에 남아서 한메소프트를 창업했다. 한글 키보드 연습용 소프트웨어 한메타자교사가 여기서 나온 것이다.

     

    1991년 전자공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대전자에 입사한 사장은 현대전자의 미국 보스턴연구소에서 1년 반 동안 연구개발을 했다. 귀국해서 내놓은 것이 세계 최초의 인터넷 기반 PC통신 아미넷, 지금의 신비로.

     

    1995년 잠시 한글과컴퓨터의 윈도 시스템 개발을 도와주던 그는 천재 개발자로 불리던 송재경(엔씨소프트 부사장)씨를 만났다. 국내 최초의 그래픽머드 게임 바람의 나라, 국내 온라인 게임 최대 히트작 리니지씨의 작품이다.

     

    이 무렵 프로그래머 이희상(엔씨소프트 이사)씨가 합류했다. 세 사람은 훗날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사장은 현대전자와 현대정보기술 사이에서 신비로사업부의 입지가 약화되자 부하 직원 17명을 데리고 회사를 나왔다. 이들과 19973월에 차린 회사가 엔씨소프트. 송재경씨와 이희상씨가 가세했다. 1998리니지상용서비스가 시작됐다. 폭발적인 반응이 돌아왔고 매출액은 분기마다 2배로 늘어갔다.

     

    2000년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엔씨소프트는 액면가 500원짜리가 株價 20만원을 넘나들어 코스닥의 황제로 불렸다. 후속작 리니지2의 성공으로 엔씨소프트의 시가총액은 2004년 말 현재 18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엔씨소프트의 지분 30%를 가진 사장은 지금 새로운 온라인 게임 길드워2의 리니지 신화를 준비 중이다.

     

     

    [현대판 영웅시대朴炳燁 부회장]

     

    잘나가던 삐삐버리고, 휴대폰 市場으로

     

    朴炳燁(박병엽·43) 팬택 부회장은 10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40초반에 연 매출액 3조원 수준의 팬택계열을 일궈냈다. 재산은 상장주식 800억원, 상장주식 100억원 등을 포함해 900억원에 이른다.

     

    1962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난 부회장은 서울 중동와 호서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맥슨전자에 입사했다. 평범한 마케팅 직원이었던 부회장은 199129세에 무선호출기(속칭 삐삐) 사업을 직접 하려고 회사를 나왔다.

     

    경기도 부천에 있는 10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전세로 옮기고 남은 돈 4000만원으로 서울 신월동에 사무실을 열고 팬택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당시 직원은 6명이었다.

     

    삐삐가 일반화되면서 199228억원의 짭짤한 매출을 올렸다. 삐삐 붐이 한창이던 1997년에는 매출액이 762억원으로 불어났다. 팬택의 작고 가벼운 모델이 젊은이들의 손길을 끌었다.

     

    부회장은 삐삐 시장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걸 직감하고, 삐삐 사업을 접고 휴대폰 사업에 뛰어들었다. LG정보통신(LG전자)으로부터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의 계약을 따내 19975월부터 휴대폰을 만들기 시작했다.

     

    팬택의 휴대폰 사업에 날개를 달아 준 것이 모토로라.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밀려 苦戰하면서 돌파구를 찾던 모토로라는 팬택을 파트너로 선택했다. 모토로라는 1998년 팬택에 1500만 달러를 투자, 2株主(지분율 20%)가 됐다. 팬택의 매출액은 1997762억원에서 20002871억원으로 3년 동안 4배 가까이 불어났다.

     

    부회장은 여기서 다시 결단을 내렸다. 주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현대큐리텔(팬택앤큐리텔)을 인수한 것이다. 200111월 팬택여신투자금융(팬택캐피탈)KTB네트워크와 함께 476억원을 주고 현대큐리텔을 인수했다.

     

    부회장은 현대큐리텔을 인수한 뒤 임직원 1100여 명 가운데 한 명도 그만두게 하지 않았다. 대신 급여를 30% 올렸다. 신바람을 불어넣은 것이다.

     

    현대큐리텔을 새 식구로 맞으면서 팬택계열의 매출액은 이듬해인 200213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이후 팬택과 팬택앤큐리텔(2002년 사명 변경)이 모두 급성장했다. 팬택앤큐리텔은 200313858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인수한 지 2년 만에 145% 성장했고, 당기 순이익은 417억원으로 179%나 늘었다.

     

    팬택은 2003년 매출액이 6153억원으로 2년 동안 59% 늘었고, 순이익은 180억원으로 135% 증가했다.

