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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티브잡스 스탠포드대 졸업식 연설문
    성공하고 싶으십니까? 2024. 1. 28. 13:36

    스티브잡스 스탠포드대 졸업식 연설문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저는 오늘, 세계 최고 명문대 중 하나로 꼽히는 이대학을 졸업하는 여러분들과 함께함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번이 제가 대학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떤 3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고 그저 세 가지의 이야기입니다.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첫번째 이야기는 점을 잇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 dot:, 사건점, 인생의변한점, 순간점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저는 리드대학이라는 곳을 입학한지 6개월만에 그만 두었습니다. 그 후는 18개월 동안 비정규 청강생으로 수업을 듣다가 그 후 완전히 자퇴를 했습니다.

     

    So why did I drop out?

    내가 왜 대학을 그만 두었을 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제 생모는 젊은 미혼모 대학생이었는데 저를 낳으면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저의 양부모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모든 계획이 확정되어져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내가 나타나기 전까지 절 입양키로 한 부부는 마지막순간까지 여자아이를 원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They said: "Of course."

    "물론이죠‘”하며 그들은 수락 하였습니다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못한 사람이어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에 사인하기를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생모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마음이 누그러져 받아 들였습니다.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17년후 저는 대학에 가게 되었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그러나 저는 순진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에 대하여 그만한 가치를 느낄수 없었습니다.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저는 제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이 그것을 실현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될수 있을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그런데도 저는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의 전부를 제학비로 쓰고 있었습니다.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그래서 저는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그때 그것은 참으로 두려운 힘든 순간이었지만, 지금 뒤돌아보니 그 결정은 제인생에서 제가 지금까지 한 결정 중 가장 탁월한 결정

    이었습니다.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자퇴를 하고 저는 평소에 흥미없던 필수과목 대신 그동안 관심있게 보였던 선택과목 강의코스만 듣기 시작하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그렇다고 그것이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방바닥에서 자기도 했고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한 병당 5센트씩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반납하여 먹을것을 사기도 했고,

    또 매주 일요일 저녁은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시내를 지나 7마일이나 걸어서 헤어 크리슈나 사원에 가기도 했습니다.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그런것이 참 종았습니다. 당시 순전히 호기심과 직관에 따라 한 일들이 후에 정말 돈으로 살수 없는 값진것들로 나타났습니다

     