     

    부회장은 서민적이고 소탈한 성격이다. 회장이라는 직함을 사양했다. 포장마차를 즐겨 찾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임원들에게는 형님,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2003년에는 시가총액이 18000억원에 이르는 대우종합기계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두산중공업에 밀려 인수에 실패했지만 부회장의 사업확장 의욕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 밖의 슈퍼부자들]

     

    崔鎭玟, 귀뚜라미 보일러로 3000쌓아

     

    장평순(54) 교원그룹 회장은 4000억원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다. 상장기업인 교원아카데미 80%, 교원교육 84%, 공문교육연구원 50%, 교원 48%의 지분을 갖고 있다. 1980년대 초 전집도서 방문판매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회장은 1985년 중앙교육연구원(주식회사 교원)을 세웠고, 지금의 교원그룹을 일궈냈다. 교원그룹은 구몬학습, 빨간펜등의 브랜드로 유명하다.

     

    崔鎭玟(64) 귀뚜라미그룹 명예회장은 40년 넘게 보일러 사업에 전념해서 3000억원에 가까운 를 쌓았다. 상장사 SBS를 비롯해 상장사 귀뚜라미, 귀뚜라미보일러등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회장은 20였던 1962년 한국 최초의 아파트인 마포아파트에 보일러를 공급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그 돈을 酒類(주류)회사에 투자했다가 돈을 대부분 날렸다. 보일러 사업에 한 우물을 파게 된 계기였다.

     

    李明熙(이명희·62) 신세계 회장 등 18명이 각각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창업주의 자녀이거나 배우자 혹은 동생이다.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다섯째 딸인 李明熙 회장은 남편인 정재은 조선호텔 명예회장, 장남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 등 가족들과 함께 신세계 주식 등 총 17000억원에 이르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

     

    李健熙 회장과 辛格浩 회장에 이어 국내에서 세 번째 부자 가족인 셈이다. 회장 본인이 9000여억원, 회장과 부사장이 각각 5000억원, 3000억원 가량을 갖고 있다.

     

    () 서성환 태평양그룹 회장의 아들인 徐慶培(서경배·42) 태평양 회장은 태평양 주식 등 6000억원대 재산을 가지고 있다.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장손인 李在賢(45) CJ 회장의 재산 역시 5000억원대다.

     

    박경복 하이트맥주 명예회장의 아들인 朴文德(박문덕·55) 하이트맥주 회장은 하이트맥주 주식 등 4000억원대 재산을 갖고 있다. 문태식 아주산업 회장의 아들 文奎榮(54) 아주산업 부회장의 재산은 4000억원 가까이 이른다.

     

    鄭周永 회장의 3鄭夢根(정몽근·63) 현대백화점 회장은 현대백화점 주식 등 3300억원대 자산가다. 許昌秀(허창수·57) GS홀딩스 회장과 具本茂(구본무·60) LG그룹 회장 등 옛 LG그룹 양대 가문의 3세들 역시 가족 단위로는 3000억원대 재산을 갖고 있다.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자의 아들 愼昌宰 교보생명 회장도 3000억원에 가까운 재산을 갖고 있다.

     

    鄭周永 회장의 6남인 鄭夢準(정몽준·54) 의원(현대중공업 고문)은 현대중공업 주식 등 2800억원에 이르는 재산을 갖고 있다. 조홍제 효성그룹 회장의 아들 趙洋來(조양래·68) 한국타이어 회장은 한국타이어 주식 등 2500억원 가량의 재산을 가졌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아들 具本綾(56) 희성그룹 회장에게도 2400억원 상당의 재산이 있다.

     

    鄭周永 회장의 동생 鄭相永(정상영·69) 금강고려화학(KCC) 회장과 이재준 명예회장의 아들 李埈鎔(이준용·67) 대림그룹 회장도 각각 2100억원 가량의 재산을 가졌다. 롯데 辛格浩 회장의 남동생인 辛春浩(신춘호·73) 농심그룹 회장 역시 2000억원 가량의 재산을 가지고 있다.

     

    김승연(53) 한화그룹 회장과 趙亮鎬(57) 한진그룹 회장은 각각 1800억원 규모의 재산이 있다.

     

     

    왕년의 한국 부자들

     

     

    2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큰 부자들은 사채나 부동산 시장의 큰손들이었다.

     

    개발연대 한국의 금융시장을 주름잡았던 왕년의 큰손들을 꼽자면 현금왕단사천 해성그룹 회장, 사채시장의 원조 대부이상순 일산실업 회장, 백할머니백희엽 여사, 광화문 곰고모씨, 그리고 비운의 큰손장영자씨 등이 있다.

     

    단 회장과 백 여사, 고모씨는 개성상인 집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2001년 작고한 현금왕단 회장은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홀로 월남해 1960~ 1980년대 한국 자금시장을 주름잡았고, 오늘날의 해성그룹을 일군 인물이다. 미싱(재봉틀) 조립사업에서 종잣돈을 마련해 사채시장에서 돈을 불렸다. 1980년대에 하루 현금동원력이 3000억원 규모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금왕이라는 별명은 당시 명동에서 현금동원력이 가장 뛰어났기 때문에 붙여졌다. 재계의 숨은 실력자로 통했는데, 당시 재벌들 중에 단 회장 돈을 안 빌려쓴 곳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鄭周永 前 현대그룹 회장도 가끔 단 회장의 도움을 받았다.

     

    전성기였던 1970년대에는 鄭周永 회장이나 李秉喆 회장보다 종합소득세를 더 많이 냈다. 한국제지, 계양전기 등 해성그룹의 창업주이기도 하다.

     

    사채시장의 1세대 대부로 불리는 일산실업 회장은 총재산이 최대 1조원, 현금으로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1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 회장, 남상옥(작고) 타워호텔 회장 등과 함께 1960~70년대 한국 사채시장을 주물렀던 인물이다.

     

    19728·3 사채동결 때 전국의 사채 신고액 3600억원어치 가운데 약 400억원어치가 회장의 것이었다. 1995년 작고한 백할머니는 사채시장과 주식시장에서 대모로 불렸다. 6·25 직후 군복 등 의류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 1960년대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우량주를 사서 묻어둔 뒤 株價가 오르면 파는 정석 투자방식으로 큰돈을 벌었다. 백 여사 특유의 배짱이 한몫했다. 주식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박현주 미래에셋증권 회장은 대학원 시절에 백 여사로부터 주식투자를 배웠다고 한다.

     

    광화문 곰고씨는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주식으로 재산을 날렸다. 고씨는 6·25 직후 염료사업을 통해 번 돈으로 1965~1973년 광화문, 남대문시장, 여의도, 강남 등의 땅을 사들였다. 모두 훗날 노른자위 땅이 된 곳들이다.

     

    1970년대에 7000억원대의 재산을 모았다. 그러나 이때 모은 돈으로 주식에 손을 댔고, 1978년 건설주 파동을 맞으면서 큰 손실을 봤다. 1980년대 말에도 증권주에 집중 투자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남은 재산의 대부분을 날려야만 했다.

     

    장영자씨는 19826400억원대 어음사기 사건의 주인공이다. 당시 장씨는 38세였다. 이 사건으로 관련 기업들의 금융거래가 전면 정지되는 등 금융시장에 막대한 파장이 일었다. 당시 사건으로 장씨를 비롯해 은행장·기업인 등 모두 30여 명이 구속됐다.

     

    장씨는 자금사정이 어려운 기업에 접근한 뒤 유리한 조건에 돈을 빌려 주면서 대부금액의 2배에 이르는 어음을 건네받아 시중에서 할인받는 수법을 썼다. 장씨는 이 돈을 다시 기업에 빌려 주고 어음을 받아 할인하는 등의 방식으로 실제 대부금액의 몇 배의 어음을 유통시켰다.

     

    목포 출신으로 숙명여대를 나온 장씨는 1992년 가석방으로 풀려난 뒤 1994년 사위인 탤런트 김모씨 회사 등의 어음으로 다시 총 70억원대 부도를 내고 1998년까지 복역했다. 이어 2000년에도 구권화폐 사기사건으로 기소됐다.

     

    첫 번째 구속될 때 검찰의 수사결과 장씨 명의로 된 재산은 거의 없었다.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장씨를 거액 자산가로 보기는 어렵다. 장씨가 어떻게 최고급 빌라에 살면서 순식간에 수백원대 자금을 동원할 수 있었는지는 불가사의로 남아 있다.

     

     

    부자에 대한 상식

     

     

    1. 세계 최고의 부자는 누구일까?

     

    대부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정답은 아니다. 논란이 있긴 하지만, 스웨덴의 다국적 조립가구 회사 이케아(IKEA)의 창업자인 잉그라블 캄프라드(78)씨가 정답에 더 가깝다.

     

    유럽 언론에 따르면 캄프라드씨는 지난해 4월 빌 게이츠 회장을 제치고 세계 최고 부자 자리에 올랐다. 당시 기준으로 캄프라드씨의 총재산은 367억 파운드로 빌 게이츠 회장의 325억 파운드보다 42억파운드나 많았다. 지난해 세계적으로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주로 달러화 재산을 가진 빌 게이츠 회장의 재산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받은 것. 지금은 달러화 약세가 더 심해지면서 캄프라드씨와 빌 게이츠 회장의 재산 차이는 더 크게 불어났다. 파운드화가 아닌 유로화나 스웨덴 크로네화로 평가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캄프라드씨는 194317세의 나이로 이케아를 창업했는데, 현재 이케아는 전세계 30여 개국 180개 점포를 가진 연 매출액 122억 달러의 세계 최대 가구업체로 성장했다. 그는 현재 이케아의 경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지만, 이케아의 지분 대부분을 가지고 있다.