    Let me give you one example: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습작법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모든 라벨들은 너무나 아름다운 수기 서체들 이었습니다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듣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배웠는데, 서로 다른 문자끼리 결합될 때 다양한 형태의 자간으로 만들어지는 굉장히 멋진 글씨체였습니다.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역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미묘함을 갖고 있었으며, 전 그 것에 흠뻑 매료 되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사실, 이 때만해도 이런 것들이 제 인생에 있어 실체로 응용가능한 희망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매킨토시컴을 처음 디자인 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나에게 구현되어 나타났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매킨토시를 디자인 하는데 투입 했습니다. 맥은 아마도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만약 제가 대학에서 그 서체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따라서 윈도우도 맥을 복사한것에 지나지 않는바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도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만약 제가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수업 강의코스를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지금의 개인용 컴퓨터도 오늘날처럼 뛰어난 인쇄술을 가질 수 없었을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점들이 내 미래인생의 변환점이 되도록 연결할수는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과거를 반추하며 그것들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다시 말하서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내다보며 이런 사건점들을 연결지을 수 없습니다; 다만 과거를 반추하며 그 사건점들을 연결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점들이 어떤 식으로든 당신들의 미래와 연결될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등 그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 카르마 karma: , 인과응보, 과거의 행위 말과 생각의 결과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접근법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제 인생의 고비 때마다 발전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저의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일찍이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워즈니악과 나는 부모님의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 했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우리의 각고의 노력끝에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30이 되기 1년전인 29,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어떻게 당신이 세운회사에서 당신이 해고 될수 있습니까?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우리들은 저와 잘 맞는다고 생각되는 유능한 경영자를 모셔 왔습니다. 그리고 처음 1년은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런데 미래에 대한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둘의 사이도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이 때, 우리 회사 이사회는 그(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철저히 공개적으로.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성년이 된 내 전인생은 촛점을 잃어버렸고, 그것은 그야말로 참담함 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전 정말 몇개월 동안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선배 기업인들을 폄하하는 생각이 들었고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의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 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세상이 다아는 완전한 실패자'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처 나오자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도 이런 제마음들을 조금도꺾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것은 제 인생에서 일어날수 있었던 여러 일들중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성공해야 한다는 중압감은 이제 세상사 모든일에 대한 확신의무감이 덜한 재기하는 초심자의 해방감으로 바뀌었습니다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그것은 재가 제인생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진입할수 있도록 저를 자유롭게 하였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이후 5년동안 저는 다시 '넥스트', '픽사'등의 회사를 세워 사업을 시작했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매혹적인 그녀와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를 탄생시켰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세기의 대변혁사건으로 애플은 넥스트를 인수하였습니다. 저도 애플로 복귀하였씁니다.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었다면, 이런 일들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그것은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환자에게는 이런 것들이 필요한것 같기도 합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론 세상이 당신에게 골때리는 괴롭힘을 주드라도 믿음을 잃지 마십시요.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제가 이런일을 줄기차게 계속할수있었던 것은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사랑하였다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보십시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것과 같이 일에서도 같습니다.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당신이 지금 하는일이 당신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됩니다. 진정으로 만족을 갖다주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이 훌륭하다고 믿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위대한 일을 이루어내는 유일한 길은 당신이 지금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아직도 당신이 그것을 발견한지 못했다면 그래도 그것을 계속 구가하십시오.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지금의 현실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가슴속 깊히 존재하는 모든 문제점을 고려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언제 그것을 발견할수 있을지 알수 있을것입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여타 위대한 일들이 상호관련되어 발전돼 나아가는거와 같이 그것도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발전돼 나아갈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계속 구가 하십시요. 현실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제가 17살 때, 이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당신은 언젠가 정말로 확실한 옳은 길을 가게 될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그 글은 저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후로 33년동안 저는 매일아침 거울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만약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일찌라도 나는 내가 오늘 하려고 하는 일들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그답이 아니오!라고 몇일이고 계속 나올때는, 나는 무언가 다른일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나는 곧 죽게된다는 사실이 대단히 중요한 도구가 된다는것을 기억할때 나는 내인생의 중대한 선택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순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왜나하면 대부분의 세상만사는, 즉 모든 외부의 기대, 모든 자부심, 난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 이들 모두는 죽음 앞에서 모두 밑으로 가라앉아 사라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당신들도 죽게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이 됩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들은 이미 무소유의 상태입니다. 당신가슴의 본능에 따라 충실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저는 1년 전쯤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컴퓨터 단층촬영 검사를 받았는데, 저의 췌장에서 종양을 명확히 볼수 있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저는그때까지 췌장이란게 뭔지 몰랐습니다.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이종양이 치료가 어려운 거의 확실한 암이며 저는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정도 밖에 살수없다고 말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충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직업의사의 윤리코드 이지요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것은 당신의 아이들에게 당신이 10년동안 말해 주어야 할 모든것들을 단 몇달 안에 말해주라는 뜻입니다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그것은 모든 것을 확실히 정리하여 가능한한 당신의 가족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하란 뜻 입니다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그것은 당신이 작별인사를 하라는 말입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그날 저는 하루종일 진단과 진료을 받고 보냈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baiapsi),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endeskoup)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 날 저녁 저는 조직검사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목으로 내시경을 넣어 위와 장을 통하여 저의 췌장에 의료바늘을 넣어 종양의 세포를 채취 했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거기에 있었던 아내가 말해주길 의사들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외과수슬로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형태의 췌장암으로 판명되어 이에 놀란 의사들이 눈물을 글성이기까지 했답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이것이 제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가 본 경우입니다. 또한 앞으로 수십년은 더살고 십습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같고 살아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단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게됬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 위하여 당장 죽는건 원치 않습니다.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그리고 죽음은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맞이 해야할 운명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삶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 '죽음'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이란 삶을 변화시키는 한 요인인자이기도 합니다. 죽음은 헌것을 명확히 하여 새것이 새롭게 나갈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의 이 새로움은 여러분들의 것입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여러분들도 점점 늙어가게되고 사라지게 될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단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쇼.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도그마의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요 - 다른 사람사유의 결과에 따라 살아가는 것 -

    * 도그마 : 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

    * 교조적 : 역사적 환경이나 구체적 현실과 관계없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견해의 소음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않게 하십시오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마음과 직관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대단한 출판물인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이 책은 여기서 그리 멀지않은 먼로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그는 이 책에 그 자신의 모든 사적터치를 불어 넣었지요.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이책은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등으로 만들어졌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구글이 나타나기전 35년전의 문고판 형태의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그 책은 아주 깔끔한 도구와 위대한 착상으로 채워진 대단한 역작 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어트와 그의 팀 친구들은 지구백과를 몇번의 개정판을 내 놓았고 예정된 판을 다 출판한후에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 당신들이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항상 갈망하라, 항상 우직하라”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항상 갈망하라, 항상 우직하라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사인 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항상 이런 방법을 저 스스로에게 희망하여 왔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졸업을 하는 당신들도 이런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항상 갈망하라, 항상 우직하라

     

    Thank you all very much.

    여러분 모두 대단히 감사합니다.

     

     

    스티브잡스연설문 원문 과 해석.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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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그마의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요,  점을 잇는 것에 관한 것,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   세상이 다아는 완전한 실패자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의 공동 창업자),      믿음을 잃지 마십시요. ,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    삶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 '죽음',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

    당신이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당신은 언젠가 정말로 확실한 옳은 길을 가게 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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