     

    스위스에 살고 있는 캄프라드씨는 세계 최고의 부자면서도 비행기를 탈 때 항상 이코노미 클래스만을 고집하고, 출근할 때 지하철을 이용하며 10년 된 볼보 차량을 손수 운전할 정도의 구두쇠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캄프라드씨의 재산이 얼마쯤 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는 1982년 과도한 세금을 피하고 자신의 사후에 가족들의 다툼으로 이케아가 쪼개지는 일이 없도록 재단과 신탁, 지주회사 등의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 뒀다.

     

    게다가 세계 부자 서열 평가에 상당한 권위를 가진 미국 포브스는 여전히 빌 게이츠 회장이 세계 최고 부자라고 주장하고 있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잡지 베칸스는 캄프라드씨가 복잡하게 얽힌 조직을 통해 벌어들이고 있는 수입을 포브스가 과소평가했다고 주장했다. 베칸스 측은 또 캄프라드씨가 돈을 쓰는 속도가 빌 게이츠 회장보다 훨씬 느리다는 사실만은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식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410억 달러), MS의 공동창업자 폴 앨런(200억 달러)이 뒤를 이었다. 그 다음이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의 一家 5명이다. 1992년 세상을 뜬 월마트의 월튼의 부인 헬렌, 그의 고명딸 앨리스, 세 아들인 짐··롭 등이 각각 180억 달러의 재산을 갖고 있다. 세계적인 컴퓨터 회사 의 창업자인 마이클 델(142억 달러), 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의 최고경영자(CEO)인 래리 엘리슨(137억 달러) 등이 뒤를 따랐다.

     

    2. 억만장자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은?

     

    원화로 () 단위 자산가, 미국식으로 10억 달러 단위의 억만장자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는 어딜까?

     

    뉴욕? 아니면 런던?

     

    정답은 모스크바다. 지난해 5월 미국의 격주간지 포브스에 따르면 모스크바에는 모두 33명의 억만장자가 거주, 뉴욕의 31명보다 많았다. 대부분 에너지 재벌들이다. 영국 축구팀 첼시를 인수한 것으로 유명한 로만 아브라모비치(125억 달러)를 비롯해 석유재벌 빅터 벡셀버그(59억 달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옛 소련 붕괴 직후 국유자산을 싼 값에 사들여 막대한 를 쌓았다. 지난해 원자재값 폭등과 러시아 주식시장의 호황 등으로 재산이 급격히 불어났다. 러시아의 100위 안에 드는 부자들이 러시아 전체 4분의 1을 장악하고 있다.

     

    뉴욕·런던·LA·홍콩·파리 등이 억만장자 거주 순위에서 모스크바의 뒤를 이었다.

     

    3. 한국의 슈퍼 갑부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은?

     

    한국의 100위권주식 갑부들은 주로 어디 살까? 역시 강남에 몰려 살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정답은 용산구, 그중에서도 한남동이다.

     

    국내 100위권주식 부호들 가운데 절반 이상인 54명이 서울 강북에 살고 있다. 용산구가 26명으로 가장 많았고, 특히 주식 자산순위 상위 10명 가운데 대부분이 한남동에 살고 있었다. 李健熙 삼성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대표적이다. 李健熙 회장도 그동안 한남동에 살아오다 지난해 말 이태원동 일대로 이사했다. 이 밖에 성북구 15, 종로구 10, 중구 2, 은평구 1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강남권의 강남·서초·송파구 등 3개구에는 100명 가운데 29명만이 살고 있었다. 강남구에 19, 서초구와 송파구가 각각 5명씩이다. 타워팰리스로 유명한 강남구 도곡동에는 단 2명만이 살고 있었다. 5명은 서울 이외 지역에 살고 있고, 12명은 거주지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100위권 밖 1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할 경우에는 강남권 거주자의 비율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4. 한국의 진짜 백만장자는 몇 명?

     

    한국에서 금융자산만 10억원(100만 달러)이 넘는 고액 자산가는 약 7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아시아 지역에만 190만 명에 이르는 백만장자(100만 달러 이상)가 살고 있다. 국가별로는 일본(141만 명), 중국(9만 명), 홍콩(8만 명), 한국(7만 명), 호주(7만 명), 대만(6만 명) 순이다. 부동산 등의 資産은 모두 제외한 것이다. 때문에 씨티그룹, HSBC 등 세계적인 금융기관들은 이들을 주요 타깃으로 프라이빗뱅킹(PB) 영업을 펼치고 있다.

     

     

    李尙倍 머니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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